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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어림잡아 300여개.
어마어마한 크기와 인구 만큼 문화도 다양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하며 지나치는 수많은 도시와 사람들, 그 다양한 문화들이 모두 '인도'라는 하나의 나라로 묶여 있다는게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면 무슨 국경을 넘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괜히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 다음 도시는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기대하면서.
덜컹거리는 버스가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창밖으로는 계속 같은 풍경이 펼쳐지지만 잠시 버스가 멈춰 설 때마다 재빠르게 창문 밑으로 와 생수와 주전부리를 파는 아이들을 구경하는게 나름 심심하지 않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들 말고 진짜 인도 사람들이 인도를 여행한다면 어디를 갈까?
다양한 문화 만큼이나 수 많은 이유로 인도를 찾는 여행자들. 모두 국적도, 인종도, 찾아온 이유도 다르기에 제각기 인도를 누비며 많은 도시를 오가게 된다. 하지만, 나 역시 여행자이기 떄문에, 정작 인도 사람들은 어디로 어떻게 무엇을 보러 여행을 하는지 한 번도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궁금해지더라.
이국적인 야자수들이 제일먼저 반겨준다
아부로드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우리나라 강원도 고갯길보다 더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 시간 이나 들어가야 마운트 아부에 도착한다. 어쩌면 오늘 찾아온 이곳이 내 궁금증을 조금 풀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황금빛 모래성과 사막이 끝없이 펼쳐진 제썰메르의 풍경과는 전혀 딴판이다. 길가에 빽빽히 심어진 야자수들이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버스를 타고 겨우 반나절 쯤 왔을 뿐인데 어쩜 이렇게 다를까.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는건 여기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사실 마운트 아부에 올 생각은 애시당초 계획조차 없었다. 제썰메르에서 함께 낙타를 타고 이야기를 하며 친해진 한국 친구들이랑 마음이 잘 맞아 여행을 계속 함께 했으면 하고 생각했었는데, 다들 보고싶은 것, 가고싶은 도시가 다 달라 만난지 몇일 안되어 뿔뿔히 흩어지게 생겼다.
어떻게든 함께 다니고 싶은 마음에, 마운트 아부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왔다는 누나를 따라 나도 가기로 했다.
여자 혼자 낮선 도시에 보내기도 어째 마음이 편치 않고, 처음부터 크게 계획 없이 마음가는 대로 무작정 가보려고 찾은 인도였기에 마음 편하게 마운트 아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마운트 아부는 북부 인도 최고의 신혼여행지란다. 나 혼자 였으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뻔 했다.
너끼 호수에서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참 밝다
마운트 아부가 신혼여행지로 인도인들에게 유명한 이유는 다름아닌 기후 때문.
제썰메르에서 그랬듯 덥고 건조한 기후가 대부분인 인도 중부에서, 제일 높은 산 위에 위치한 마운트 아부는 유일하게 맑고 화창한 기후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게다가 너끼 호수라는 큰 호수까지 있어서 배를 띄워 놀 수도 있고 이래저래 신혼부부에게는 로맨틱한 여행지가 될 수 있겠다.
이렇게 가이드북에 써있는 말을 보고 무작정 너끼 호수부터 찾아갔는데 생각보다 많이 로맨틱하진 않았다.
뭐 우리나라에도 가평이나 춘천쪽으로 가면 쉽게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에 적잖이 실망하고 있는데, 주변의 인도 사람들 표정을 보니 그게 아닌가보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어여쁜 신혼부부 한쌍
주위에는 정말 금방 결혼식을 마치고 이곳으로 온 듯한 풋풋한 신혼부부들이 많이 보인다. 오붓하게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같이온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한껏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 너무나 해맑다. 덩달이 기분이 좋아져서 옆에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와서 함께 사진을 찍자며 내 팔을 잡아 끌어낸다.
내 옆으로 몇 번씩이나 파트너를 바꿔가며 신나게 사진을 찍는다.
한국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무슨 연예인이라도 된 마냥 함께 사진을 찍는게 꽤 기분 좋은 경험이다. 앞으로 평생을 함께 할 신혼 부부의 첫 출발이 되는 의미깊은 여행의 사진첩 한 페이지 쯤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또 한번 흐뭇해진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산 중턱 하얗게 솟은 지붕의 딜와라 사원이 보인다
함께 사진을 찍고 수다를 떨며 호수를 바라보는 기분도 꽤 괜찮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새신랑이 아니라 그런지 마냥 흥이 나지많은 않는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호수 반대편 아부산 중턱으로 택시를 타고 올라간다.
떠들썩한 너끼 호수의 신혼여행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산 중턱에 위치한 딜와라 사원은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곳이다. 인도 전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젠교(자이나교) 사원으로 손꼽힌다는 이곳은 꼭 젠교도가 아니더라도 한번 찾아와 볼 만한 아름다운 사원이라는 말에 얼른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가 본다.
(사진 출처 : www.shunya.net)
2500여명의 석공이 15년간 만들었다는 딜와라 사원의 하얀 대리석 조각들은 할말을 잃게 만든다.
석공들이 작업할 때 나오는 대리석 조각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을 새겨넣게 했다는게 기발하면서도 조금 잔인하기도 하다.
그 정성도 정성이지만 11세기에 만들어진 사원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지금도 수많은 신도들과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는게 참 기특했다.
너무 아름다운 사원의 모습을 꼭 카메라에 담아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사원 내부에서는 카메라 촬영이 금지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관광객들이 아쉬워하는 표정이 얼굴 가득이다.
옆에있던 누나가 몰래 카메라를 꺼내서 한장만 찍자고 하는걸 내가 말렸다.
물론 플래시도 안터트리고 사진한장 찍는 것 쯤이야 대리석 조각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그런 나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문화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요즘 부쩍 많이 든다.
이럴때야 말로 스케치북이 빛을 발할때다!
사진은 찍지 않는 대신 여기 앉아서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도 되는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얼마든지 괜찮다며 씽긋 웃어준다. 사원의 내부를 사진찍듯이 옮기고 싶었지만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 그려넣다보면 오늘 하루가 다 가도 못그릴 것 같아 기둥 하나만 그리기로 했다.
기둥 하나만 그리는데도 만만치가 않다.
콧잔등에 맺힌 땀방울이 스케치북위에 한방울 한방울 떨어진다.
네살쯤 되어보이는 아들과 여행을 온 듯한 젊은 부부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내 옆으로 와 슬며시 물어본다.
'기둥이 너무 많아서 하나만 그리는거에요? 여기 이런 기둥이 수천개나 되는데 다 그려야죠!'
하하하. 언젠간 다른 사람이 와서 나머지 기둥을 그려 줄 거라고 말하니 다른 사람들도 함께 웃는다.
조용했던 사원이 한바탕 웃음으로 가득 채워지고 나니, 기둥의 조각들도 표정이 한층 더 밝아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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