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연히 ‘방청 페인트’일 줄로만 알았다. 아니, 그 빨간색이 '방청 페인트'가 아닐 거라곤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는 쪽이 더 맞겠다. 흔히 말하는 '철골구조(Steel Structure)', 또는 더 정확한 표현으로 '강구조물'의 각 부분을 이루는 부재 표면에는 소위 '방청 도장'이라는 걸 하게 되어있다. 공기 중에 노출되면 금세 녹이 슬어버리니 특수한 도장으로 표면을 덮어 산소와의 접촉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사용되는 '방청 페인트'는 그 특유의 성분 때문에 붉은 빛깔을 띤다. 머릿속으로 공사 중인 현장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으레 붉으스름한 뭔가가 떠오르는 건 그 때문이다. 여의도 한복판에서 한창 공사 중이던 그 건축의 빨간색 또한 그런 사연으로만 여겼다. 그 색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줄은 미..

결론적으로 건물은 젖지 않았다.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의 외벽 재료는 일명 ‘송판 무늬 노출 콘크리트’다. 말 그대로 소나무 판을 덧댄 거푸집으로 콘크리트 구조체를 만들고 이를 그대로 노출시켜 마감했다는 뜻이다. 보통의 노출 콘크리트라고 하면 거푸집 안쪽에 일명 ‘테고(Tego) 합판’이라 불리는 매끈한 코팅면을 붙여 맨질맨질한 표면을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사람들에게도 제법 익숙한 건축가 타다오 안도의 방식이다. 반면 소나무판의 표면을 버너로 그을려 특유의 요철을 극대화하게 되면 마치 야생 동물의 피부나 사람의 지문처럼 거친 무늬가 콘크리트 표면에 그대로 아로새겨진다. 게다가 표면에 덧바른 유성 발수제는 그 음영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발수제'는 시공을 마친 노출 콘크리트 표면에 발라 빗물의 침투와 ..

전 세계인의 맛집 지도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는 별 하나부터 셋까지 개수로 레스토랑의 등급을 매긴다. 얼핏 듣기엔 흔히 배달앱에서 보던 ‘별점’ 시스템과 비슷해 보이지만 숨은 속뜻을 알고보면 제법 재미있다. 별 한 개는 ‘여행 중에 근처를 방문하면 들러볼 만한 곳’이라는 뜻, 그다음인 별 두 개는 ‘여행 경로를 바꿔 우회(detour)해서라도 찾아갈 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가장 높은 등급인 별 세 개는 ‘오직 이 음식점을 방문할 목적만으로 여행(journey)을 계획해도 후회하지 않을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건축에도 미슐랭 가이드 같은 게 있다면 오늘 내가 찾아가려는 이 건축에는 몇 개의 별을 붙여야 좋을까. 그곳에 도착은커녕 아직 출발도 하지 못했지만 내 마음속에서 만큼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