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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감으면 코베어가는 곳, 알고도 당하는 곳이 인도란다. 여행을 떠나기전, 인도에 다녀온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햇더니 하나같이 하는 말이 사람을 너무 믿지말고 사기 조심하라는 얘기뿐이다. 사기를 예방하는 방법은 따로 정답이 없다는데... 미리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해도 소용없다니 말 다한게 아닌가.

 인도 사람들은 대개 능글맞은 구석이 많다. 웃는 낯에 침 못뱉는다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게 거짓말인지 진심인지 누구나 한번쯤은 헷갈릴만도 하다. 돌이켜보면 딱히 크게 사기를 당하거나 속은 기억은 없지만 굳이 한가지를 꼽자면 카주라호에서 바라나시로 넘어가던 바로 그날이 떠오른다.

 카주라호는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은 도시중 한 곳이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지만 한글 간판과 메뉴판을 구비한 한국식당이 꽤 많을 정도로 한국사람들에 대해 각별한 곳이기도 하다. 따로 한국어를 공부한 적이 없지만 관광객들을 통해서 한국어를 배워서 꽤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도 사람들도 몇몇 있는데, 내가 묵었던 호텔 고타마의 주인인 NIKKI 역시 유창한 한국어 솜씨를 뽐낸다.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옆 도시인 사트나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이 버스가 파업을 했다며 도통 표를 구해줄 생각을 하질 않는다. 결국 예정일보다 이틀이나 늦어지고 카주라호에 발이 묶여버렸다. 더이상 일정을 지체할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NIKKI를 졸랐더니 그럼 택시를 타고 가는건 어떠냐며 나를 꼬신다. 그때만해도 버스가 파업이라는 말을 굳게 믿고 울며 겨자먹기로 다섯배나 더 비싼 택시를 타기로 했는데 택시를 타고 사트나로 가는 내내 어딘가 마음이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트나에 도착해 다른 한국인들에게 물어보니 자기들은 카주라호에서 버스를 타고 사트나까지 왔다고 말해준다. NIKKI와 택시기사의 합동작전에 보기좋게 걸려든 셈이다.

 어쨌든 이미 카주라호를 벗어났고 다음 도시에서 앞으로 남은 일정도 있으니 그냥 쿨하게 잊어야지 생각했다. 조금 더 준 돈은 그냥 편하게 택시에 앉아 온 값으로 치자 하고 스스로 위안하며... 
 인도에서의 일정이 거의 끝나가는 즈음에 처음으로 당한 일이라 그런지 왠지 마음이 안좋았다. 괜히 내가 예약한 기차표는 제대로 된건지도 의심이 되기 시작하는데, 배는 고프고 열차시간은 다가오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좌석을 확인하고 레스토랑을 찾아보려는데 역앞을 아무리 둘러봐도 레스토랑 비슷한 간판조차 보이질 않는다.

 등에는 커다란 배낭에 조리를 질질 끌면서 그렇게 반 거지꼴을 하고 식당을 찾아다니는데, 갑자기 옆에서 한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우람한 체격에 편한 복장으로 커다란 가방을 지고있는 행색을 보니 왠지 또 귀찮아질것 같아서 처음엔 그냥 대충 대답하고 넘기려 했는데 자기도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며 함께 레스토랑을 찾아보잔다. 이미 한번 데인 직후라 그런지 괜히 또 불안했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레스토랑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따라가보기로 했다.


 역 앞 시장골목에서 허름한 건물 안으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는데 계속 마음이 불안했다. 결국 그렇게 도착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고, 무사히 기차를 타고 바라나시까지 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너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보냈던게 한없이 미안해진다. 그의 이름은 Vikram Agrawal. 델리에서 IT 관련 사업을 하고 있고 지금은 카주라호를 여행하고 다시 델리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알고보니 카주라호에서 내가 묶었던 호텔 고타마에 함께 묶었던 손님이었다. 내가 돌아다니는걸 몇번 보고 내 얼굴을 기억해서 말을 걸었던 거란다.
 레스토랑에서 메뉴판을 펼쳐보는데, 왠지 현지인이 옆에있으니 그동안 안먹어본 음식을 먹고싶어서 추천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한참동안 메뉴를 보더니 이것저것 무려 네가지나 음식을 시키고 거기에 버터난과 음료까지 시킨다. 속으로는 내심 걱정을 했다. 이제 돈이 별로 남지 않아서 식비를 아끼려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음식값이 많이 나오면 어떡하지... 게다가 메뉴판을 보니 VAT 별도란다! 망했다 싶었다...

 어쨌든 음식은 상당히 맛있었다. 가이드북에는 잘 설명되어있지 않은 신기한 요리들을 하나씩 설명해주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라며, 입맛에는 맞는지 맛은 어떤지 계속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맛은 아주 좋았다!
 어차피 식사후에는 10시간 가까이 야간 기차를 타야하는 피곤한 일정이니 돈이 좀 나오더라도 그냥 잘 먹은 값이라 생각하자 하고 계산을 하러 가는데, Agrawal씨가 내 지갑을 손으로 잡으며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한다.
 순간 너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몇번이나 괜찮다고 말했지만 막무가내다. 너희는 자기 나라에 온 손님이니 오늘은 내가 대접하겠다며 결국 전부 계산해버렸다.




 택시때문에 기분이 크게 상했던 기억은 순식간에 잊혀지고, 인도 사람들을 한없이 의심하던 내 나쁜 마음도 눈녹듯 사라져 버렸다. 식사 마치고 역으로 돌아와 기차를 기다리는 내내 수다를 떨며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알고보니 참 궁금한것도 많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행여 기차를 놓칠까 노심초사하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예 플랫폼쪽에 서서 이야기 도중에도 수시로 내 기차가 들어왔는지 살펴봐주기까지 한다.


 결국 바라나시로 떠나는 내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오고, 즐거웠던 그와의 만남도 잠시, 이제는 다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인사를 하고 이제 기차에 오르려는데 잠시만 기다리라며 플랫폼 저쪽으로 갑자기 뛰어간다. 무슨일인가 궁금해하고 보고있는데 이내 물병 두개를 손에 쥐고 다시 나에게 왔다. 야간기차를 타고 가면 목이 많이 마를텐데 기차에서 마시라며 물을 건네주는게 아닌가. 저녁식사를 대접해준것도 너무 고마웠는데 정말 이런 배려까지... 너무 고마워서 말이 제대로 안나왔던 것 같다.

 Thank you, Thank you Mr.를 연발하며 기차가 플랫폼을 벗어나는 그 순간까지 손을 흔들었고, 이내 시야에서 그가 사라졌다.


 몇주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다시 바쁜 일상속에서 어느덧 인도여행의 기억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었는데 어느날 나에게 메일이 한통 도착했다. 보낸이가 Vikram Agrawal이라고 되어있길래 얼른 클릭해봤더니 역시나 그때 사트나에서 만났던 그 사람이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헤어지기전에 네임카드를 건네주며 꼭 메일을 하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고마운 마음에 뭐라도 줄게 없을까 해서 명함을 줬던건데 이렇게 정말 메일이 올줄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제목이 fff라고 아무렇게나 되어있는걸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진짜 읽을 수 있을지 그도 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내용은 그냥 간단한 인사말이지만 왜이렇게 반가운건지... 얼른 답장을 쓰고 거기에 내가 찍었던 그때의 사진들도 첨부해서 보내줬다. 사진들을 보면서 Agrawal이 그때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며...

 Vikram Agrawal.
 그는 진심으로 인도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었다.
 머나먼 한국에서 자신이 살고있는 인도를 찾아 온 낯선 여행자들에게 지갑을 털어가며 멋진 식사를 대접해주고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던 그의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능글맞은 인도사람들 때문에 상했던 내 마음까지 치유해주고 여행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준 그에게 늘 고마운 마음 뿐이다. 다시 인도를 간다면 델리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보니 반대로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나라를 찾아온 외국 여행자들에게 나 역시 그렇게 진심으로 대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오길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한발 다가서서 마음을 열라던 말이 머리에서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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