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작년 한 해 브런치에서 20만 뷰를 기록한 ‘젊은 건축가의 출장기’가 샘터사를 통해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단행본 ‘건축가의 도시(가제)’로 재구성하며 이탈리아 편을 빼고 중국, 미국 편을 추가했습니다. 기존 일본, 브라질, 프랑스 편도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여 총 38편의 글을 담았습니다. 젊은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는 솔직 담백한 건축과 도시에 관한 에세이가 될 예정입니다. 아참, 브런치에서는 공개된 적 없는 50여 장의 핸드 드로잉도 함께 수록됩니다. 작년 12월 출판 계약 이후 원고 준비에 바빠 소식이 조금 늦었습니다. 3월에 최종 원고를 넘기고 지금은 조판 작업이 한창입니다. 이르면 5월 말, 늦어도 6월에는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미리..
우리는 누구나 '시간' 안에서 생을 살아간다. 시간은 그 시작과 끝을 특정할 수 없이 무한히 반복되는 자기 복제적 개념이다.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인류는 시각, 날짜, 계절과 같은 개념으로 시간을 한정하고 통제하며 이를 극복해왔다. 휴가, 여행, 출장, 학기, 방학 … 이처럼 고유한 이름이 붙은 ‘시간들’은 그래서 좀 더 특별하다. 우리가 어떤 시간들의 ‘처음’과 ‘마지막’에 자꾸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것 또한 분명 그 때문일 게다. 오늘은 이번 출장의 마지막 날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밤 열 시에 밀라노 말펜사 국제공항을 이륙할 예정이다. 아직 반나절도 더 남아있지만 공항철도까지 포함해 무려 세 번이나 환승을 해야만 갈 수 있는 먼 거리였다. 못해도 정오 전에는 도비아코를 떠나야만 했다. 나에게..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희뿌연 연무(煙霧) 뿐이었다. 온데 사방이 구름으로 둘러싸인 누볼라우 산장의 아침 풍경은 마치 내가 하늘 위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어로 구름(Nuvolau)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따뜻한 물은커녕 샤워실도 변변히 없고, 전기 콘센트라도 한번 쓸라치면 줄을 서야 하는 불편한 곳이지만 지난밤 이곳에서 나는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라(Mara)와 소피아(Sofia)와 헤어진 뒤, 이 산장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된 호주인 부부와 친해진 까닭이었다. 선생님으로 일하며 방학 때마다 전 세계를 함께 여행한다는 둘은 저녁식사 내내 나와 함께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언젠가 호주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또 연락처..
내 여행의 출발은 늘 혼자였다. 누군가 함께하지 않으면 금세 외로워질게 뻔함에도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디든, 언제든 훌쩍 떠나버리는 나였다. 하지만 공항에서, 기차역에서, 숙소에서, 혹은 레스토랑에서 나는 늘 사람들을 만났고, 어울렸고, 함께했다. 그러다 마음이 맞는 친구를 사귀면 하루, 혹은 일주일, 때로는 한 달 가까이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 여행이란 목적지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이르는 과정에 더 가깝다. 길 위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사연이 있다. 그 사연들이 차곡차곡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야 말로 곧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종종 생각하곤 했었다. 라가주오이 산장(Rifugio Lagazuoi)에서 묵기로 한 날, 나는 네 명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이탈리..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난생처음으로 산장에서 맞이해보는 아침이 사뭇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아직은 걸은 길보다 걸어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았지만 어제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마음엔 한결 여유가 생겼다. 자리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루트와 산장 정보를 살피던 중 한 문장으로 시선이 향했다. '라가주오이 산장은 해발 2,700m에 위치하고 있어 돌로미티 지역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숙소입니다.' 잔잔하던 내 마음에 순간 물결이 일렁였다. 물론 세상에는 그보다 더 높은 곳도 많다. 당장 같은 알프스에 속한 스위스 융프라우만 해도 해발 3,500m까지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기차로 올라갈 수 있고, 네팔에 가면 에베레스트를 바라보고 해발 3,800m에 우뚝 솟은 호텔도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700'이라는..
돌로미티에서의 첫 번째 아침이 밝았다. 전날 저녁 늦게 마을에 도착한 탓에 주위를 둘러볼 새도 없이 곧바로 방에 들어와 잠을 청한 뒤였다. 반쯤 열린 발코니창 너머로 불어 들어온 선명한 산내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아직도 잠이 덜 깬 나의 의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산새들마저 쉴 새 없이 지저귄다. 도저히 일어나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었다. 확실히 도시에서 맞이하던 아침과는 조금 달랐다.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고 문득 생각했다. 호텔 앞을 가로지르는 왕복 2차선 도로는 내 기억이 맞다면 어젯밤 역에서부터 걸었던 그 길이었다. 겨우 차 두대가 아슬아슬 지나갈 정도의 길이 마을의 중심 도로라니. 어쩌면 인구 3천 명 남짓의 이 작은 마을에선 중앙선을 그리는 것조차 사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화려한 테이프 커팅과 함께 밀라노에서의 나의 공식적인 출장 업무도 모두 종료되었다. 그건 지난 며칠간 내 집 안방처럼 휘젓고 다니던 전시장을 관람객들에게 양보하고 떠나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시원섭섭한 마음도 들었지만 무사히 일을 마쳤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그보다 내 마음은 이미 출장 뒤로 붙여 써둔 일주일간의 여름휴가에 가있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불과 몇 발자국 만에 '출장'에서 '휴가'로 나의 상태가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맨 처음 생각했던 건 '토스카나 렌터카 여행'이었다. 업무가 끝나는 날짜에 맞춰 여자 친구를 밀라노로 불러 함께 차를 타고 남쪽으로 토스카나의 소도시들을 여행하는 멋진 계획이었다. 하지만 둘이 휴가를 맞추어 쓰는데 실패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수..
나에게 있어 출장지에서의 한 끼 식사란 언제나 ‘주린 배를 채우는 수단’ 이상의 의미였다. 한 그릇의 음식은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체력의 원천이자,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위로가 되기도 하며, 새로운 정보와 문화를 습득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먼길을 떠나기 전, 일에 대한 설렘만큼이나 먹게 될 음식에 대한 기대감 또한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을게다. 지치지 않는 체력은 출장에서 최고의 덕목이다. 특히나 지난 밀라노에서 처럼 현장 업무가 수반되는 경우엔 더욱 그랬다. 예정에 없었던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필요한 건 의외로 빠른 판단력보다는 체력이었다. 그러니 출장 중에는 입맛이 없어도 삼시세끼 일부러 잘 챙겨 먹어야만 한다. 잘 먹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환경에 익숙해지면 일의 능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