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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를 여행하기 전, 낙타는 아프리카에만 살고 사막은 사하라 사막이 전부인줄 알았었다. 동화책속에만 있는 줄 알았던 사막을 제썰메르에서 진짜로 만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넓디넓은 인도 대륙을 한번에 모두 돌아보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북부와 남부 중에서 마음에 끌리는 쪽을 찾게 된다. 수도 델리가 북부에 가까운 탓에 처음 인도를 찾은 여행자들은 자연스럽게 북부쪽을 먼저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빼놓치 않고 들러야 하는 도시가 바로 제썰메르(자이살메르)다.
 16시간의 길고 긴 기차여행을 끝내고 드디어 제썰메르에 감격스런 첫 발을 내딛었다. 날씨부터가 델리와는 영 딴판이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등줄기를 따라 줄줄 흐르고, 고운 모래알갱이들이 섞인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어와 쉬지않고 내 얼굴을 때린다.

게스트하우스 옥상에 올라 내려다 보면 아랫층이 훤히 보인다


 델리에서 떠나기 전, 한국식당에서 만난 부부에게 이제 제썰메르로 떠난다고 하니 더운날씨에 사막에 가서 병이라도 나면 어떡하냐면서 말리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사람 사는데가 더워봤자겠지 하고 기차에 올랐었는데... 결국 성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숙소부터 잡고 짐을 풀었다.

 일년 내내 해가 쨍쨍하고 건조한 곳이라 그런지 이곳의 건물들은 조금 특이하다. 건물마다 중앙에는 모든층을 관통하는 중정이 뚤려있어서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유리로 된 창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제썰메르는 바로 이 색깔이다, 은은한 황금빛 도시


 이곳은 하나같이 건물들이 모두 황금빛이다. 주로 주변 지역에서 나는 샌드스톤과 진흙을 이용해서 집을 짓기 때문에 이런 색깔이 난다고 한다. 새파란 하늘아래 사막의 모래와 참 잘 어우러지는 풍경이 아닐런지!

생전 처음보는 물건들을 입구 가득히 쌓아놓고 팔고있다


 도시 규모도 워낙 작지만 대부분의 상업시설과 관광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몰려있는 제썰메르 성 내부는 더 아담하다. 릭샤 한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작은 문을 따라 들어가면 사막도시답게 낙타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나 머리에 터번을 감을 때 쓰는 천같은 다른곳에서 보기 힘든 물건들을 늘어놓고 파는 신기한 풍경과 마주친다.

성으로 오르는 경사가 왜 그리 급해보이던지


 어휴! 사진만봐도 푹푹찌는 더위가 다시 느껴지는 것 같다.
 사실 한국보다 낮은 위도때문에 인도여행의 적기는 우리나라의 겨울에 해당하는 11월~1월이다. 때문에 더운 여름에 인도를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티벳지역인 북부인도로 방향을 틀게 된다. 물론,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자연, 건물, 그리고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풍경


 처음엔 그저 예뻐서 좋았던 제썰메르의 황금빛 성에는, 사실 더욱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다.
 지어진지 수백년도 더 된 이런 성이 만약 우리나라에 있었더라면 아마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을거다. 당연히 안에 들어갈때는 신발을 벗어주는 정도의 센스와 함부로 사진을 촬영하지 못하는 불편함도 있었겠지. 게다가 문화재 근처에 건물이라도 짓기 위해서는 온갖 심의와 규제를 지킨 후에야 비로소 건축허가가 떨어질게 분명하다.

 하지만 제썰메르의 성의 일부는 게스트하우스나 레스토랑으로 이미 쓰이고 있었다. 새로 건물을 지은 것도 아니고 성벽과 건물 그 자체가 개인의 용도로 사용되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땡볕 아래 앉아 골목길을 그리다가 쓰러질 뻔 하기도...


 밤마다 함께 술을 나누어 마시며 친해진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그 궁금증이 조금 풀렸다.
 인도의 부동산 정책 자체가 개인의 토지 소유나 건물 소유를 권장하는 입장이 아니어서, 제썰메르라는 도시 역시 처음부터 주인이 있는 땅이 아니었다는 신기한 사실! 다시말해서 비어있는 땅에 먼저 건물을 지으면 그 땅이 자기 소유가 된다는 말이다. 마치 어렸을때 하던 땅따먹기가 생각나는데... 제썰메르 성 내부 역시 그런식으로 건물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신기하게 생각했던 성벽위의 레스토랑이나 게스트하우스는 결국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한 주인의 능력덕분이라는 말!

성벽위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한잔 하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정도!


 물론 그 덕분에 게스트하우스 창문을 열면 성벽 너머로 보이는 사막도시의 풍경을 즐길수도 있고,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석양을 즐기며 성벽위에서 맥주한잔도 할 수 있으니 여행자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오래된 성벽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주면 금세 훼손되는건 아닐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날씨가 너무 더운데, 게스트하우스 옥상에 차양이라도 하나 설치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성 밖에서 바라보는 성의 풍경을 해치게 되니깐 안되겠네요, 제 게스트하우스는 밖에서 잘 보이는 곳에 있잖아요"


 짧은 대화였지만 그들이 살고있는 마을과 도시를 먼저 생각하는 진실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사막위의 황금빛 성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서울의 무분별한 개발과 난잡한 상업시설들의 간판을 보며 늘 답답했던 생각을 잠시 해본다.

성 밖으로는 나지막한 건물들이 마을을 이루고, 그 뒤로는 그냥 사막이다


 마을이나 도시는 건축가나 계획가, 정치인,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성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제썰메르 사람들의 마음씀씀이가 너무나 예쁘다.

한나절 뜨겁게 타올랐던 태양이 지려한다


 낮에는 그렇게 뜨거웠던 사막도 밤이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식어버리고 이내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해가지고나면 사람들은 하나둘 방에서 나와 옥상으로 올라와 잠을 청한다. 나도 그랬다.
 인도에서 가장 흔한 과일이라는 망고를 안주삼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나누어 마시며 즐거운 수다로 밤을 또 지새운다. 서툰 영어지만 한국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한참을 설명하니 언젠간 꼭 한국을 찾아오겠노라고 자기 이름을 내 손바닥에 적어준다. 절대 잊지말아달라면서...

 어느덧 사막 저편으로 또한번 뜨거운 태양이 솟아오를 준비를 하며 꿈틀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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