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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제정신이야?'
한여름 인도를 여행하면서 기어이 낙타를 타보고 말겠다는 나를 주위 사람들이 말린다. 사막은 겨울에도 태양빛이 뜨거운 곳인데 여름엔 어떨 줄 알고 무슨 고생을 하려 하느냐고 한다.
내 대답은 그냥 낙타가 타보고 싶어서였다. 아니, 멀리 인도까지와서 사막을 안보고 그냥 돌아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튼튼한 몸이 최고의 자랑거리이자 재산인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지.
사막? 원래 이런 모습일까
사막하면 머리속에 다들 떠올리는 이미지가 하나쯤 있지 않을까?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뜨거운 모래만이 가득한 그런 곳. 나역시 머릿속으로 그런 상상을 하면서 난생 처음보는 이상하게 생긴 동물에 몸을 맡겼다. 하지만 한시간을 가도, 두시간을 가도 어설픈 풍경이 펼쳐지는게 어째 이상하다.
생각보다 나무도 많고, 풀도 많고... 낙타를 타고 가는 내 주위로 양이나 들짐승들도 꽤 많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끝이 안보일 정도로 서있는 거대한 풍력 발전기들과 그 사이를 연결하는 전깃줄들이 못내 아쉽다.
내가 고작 이런 풍경을 보자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거야..?
낙타는 참 매력적인 동물이다
낙타 사파리를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낙타에 혹이 두개인지 한갠지, 발가락은 몇개인지, 울음소리는 또 얼마나 괴상한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은 앞에서 몰이꾼들이 끌어주는 대로 그냥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 쉬워보이긴 하지만 위아래로 심하게 출렁이는 낙타위에 계속 앉아있자니 금새 엉덩이가 두들겨 맞은 것 처럼 아파온다. 움직이질 않고 가만히 있으니깐 그런가보다 하고 꾀를 조금 내었다.
낙타 몰이꾼이랑 이얘기 저얘기 주고 받다보니 금새 친해져 버렸다. 어차피 사람이라곤 우리 둘 뿐이니 친해지는건 정말 눈 깜짝할새다. 뜨거운 사막을 맨발로 걷는게 힘들다며 자기도 내 뒤에 올라타면 안되겠냐 물어보길래 흔쾌히 좋다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재빠른 몸놀림으로 올라탄다.
어디가 끝일까
뒤에 태워주는 대신 고삐를 내가 잡겠다고 했더니 얼른 내 손에 쥐어주고는 뒤에서 연신 담배를 뻐끔거린다.
몇 살이냐고 물어보니 이제 겨우 열여섯이란다. 한국에서는 열여섯살이면 담배를 피워선 안된다고 말해줬더니 그런게 어딧냐며 싱겁게 웃어 넘긴다. 능글맞기로는 정말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다.
시원하지?
계속 똑같은 풍경이 슬슬 지겨워질 무렵 말 그대로 '오아시스'가 앞에 보인다.
물론 야자수가 가득하지도 않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도 아니지만 괜히 반갑다. 오아시스라기 보다는 낙타랑 동물들이 물을 먹을 수 있게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우물가다. 그래도 잠시 쉬어가는게 어디야!
사막위에서 난생 처음보는 '모래설거지'
이른 아침에 출발햇는데 어느덧 한시다.
아침나절에는 제법 선선해서 이거 해볼만 하겠다 생각했지만 사막의 날씨는 정말 시시각각 달라진다.
햇빛를 피해 그늘에 들어와 점심먹을 준비를 하는데, 땅이 이글거리는게 눈에 보인다. 요리를 하기위해 불까지 피워놓으니 정말 한증막이 따로 없다. 볼멘 소리로 불평을 하나 둘 늘어놓기 시작하지만 몰이꾼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능숙한 솜씨로 점심을 준비한다.
너무 맛있었던 오늘의 만찬
한참을 그렇게 불앞에서 뚝딱거리다가 요리를 내온다.
짜파티 한장과 삶은 야채, 그리고 라면사리같이 생긴 정체모를 음식을 한그릇 가득이다.
배가 너무 고파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정말 맛있다! 사막에 모래바람이 그대로 다 들어와 저걱저걱 흙이 씹히는 요리를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긁어먹었다. 물론 손으로!
다 불어 터진 라면을 건져놓은듯한 사리는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다가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스프를 조금 뿌려 보았더니 영락없는 라볶이가 된다. 한 끼 참 든든하게 먹었다.
사막에는 당연히 물이 귀할테니 설거지는 어떻게 할까 참 궁금했었는데 그 또한 참 신기하다.
다 먹은 컵과 그릇을 가져오더니 모래를 조금 파 구덩이를 만들고 거기에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손으로 고운 모래를 한웅큼 퍼올려 그릇에 문지른다. 더러워보이지만 의외로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잘 닦인다.
어디든지 사람사는 곳이면 다 방법이 있고 길이 있구나 하고 감탄하며 다시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낙타 표정이 너무 여유로워 보인다
해가 질 무렵에야 드디어 보고싶었던 진짜 사막에 도착했다.
그리 크지 않은 모래언덕이지만 풀한포기 없는 사막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모래를 손으로 쥐어보기도하고, 그 위에 누워 하늘도 한번 보고 손으로 모래장난도 쳐보며 그렇게 사막의 정취를 느끼며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본다.
우적우적. 한참 그렇게 심취해있는데 어디서 분위기 깨는 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옆에서 낙타들이 건초를 뜯어먹는 소리다. 풀을 씹어먹는 폼이 하도 신기해서 얼굴을 마주보고 한참 보고있었더니 갑자기 재채기를 하는바람에 놀라 뒤로 자빠질 뻔 했다. 깜짝이야...
잠깐 먹는건줄 알았더니 끝도없이 계속먹는다. 먹으면서 똥도 싼다... 귀여워서 웃음이 피식 하고 새어나온다.
그렇게 사막에 해는 점점 기울어가고 낙타들의 식사는 밤새도록 계속되었다는 사실...
사막에서 그림을 그리게 될 줄이야...
사막의 모래언덕위에서 한참을 그렇게 넋놓고 있다가 별안 무릎을 딱 치며 일어섰다. 아, 그림그리는걸 잊고 잇었지! 하루에 한장씩은 그리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런데 가만보니 큰일이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구불구불 모래언덕 뿐이니 무엇을 그려야 할 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룻동안 정든 조쉬(내가 몰았던 낙타이름은 조쉬였다)를 그려주고 싶은데 나는 이상하게 생물체를 그리는 데에는 전혀 소질이 없다. 무슨 초등학생이 그린것보다 더 우스운 모양새로 그려지니 그것도 안되겠다.
결국 꾀를 내어 저런 그림을 한장 그렸다.
그림으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을지는 하늘아래 낙타들의 실루엣이 참 마음에 들었다.
뭐 그럭저럭 마음에 들어하고 스케치북을 덮으려는데 몰이꾼이 스케치북을 살짝 보더니 크게 웃는다.
낙타는 까만색이 아닌데 왜 저렇게 칠했냐고 물어보길래 나는 원래 동물을 못그린다고 말해줫더니 이번에는 더 크게 웃는다. 쳇... 내 속내가 다 들통난 모양이다.
그렇게 사막위에 누워서 한참을 그림가지고 웃고 떠드는 사이, 사막에는 어느새 빛 한줄기 없는 칠흑같은 어둠이 까맣게 내려와 깔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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