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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을 골목을 혼자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골목이 거의 끝날 무렵 얼핏 맞은편을 바라보니 소 한마리가 떡하니 서서 길을 막고 있더라. 여기까지 걸어온게 억울해서 어떻게든 비집고 지나가 보려 했지만 결국 소를 피해 반대로 왔던길을 돌아가야만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상하리만큼 신기한 일들조차,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인게 너무나 많은 모양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하지만서도 적응이 되고나면 언제 그랫냐는 듯 오히려 그런 상황을 즐기게 되기 마련이다.

 인도에는 참 많은 도시들, 참 많은 여행지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푸쉬카르만큼 또 유별난 도시가 있을까. 얼핏 첫 느낌은 그냥 조용한 마을이었던것 같다. 사람들의 북적임도, 릭샤의 소음도 없는 평온하고 조용한 도시. 몸과 마음도 슬슬 지쳐갈 무렵 그렇게 푸쉬카르에 도착했다. 설사병을 막 앓고 난 직후라 그동안 못먹은 음식들을 이곳에서 시컷 먹고 푹 쉬다가야겠다 하는 생각에 한껏 신이 나 있었다. 물론 푸쉬카르가 고기가 없는 채식도시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진 말이다...


 인도에는 수많은 신들과 그 신을 모시는 수많은 사원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도 브라흐마, 빗쉬누, 쉬바 신은 3대 주신으로 굉장히 많은 곳에서 접할 수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사원이나 상점, 레스토랑이름, 심지어는 사람 이름에서도 이런 신들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푸쉬카르는 그 중에서도 창조의신 브라흐마를 모시는 인도의 몇 안되는 사원이 있는 도시이다. 창조의 신이라면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격이라고 보여지지만 이상하게도 인도에는 브라흐마를 모시는 사원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푸쉬카르는 도시 전체에서 고기나 달걀등의 육류섭취를 일체 금기시 하고 있다. 물론 당연히 술도 팔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한 도시 전체가 성스러운 '특별 구역'인 셈이다.
 성스러운 도시 푸쉬카르의 평온한 느낌은 너무 좋다. 하지만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실망한게 사실이다. 아니 어떻게 야채만 먹으면서 여기서 버텨야 하지... 오래 머무르려 했지만 얼른 다른 도시로 떠나야겠군 하고는 혼잣말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동안의 기우에 불과했다.
 인도 여행중 가장 잘 먹고, 많이 먹었던 도시로 푸쉬카르를 다시 기억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

 푸쉬카르에는 분명 고기도, 달걀도 없다. 모든 요리는 오로지 채식 식재료만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 모든 음식에서는 고기맛이 난다. 씹는 느낌도 그대로 살아있다. 이게 무슨말이냐구? 고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이 오히려 푸쉬카르의 요리사들을 더욱 창의적인 사람으로 바꾼 셈이다. 감자를 으깨고 콩을 응고시켜서 고기를 대신할 식재료를 만들고(soy meat) 거기에다 푸쉬카르의 신선하고 풍부한 채소들이 맛과 향을 더하니 다른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푸쉬카르만의 아주 특별한 요리가 탄생하게 된다. 긴말 할 필요 없이 지금부터 푸쉬카르만의 특별한 요리 세계를 엿보자.


비리야니는 인도 전역에서 흔하게 맛볼 수 있는 꽤 흔한 요리다. 우리나라의 볶음밥 쯤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 향긋하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볶음밥의 특성상 안에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그 맛이 많이 달라지게 되는데 푸쉬카르에서는 계란도 쓸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야채와 향신료만으로 된 비리야니였다.

 맛은 어떨까. 느끼하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은 담백하고 깔끔한 그 맛이다.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나니 배가 적당히 부르면서도 조금도 더부룩하지 않은게 아주 괜찮았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냥 다른 곳에서도 맛볼 수 있을법한 평범한 요리. 조금 더 특별한 푸쉬카르만의 요리를 먹어보고 싶었다.


 엔칠라다를 시켰다. 사실 엔칠라다는 인도요리가 아닌 멕시코 요리다.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또르띠아에 쇠고기나 닭고기를 볶아 만든 속을 채우고 사워크림을 살짝 올려 오븐에 구워나오는 엔칠라다. 과연 고기없이 이 맛을 어떻게 재구성 했을지 내심 궁금해진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사프란 향이 벤 밥과 함께 한입 덥썩 베어물었다. 어라? 고기가 있다. 분명 고기맛이 난다. 씹는 느낌도 비슷하고 우리나라 김밥에 들어가는 불고기처럼 잘게 썰린 고기가 느껴진다. 여기는 푸쉬카르인데 이렇게 고기를 쓰면 안되는것 아니냐고 주방장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고기를 전혀 넣지 않았단다. 그러면서 하는말이 콩을 갈아서 두부를 만드는 것 처럼 굳혀서 고기를 대신하는 식감을 내는 재료로 쓰고있단다.
 허, 그것 참 신기하다. 고기가 없이도 고기맛을 똑같이 낼 수가 있다니 말이다.


 자, 드디어 푸쉬카르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기 없이 만드는 고기요리'의 결정판이다. 유명한 식당에 가면 꼭 그 식당이름을 내건 요리를 먹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제일 자신있는 요리에 자기 식당이름을 내걸었을 테니깐 말이다. 내가 시킨 요리는 moondance special sizzler, sizzler는 영어로 '지글거리는 것'이라는 뜻으로 철판에 고기와 야채를 함께 구워서 통째로 내놓는 요리 한접시를 의미한다고 한다. 하룻치 숙박비에 맞먹는 만만찮은 가격이었지만 과감하게 시켜봤는데 요리가 일단 생긴것부터 참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이번엔 아까 엔칠라다보다 한술 더 뜬다. 양념치킨 처럼 생긴 고기 조각들이(물론 고기는 아니겠지만) 꽤 많은데 먹어보니 정말 큼지막한 치킨 조각을 뜯어먹는 느낌이다. 맛이며 색이며 씹는 그 느낌이며. 이번에도 역시 콩을 이용해서 만든 고기 대용품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고기인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푸쉬카르의 요리사들이 참 대단해 보인다. 양이 꽤 많았지만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치웠다. 콩으로 만들었으니 크게 살찔 염려도, 소화가 안될까 걱정도 안해도 괜찮다. 꽤 괜찮은 요리 방법이다.


 앞서 이야기한 요리들은 나름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들이 만들었던 꽤 고급스런 요리 축에 속한다. 뭐 그정도 되는 식당이면 고기를 어떻게 대신해서 요리를 할까 고민을 하는 것도 이해가되고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진짜 푸쉬카르의 진정한 맛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푸쉬카르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바로 그 롤링난. 말 그대로 탄두리 화덕에서 구워낸 일종의 밀가루 떡인 '난'을 야채와 속을 넣어서 돌돌 말아서 주는 길거리 음식이다. 푸쉬카르 시장골목인 바자르에는 세군데 정도의 롤링난 가게가 있다고 하는데 처음 가게에서 먹어보고는 완전 팬이 되어버려서 푸쉬카르에 있는 내내 매일같이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아서 사진속에 보이는 롤링난 한개가 25루피. 우리나라돈으로 700원정도 한다. 얼핏 군것질 정도로 보이지만 한개 먹고나면 배가 꽤 불러서 식사 대용으로도 괜찮았다.


 이름은 롤링난이지만 사실 인도요리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채식을 주로 하는 유대인들이 즐겨 먹는 팔라페라는 음식이 롤링난의 기원인데 모양이나 맛이나 거의 비슷하지만 겉을 싸고있는 또르띠아가 롤링난쪽이 조금 더 맛있다는 차이정도가 있을까.

 그냥 밀가루 빵에 양상추랑 토마토, 그리고 소스 조금 넣고 돌돌 말아주는 요리지만 배낭여행자들에게 이토록 입소문이 난 이유는 사진속에 보이는 조그만 알감자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알감자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롤링난에는 이 알감자를 반쯤 으깨서 넣어준다. 한입 먹어보면 느끼게 되지만 야채들과 어우러진 알감자의 맛이 마치 고기를 씹고 있는 듯한 식감이다. 콩을 갈아서 응고시키는 복잡한 과정이 없어도 감자 하나만으로 고기를 꽤 그럴싸하게 흉내낼 수 있는게 참 신기하다.


 물론, 모든 음식이 다 그렇듯 맛을 내는데 가장 중요한건 좋은 재료를 쓰는게 아닐까.
 시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면 참 빛깔도 곱고 잘생긴 과일이나 채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적당한 기후와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재료들이말로 푸쉬카르의 맛있는 요리들을 만드는 비결인 셈이다.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몰라~ 하고 손가락으로 말해주는중^^


 하루에도 한두번씩 매일같이 찾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롤링난 가게 친구들과 친해졌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들어가는 재료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빠르게 만들수있고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롤링난. 게다가 기름진 고기도 안들어가니 몸매관리에 신경쓰는 여성들도 가뿐하게 한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 돌아가서 롤링난으로 대학가에서 장사를 해도 꽤 괜찮지 않을까 하고 농담을 하며 먹고 있었는데, 절대 그렇게는 안된다고 너스레를 떤다. 내가 이미 어떻게 만드는지 다 봤는데 뭘 더 숨기냐며 물어보니깐 자기가 한국에 가면 롤링난으로 부자가 될꺼기 때문에 내가 먼저 하게 할수는 없단다... 하여간 이친구 장사수완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물갈이며 설사병이며 죽도록 고생하던 여행 중반이었지만 푸쉬카르에서 먹은 맛좋은 요리들로 영양보충도 제대로 하고 기분도 산뜻해진 느낌이다.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 음식들, 푸쉬카르에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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