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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로컬버스나 디럭스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아 좋은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관광지가 아닌 조그만 마을들을 지나며 창밖으로 만나는 풍경이 참 좋았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거리가 500km를 넘어가는게 예사인 인도에서는 이정표에 100km만 남았다고 나와도 거의 다왔네 하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오곤 했다. 우데뿌르에서 푸쉬카르로 가는 길도 참 멀고 험하더라.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디럭스버스보다 한 등급 더 낮은 로컬버스에 몸을 실었다. 우리나라 시골 읍내풍경을 연상케 하는 작은 마을들을 수도없이 지났던 것 같다. 이런 작은 마을을 지날때면 어김없이 버스가 한번씩 쉬어간다. 길 한쪾에서 기사아저씨께서 피곤하셨는지 짜이로 목을 축이며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본다. 언제 다시 출발할지 마냥 기다리는게 너무 심심해서 길거리에서 파는 군것질거리를 몇가지 사먹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먹던 것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 군옥수수도 팔고, 입이 심심하지 않게 씹을 수 있는 곡물 씨앗같은것도 이것저것 맛을 보고 다녔다. 아마도 그때 먹은게 잘못된것 같았다.

푸쉬카르에 도착해서 3일 내내 심한 설사병에 혹독한 신고식을 치뤄야만 했다. 인도사람들이 주는걸 함부로 받아먹지 말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었는데 호기심을 억누르기가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그나마 이정도였던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푸쉬카르에서는 욕심 부리지 말고 푹 쉬었다가 가기로 했다.


 섬기는 신도 많고, 그만큼 금기도 많은 신기한 나라 인도. 인도에 가면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중에 하나가 바로 가트(Ghat)다. 뜻을 해석하자면 그냥 '계단'정도. 실제로 별게 아니라 그냥 강이나 호숫가에 만들어진 대형 스탠드 같은 계단이 전부다. 하지만 그냥 별거아닌 계단이라고 생각하고 가트에서 마음대로 행동하다가는 크게 꾸중을 들을지도 모른다. 이들에게는 신성한 의식을 치루고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성스러운 공간이기 때문. 심지어 어떤 가트에서는 신발도 못신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덕분에 맨발로 소똥이며 각종 더러운 오물들을 짓이겨 밟아가며 찜찜한 기분으로 호숫가를 산책해야만 했었다.



 푸쉬카르는 참 작고 아담한 도시다. 자그마한 호수를 중심으로 시장이 들어선 큰 길과 자잘한 골목이 전부인 산 속 마을이지만, 브라흐마 신을 모시는 사원이 있어서 마을 전체가 채식을 할 정도의 유별난 마을이기도 하다. 푸쉬카르의 이런 유별난 식습관 금기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포스팅을 따로 한 적이 있으니 그 이야기는 안하겠다.

>채식도시 푸쉬카르, 고기 없이도 너무나 맛있는 요리들 포스팅 보러가기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늘 하는말이 있다. 푸쉬카르는 아주 성스러운 곳이니(Holy palce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그만큼 몸가짐을 조심이 하라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런 말을 듣다보니 이제는 마을 분위기마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해가 질 무렵이면 마을 전체에 울려퍼지는 종소리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디선가 의식을 진행하는 소리 같은데, 같은 간격으로 울리는 종소리가 조금은 스산하기도 하다.





 우데뿌르에서도 이미 물이 다 말라 바닥을 드러낸 호수를 보았던 터라 이제는 충격이 좀 덜하다. 푸쉬카르의 아름다운 호수 역시 뜨거운 태양아래서 질척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묘한 색채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호수 수면에 비친 반영이 참 아름다워 보였는데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나는 아무래도 물과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 

 호수 전체를 둘러싼 150여개의 가트 중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자이뿌르 가트. 신발을 벗지 않아도 되고 특별한 금기사항도 많지 않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가트에 앉아서 따사로운(사실은 따사롭기보다는 뜨겁다에 가깝다) 햇살을 쬐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가트에 나와 매일같이 앉아있다보면 자연스럽게 인도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걸어주곤 했다. 워낙 작은 마을이다보니 그렇게 친해진 인도 친구들을 저녁에 시장에서 또 보고, 다음날 사원에서 또 마주치고 하게 된다.




 가트 옆에 물이 채워진 수조에서 수영을 하고 놀던 인도 아이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서투른 영어를 힘겹게 구사하며 어떻게든 나와 친해져보려는 모습이 참 예뻐보였다. 그날도, 그 다음날도 우리는 자이뿌르 가트에서 같은 시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내가 앉아서 그림 그리는 모습도 보고, 뒤에와서 안마도 해주고 하며 형 동생처럼 매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가트에서 놀곤 했는데... 푸쉬카르를 떠나는 날. 차마 떠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 나랑 하고싶은 얘기도 많고, 함께 가고싶은 곳도 많아보이는 순수한 꼬마에게 내일은 내가 이곳에 없을거라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내일도 또 이자리에서 만나자며 그렇게 손을 흔들며 헤어지고, 그날 저녁 나는 버스를 타고 푸쉬카르를 떠났다. 글을 쓰는 지금도 꼬마녀석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내일도 꼭 만나자며, 함께 사원에 가자며 보이지 않을때까지 손을 흔들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거짓말을 하지 말걸 그랬다. 많이 후회가 된다.

 사진속의 아이들이 팔에 차고있는건 모기 퇴치용 팔찌다. 워낙 모기나 날벌레가 많은 인도에서 유용하게 쓰던 물건인데 화려한 색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신기하게도 가는곳마다 인도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아이템이었다. 별로 비싼 물건도 아니여서 만나는 아이들마다 하나씩 팔에 채워주고 나면 세상을 다 가진마냥 좋아라 한다. 귓속말로 모기를 쫒는 기능까지 말해주면 서로 자기꺼라며 한바탕 싸움이 나기도 했다.






 푸쉬카르는 참 그림그리기 좋은 도시였다. 북적이는 관광객들도 없고 시끄러운 릭샤도 보이지 않는다. 평화로운 분위기에 취해 가트에 나와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천국이 따로 없다. 한번은 가우 가트(Gau Ghat)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물이 빠진 호수 가운데로 걸어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가트를 그리고 있는데 멀리서 내 또래 인도 남자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림을 그리는걸 구경하고 싶단다. 처음에는 조용히 보고만 있더니 몇분 지나지 않아서 인도사람들 특유의 훈수(?)가 시작된다. 정말이지 인도사람들은 하나같이 오지랖도 넓다. 이쪽에 창문이 빠졌다, 저쪽은 기둥이 모자라다 하며 여기저기서 말이 많아진다. 자주 겪는 일이라 알았다고 대답해주며 조금씩 그림을 수정해주자 다들 너무나 즐거워한다. 하도 자주 있는 일이라 이제는 익숙하다.


 푸쉬카르에 머무르는 동안 아팠던 몸은 금새 정상으로 돌아왔다. 고기를 먹지않고 채식만 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작은 마을에서 몸과 마음을 잠시 쉬어가는게 참 좋았다. 고된 인도여행이지만 푸쉬카르에서 쉬어간 덕분에 이후의 일정도 잘 소화해낼 수 있었던것 같기도 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멋진 사진을 많이 찍어오고 싶은 곳이었는데 말라버린 호수 덕분에 멋진 사진은 그리 많이 건지지 못했다. 물론 내 실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하지만 푸쉬카르 가트에 앉아서 그렸던 그림들은 그 어느곳에서 그린 것보다 내마음에 쏙 들었다. 진짜 호수는 모두 말라있었지만 그림 속 하얀 백지위에는 푸른 호수를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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