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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도에 도착하고 길거리로 나왔을때 그 느낌은 아직까지 잊혀지질 않는다. 포장이 안되어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골목길에는 소똥이며 쓰레기가 나뒹굴고, 쉬지않고 빵빵거리는 릭샤들이 빠르게 달리는 사이사이로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건너는 사람들. 무질서를 넘어서 거의 혼돈에 가까운 인도의 길거리 풍경이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어도 귀가 찢어질 듯한 경적소리와 매캐한 매연의 냄새를 담을 수 없어서 아쉬울 뿐...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다는 인도여행 가이드북에선 '인도에서 운전하는건 다이너마이트를 손에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라고 묘사해놓았는데 정말 사실이다. 인도사람들이야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 습관이고 생활이 되었겠지만 아마도 외국 여행자가 인도의 도로에서 차를 몰다가는 신경과민으로 쓰러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인도의 도로는 말로 다 표현 못 할 만큼 어지럽고 시끄럽다.
인도인에게나 외국인들에게나 가장 주요한 이동수단은 바로 릭샤. 일종의 삼륜 오토바이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뒷좌석에는 두명정도를 태울 수 있는 조그만 의자가 있고 그 뒤로 배낭 한두개쯤 들어갈 트렁크같은 공간도 마련되어있다. 의자가 꽤 작고, 공간도 많이 협소하지만 놀랍게도 릭샤 한대에 탈 수 있는 인원은 열 명도 더 된다. 마치 곡예를 하듯 릭샤 바깥에 발을 걸치고 매달려서 합승을 하는 일이 빈번한데 내가 본 릭샤중에서는 무려 열일곱 명을 태우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관광객들이 그렇게 매달려서 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주로 관광객이 탄 릭샤에 합승을 하는 인도인들이 자연스럽게 매달리곤 한다. 옆차와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순간에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나를 보며 그들은 해맑은 미소를 지을 뿐이다. 문화충격이라는게 이런걸까.
인도의 대부분의 골목길들은 차가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데다가, 설사 차가 있다 하더라도 복잡한 도로사정 때문에 제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이런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릭샤라는 인도만의 문화가 만들어진 셈이다. 그러고보니 인도에는 횡단보도나 신호등이라는게 그리 많지 않았던것 같다. 길이라도 한번 건너갈라 치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데, 그냥 막무가내로 릭샤와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서 건너는 수 밖에 없다.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조금더 요령이 생겼는데, 인도인들이 직접 손으로 릭샤들을 막으며 길을 건너는걸 보고 따라해 보기도 했었다. 지금생각하면 아찔한 순간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시내의 도로사정은 그냥 복잡하다 정도로 표현이 되지만, 교외로 나가면 이건 정말 충격 그 자체다. 고속도로 진입로를 역주행을 하며 오히려 당당하게 경적을 울리며 앞차를 비켜서게 만드는 로컬버스를 탄 적도 있었고, 길을 건너는 소떼를 막무가내로 릭샤로 들이받으며 지나가던 기사 아저씨도 있었으니... 말 그대로 판타스틱한 동네가 아닐 수 없다, 인도라는 나라는 참.
카주라호를 여행하고 있을때였다. 늘 릭샤 뒷자석에만 타고 다니던 나에게도 릭샤를 직접 몰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기게 되었으니... 물론 공짜는 아니고 돈을 조금 내고 빌리게 되었다. 아무리 도로질서가 어지러운 인도라지만 그래도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경찰에게 잡힐 수도 있고 더군다나 난 한국 운전면허조차 없는데 아저씨께서 흔쾌히 빌려주시기로 하셨다. 카주라호가 작은 도시였기때문에 별 문제 없을거라고 말씀하시며...
카주라호에서 25km정도 떨어진 '르네 폭포'라는 곳에 릭샤를 직접 몰고 다녀오기로 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인도에서 운전을 한다는게 살짝 겁이나긴 했지만 릭샤를 타고 다닐 때 마다 꼭 한번 직접 몰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에 결국 내가 운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릭샤를 운전하기까지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르네 폭포까지 왕복으로 릭샤 뒷좌석에 타고 갔다오는건 300루피(우리돈 9000원 정도)라는데 너무 비싸다며 깎아달라 했더니 그럼 네가 직접 몰아보는건 어떻겠냐며 나를 꼬득이는게 아닌가. 흥정을 조금해서 결국 같은 가격으로 맞췄다. 같은 값이면 내가 직접 몰아보는 경험도 할 수 있는 쪽이 훨씬 재미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왕복 50km나 되는 길을 떠나기 위해 릭샤 앞자리에 앉았다.
처음으로 릭샤 앞좌석에 앉아보니 마음이 들떠버렸다. 하지만 인도의 도로사정을 너무 훤히 하는 터라 무슨 사고라도 생길까 조심조심 신중해졌다. 출발하기전, 주인 아저씨가 옆에 앉아서 조종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시는데 흔히 생각하는 스쿠터같은 방식이 아니라 클러치가 함께 있는 수동 조작방식이다. 좀 낡은 릭샤라 그런지 변속을 하다가 자꾸만 시동이 꺼져서 애 좀 먹었던것 같다. 그래도 동네를 한바퀴 돌고나서 자신감이 붙은터라 이제 출발하려고 하는데 아저씨께서 오시더니 브레이크가 잘 안되니깐 조심하라고 하신다. 그걸 이제야 말해주시면 어떡해요 아저씨!
르네 폭포까지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은 편이었다. 시내를 벗어날때만 조금 겁을 먹었을 뿐이지 교외로 나오니 길에 차도 없고 속도도 마음껏 올리며 한껏 기분을 내보기도 했다. 혹시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서 아저씨가 꼬마 한명을 데리고 가라며 붙여줬는데 이녀석이 하도 훈계를 해 대서 조금 시끄러운게 거슬렸지만 말이다.
왕복 50km를 다녀오는데 꼬박 세시간이 걸렸다. 오래된 릭샤라 스로틀을 끝까지 돌려도 속도가 그리 나지 않기도 했지만 중간중간에 변속을 하다가 시동도 많이 꺼트렸다. 그때마다 꼬마 선생님의 끝없는 훈계를 들어야 했다. 어쨌든 인도에서 운전하기, 대 성공이다! 돌아올때는 훨씬 운전이 익숙해져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도 흔들어주고 그랬었는데, 낮선 외국인이 릭샤를 운전하고 있으니 신기했던 모양이다.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나를 가르키며 뭐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잘 갔다온걸 확인하더니 주인아저씨께서는 내친김에 이번엔 레플리카 바이크까지 빌려주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그런 바이크야 한국에도 있는거고 더이상 카주라호에서 가볼 곳도 없기에 정중히 사양했다.
아래에 있는건 그때 르네폭포를 가며 찍었던 동영상이다. 원본은 훨씬 더 길지만 가장 긴박했던 순간만 추려보았다. 갑작스럽게 길 위로 염소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아서 겨우겨우 피했던 아찔했던 순간이다. 아무리 빵빵거려도 이녀석들 피할 생각을 안한다. 내가 피해가는 수 밖에...
동영상을 보다보면 내 옆에있는 꼬마가 얼마나 쉴새없이 훈계를 하는지 살짝 들린다. 기어를 올려라 내려라 핸들을 돌려라 말아라...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마냥 귀엽다. 나보고 굿 드라이버라며 칭찬해주는 여유까지!
내친김에 바라나시에서는 싸이클릭샤도 내가 직접 몰아버렸다. 릭샤는 크게 오토와 싸이클 두가지로 구분되는데 오토릭샤가 기름넣고 달리는 오토바이라면 싸이클릭샤는 사람이 직접 페달을 밟는 말그대로 인력거인 셈이다. 오토릭샤보다 훨씬 쉬울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게 쉽지가 않다.
싸이클릭샤 뒷좌석에 타고 있는데, 내가 힘이 좋아보였던건지 더운날씨에 꾀가 난건지 나보고 직접 운전해 볼 생각 없냐고 물어보는게 아닌가. 오토릭샤도 몰아봤는데 이정도야 하고 생각하며 좌석에 앉았는데, 한국에서 타던 자전거랑 영 딴판이다. 기어도 없고 축도 다 틀어져서 페달을 밟는데 두배는 힘이 더 들어가는 것 같았다.
좁고 복잡한 바라나시의 골목길을 이리저리 피해서 달리다가 결국 사고를 내고 말았다. 뒷바퀴가 두개인 자전거를 처음 몰아본지라 어디까지가 릭샤의 크기인지 순간 헷갈려 버린거다. 결국 길가에 세워둔 커다란 표지판 기둥에 뒷바퀴를 정통으로 들이받고 말았다. 자전거가 망가졌을지도 모르는데 릭샤 주인아저씨는 뭐가 좋은지 계속해서 크게 웃는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도 이번엔 꾀를 조금 냈다. 내가 운전하고 당신을 태워줬으니 오히려 나한테 돈을 줘야하는것 아니냐고 일부러 큰소리를 냈다. 그냥 장난으로 하는 말이었는데 릭샤 주인아저씨가 내 어깨를 잡으며 수고했으니 그럼 짜이 한잔을 사주겠단다. 덕분에 길거리에서 파는 짜이도 한잔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인도에서 운전하는건 분명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불에 뛰어드는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지만 않게 조심한다면... 인도에서 한번쯤 운전해 보는것도 재미있는 추억이 되지 않을까. 지금생각해보면 조금은 아찔했지만 나만의 특별한 추억이 또 하나 늘어난 것 같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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