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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정처없이 거리를 걷고 싶어지는 날도 있었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며 타지에서의 여정에 몸이 지쳐갈때면, 하루정도는 빗소리를 즐기며 방에서 여유를 즐기고 싶어지기도 한다. 비가 억수로 오던 푸쉬카르에서의 어느날 이야기다.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릴 즈음,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푸쉬카르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짐을 내리려는 찰나, 기다렸다는 듯이 장대비가 쏟아진다. 우산을 꺼낼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온몸은 녹초가 되어있었고, 지도를 보니 이곳에서 숙소는 그리 멀지 않았다. 잠깐 비를 맞는것쯤은 괜찮겠지 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옆에서 릭샤꾼들이 나를 약올린다.
 
 너희가 찾는 숙소는 여기서 2km는 더 가야해~ 내 릭샤를 타는게 어때.
 지금 안타면 후회할거야~ 이렇게 비가오는데 얼른 이리 배낭을 줘.


 너희들에게 이제는 더이상 속지 않을테다. 뻔히 눈앞에 간판이 보이는 숙소를 두고 터무니 없는 가격에 릭샤를 타라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지... 앞길을 막아대며 나를 약올리는 릭샤꾼들에게 한바탕 꽥 소리를 질러버리고는 서둘러 숙소로 들어와 짐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까지 비는 그칠 생각을 않는다.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가 딸린 방을 얻은 덕택에 이른 아침부터 발코니에 앉아 책을 읽으며 떨어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오늘은 아무데도 안가고 방에서 쉬어야지.

 요 몇달간 극심한 가뭄으로 호수의 물이 다 말라버렸을 정도였는데, 오늘같은 장대비는 꽤 오랜만이라고 한다. 귀가 울릴 정도로 쏟아지는 빗소리에 앞집 옆집 사람들도 모두 발코니에 나와 앉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이방인이 반가웠는지 나를 보며 다들 손을 흔들어준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비를 맞은 기억은 거의 없는것 같다. 제썰메르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가던중 어마어마한 폭풍우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고, 오르차에서는 인적이 드문 숲속을 산책하다가 별안간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에 물먹은 생쥐꼴이 된 기억도 난다. 두 번 모두 갑작스럽게 큰 비를 만났던 경우라 비를 피하고 옷을 말리는데 정신없었던것 같다. 
 오늘은 다행히 유유자적하며 비오는 거리를 바라보는 여유가 생겨서 좋다. 작은 도시라 거리에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가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수다로 시간을 보내본다.
 
 비오는 날의 인도 풍경은 조금 신기했다. 금새 속옷까지 젖어버릴 정도로 비가 내리는데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산을 쓰지 않는다. 아니, 비가 온다는 사실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고 하는게 맞겠다. 비가 오든, 하수구가 막혀 길에 물이 차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늘 그랬듯이 천천히 거리를 걸어다닌다. 한 두 방울만 비가 떨어져도 신문이며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며 재빨리 건물 밑으로 숨어버리는 우리나라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한 술 더 떠서, 이제는 나한테 아랫층으로 내려오라고 손짓까지 한다. 이렇게 비가오는데 너는 왜 발코니에 숨어만 있냐며 나를 놀려대는데에 재미가 붙은 것 같다.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르랬다고, 여기서는 인도 법에 따라볼까 하고 읽던 책을 내려놓고 아랫층으로 내려가본다.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쏟아지는 빗물을 그대로 받아 마시기도 하고, 물이 가득 고인 길에서 발로 물을 차며 장난도 친다. 마치 순수한 어린 아이들처럼 말이다. 왜이렇게 비오는걸 좋아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인도는 지역에 따라서 기후가 많이 다른데, 이곳 라자스탄 지역은 비가 잘 오지 않는 건조한 기후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게다가 여름이면 뜨겁고 건조한 날씨에 에어컨도 잘 없으니 쏟아지는 비야말로 이들에게는 최고의 피서법인 셈이다. 잠깐이지만 비를 좀 맞고나니 금새 몸이 시원해지는걸 느낀다.







 그러고보니 한국에 있을 땐 비를 피하기만 바빴지 한번도 빗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오늘은 비가 옵니다 라고 매일 똑같이 일기예보를 해도 50%는 맞춘다'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기억이 얼핏 난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비가 참 많이 오는 곳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내리는 이 비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비내리는 거리의 냄새는 어떤지, 떨어지는 비를 마시는 느낌은 또 뭔지 관심을 가져본적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너무 무심했던 걸까.

 그러다가 감기걸린다고 얼른 들어오라는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제는 포즈까지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주문한다. 특별할 것 없는, 내리는 비 하나에도 즐거워하고 고마워할줄 아는 이들. 그들을 보며, 이제는 갑작스럽게 비를 만나도 찡그리기보다는 웃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여유가 마음속에 생긴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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