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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전 유럽을 여행할때만 해도 그렇게 한국음식이 그립거나 먹고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에서는 비싼 돈을 주고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는 고급 요리들을 매일같이 먹을 수 있었으니 굳이 더 비싼 돈을 줘가면서 까지 한국음식을 찾아 헤멜 필요가 없었던게 아닐까. 하지만 인도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코 끝이 찡해질 정도의 강한 향신료와 어딜가도 하나같이 짜고, 느끼하고, 맵고... 너무 강렬한 인도음식들만으로 여행내내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무리가 아니었을까. 처음 인도에 도착했을때는 매일같이 서민들이 자주 찾는 진짜 인도식 식당에 들어가 이것저것 먹어보면서 마냥 신났었던것 같다. 하지만 나역시 영락없는 한국사람인 모양이다. 일주일정도 지나고 나니 어느샌가 한국음식, 김치, 라면 이런게 자연스럽게 생각이 났다.


 델리에서만 해도 한국요리를 먹는게 그리 어렵진 않다. 워낙 한국 사람도 많고, 공항으로 식재료를 조달하기도 편해서인지 몰라도 한국풍의 음식이 아닌 진짜 한국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루는 너무 날씨가 더워 냉면을 시켜봤는데 놀랍게도 한국에서 파는 '둥지냉면'을 끓여서 내오는게 아닌가. 하지만, 처음 델리에 도착했을때만 해도 인도에 왔으면 당연히 인도음식을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이런 식당들을 가볍게 코웃음 치며 제끼곤 했다. 이후 여행을 하면서 그때 왜 미리 먹어두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조금 했긴 하지만...

 당연히, 인도에서는 인도음식보다 한국음식이 더 비싸다. 게다가 대도시에서 조금만 멀어지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한국요리를 먹는다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이름은 분명 익숙한 요리들이지만 나름대로 그 지방의 재료와 주방장의 상상력을 가미한 요리들이 나온다. 뭐, 나름대로 복권을 사는 기분으로 이것저것 시험삼아 시켜보는 재미도 있지만 꽝이 나왔을때는 조금 허무하달까... 짧은 여정이었지만 지칠때마다 다시 힘을 내게 해주고, 또 서로 다른 스타일의 한국요리들을 비교하며 먹어보는 소소한 재미를 주었던 인도의 한국요리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 한다.




수제비와 칼국수

 인도사람들에게 한국요리라고 하면 아마도 매콤하고 시원한 국물요리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도시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요리도 수제비, 칼국수, 육개장과 같은 국물요리다. 특별히 한국의 재료를 구하지 않더라도 각종 야채를 가지고 푹 끓이면 비슷하게 만들 수 있기도 하고, 운좋게 한국 고추장을 구비해놓은 식당에 들어가면 우리나라에서 먹는 그 맛에 가까운 맛있는 요리를 마음껏 먹을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물요리처럼 맑은 국물이라기 보다는 걸쭉한 소스에 가까운 요리가 많은 인도에서, 여행하다가 잠깐씩 맛보는 이런 국물요리는 나도모르게 마지막 한숟갈 까지 그릇을 기울여가며 떠먹게 된다.


 40도를 넘나드는 제썰메르에서 한여름의 낙타사파리를 마친 뒤, 우데뿌르로 들어와 제일먼저 먹었던 음식이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의 메뉴판에서 칼국수라는 낮익은 이름을 보자마자 고민할 필요도 없이 'This please'하고 시켜버렸다. 멸치로 국물을 낸 하얀 칼국수를 마냥 생각했는데, 아차 여기는 인도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대신 매콤한 국물에 스파게티 면발 비슷한게 들어있는 요리가 테이블위에 올려진다. 걱정도 잠시, 한숟갈 떠서 입에 넣는 그 순간 온몸이 부르르 떨려온다. 어쩜 이리도 맛이 좋을까.


 내친김에 다음날 다시 찾아가 이번에는 수제비를 시켜봤다. 이게 참 재미있는게 분명 수제비와 칼국수는 많이 다른 음식이지만 이곳에서는 비슷한 국물에 면발 대신 수제비를 넣어준다. 생각해보면 모양만 다른 내용물이 들어갔을 뿐 비슷한 요리로 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계란을 풀은 얼큰한 국물에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나니 이제야 좀 한끼 제대로 먹은듯한 느낌이다.

 
  칼국수와 수제비는 어느 식당에서 시키더라도 실패할 확률이 높지 않는 음식이라는걸 알게 된 이후, 푸쉬카르에서도 한번 수제비를 시킨적이 있었는데 다른 곳 처럼 빨간 국물이 아니라서 깜짝 놀랬다. 정말 멸치와 다시마로 푹 끓여 만든 국물이었을까. 하지만 생각보다 맛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인도 주방장에게는 조금 어려운 레시피였던게 아닐까^^




김치 볶음밥


 이름만 들어도 설레였던것 같다. 적어도 인도에 있을때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냉장고에서 묵은 김치 조금이랑 찬밥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요리에 불과하지만 머나먼 인도땅에서는 김치를 구하는게 굉장히 어렵지 않았을까. 내가 아는 김치볶음밥의 맛과 모양은 아예 잊었다. 인도식으로 새롭게 해석한 김치볶음밥은 과연 어떤 맛일지 호기심에 일단 주문을 했다. 



 인도에서는 김치볶음밥의 주 재료인 밥과 김치, 두가지 모두 조금 달랐다. 우선 우리나라의 쌀밥처럼 찰지고 부드러운 밥이 아니라 인도쌀을 이용해 만든 밥은 찰기가 없고 꼬들꼬들하게 씹힌다. 더욱 놀라운건 김치! 배추김치는 기대조차 않했지만 오이를 가지고 김치를 만들어서 내올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모양은 좀 그렇지만 일단 한입 먹어보니 식감은 그럭저럭 김치볶음밥이랑 비슷하다. 아삭한 김치의 식감을 대신하여 구하기 쉬운 오이를 넣은 쉐프의 아이디어인 셈이다. 고추장은 없지만 케찹과 향신료를 섞어 비슷하게 만든것도 참 재미있다.
 맛이야 어떻든 사실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배고픈 여행자에게 무슨 요리인들 맛이 있지 않겠는가.


 한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카주라호는 비교적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음식점들이 꽤 성업중인데, 역시나 오랜 노하우가 축적된 한국요리들은 놀라울정도로 그럴싸하다. 배추김치는 아니지만 총각김치를 넣어 만든 김치볶음밥은 한국에서 먹는 그 맛 그대로였다.




 여러 도시를 다시며 김치볶음밥을 많이 먹어보니, 결국 맛을 좌우하는건 김치와 밥이다. 당연한 소리인가?
 배추김치를 내온곳은 단 한곳도 없었지만(델리의 경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제외) 무를 가지고 만든 총각김치가 꽤 훌륭했던 곳은 카주라호와 바라나시정도. 그보다 더 작은 도시들에서는 이름은 김치지만 그냥 야채절임에 가까운 경우도 많았다. 밥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 쌀을 직접 공수해와 지어준 밥이 아닌 인도식 푸석한 밥은 한국요리와는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아쉬운대로 먹을만 하긴 하지만 말이다. 경기도 이천쌀로 밥을 짓는다고 자랑하던 카주라호 총각식당의 아저씨가 문득 떠올라 잠시 웃음이 나온다.




라면


 인스턴트 식품인 라면은 그나마 조리도 쉽고 실패할 확률도 거의 없는 요리중 하나다. 단, 신라면 한봉지 끓여주는 가격이 하루 방값보다도 더 비싸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래도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 한국음식 맛을 제대로 내주는건 역시 라면이 최고다.



 카주라호나 델리, 제썰메르, 바라나시. 모두 신라면이나 너구리를 끓여준다. 당연히 맛도 똑같다.
 그보다 더 재미있었던건 아래 사진에 보이는 오르차에서 먹었던 김치라면. 허름한 가게의 외관에 왠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지만 속는셈치고 일단 김치라면을 시켰다. 그런데 주문한지 1시간이 넘어도 음식이 나올 생각을 안한다. 답답한 마음에 주방에 몰래 들어가봤더니 세상에. 나보다 더 어려보이는 여자아이가 계량컵을 들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열심히 즉석에서 요리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라면이라는게 어떤 요리인지 조금 귀띰을 해주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또 마냥 기다렸다.

 드디어 오르차표 김치라면이 나왔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며 그릇에 국물을 따로 더 내온다. 맛은 어떨까? 김치는 온데간데 없고 온갖 야채를 잘게 썰어넣은 야채죽에 가까웠다. 의외로 국물맛은 합격점. 하지만 이걸 라면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한국과 인도의 퓨전요리로 새롭게 이름을 붙여주는게 괜찮을지도.


 바라나시의 모나리자 베이커리에서 파는 김치라면은 인도에서 먹었던 한국 요리중에서 으뜸으로 꼽고싶다. 그냥 인스턴트 라면을 그대로 끓여주는 곳과는 달리 나름의 방법으로 인도 라면과 한국의 김치를 섞어서 전혀 색다른 맛의 라면을 맛볼 수 있었다. 게다가 보통 130루피(약 4000원)하는 비싼 가격이 아니라 겨우 35루피(약 1000원)이면 이 멋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양푼 가득 담아주는 김치라면에 한국사람들의 인심까지 느껴진다.





백반 정식

 확실히 카주라호가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호화스러운 한국요리가 있었으니... 바로 백반 정식이다! 인도에서 백반정식을 먹을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
 메뉴 구성은 대강 이렇다. 경기도 이천쌀로 지은 맛있는 쌀밥에 된장국, 계란말이와 감자조림, 그리고 총각김치. 정말 너무 한국요리가 그리울때면 카주라호로 찾아오시길. 엄마가 집에서 해주는 밥을 먹는 기분이 들정도다. 단 너무 자주 찾는건 금물이다. 계속 이렇게 본격적인 한국요리를 먹다보면 내가 인도에 있는건지 한국에 있는건지 분간이 잘 안될 정도이니...^^(이곳 총각식당에서는 한국 YTN 뉴스도 볼수있다는 더욱 놀라운 사실!)







닭도리탕

 만들기 어려워보이는 요리지만 의외로 인도 여기저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다. 인도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소와 돼지를 대부분 먹지 않기 때문에 닭고기가 굉장히 흔한데, 닭으로 만들 수 있는 한국요리인 닭도리탕이 흔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우데뿌르에서 한번, 카주라호에서 한번 닭도리탕을 먹었는데, 두번 다 놀라울정도로 맛있었다. 특히 카주라호에서 먹었던 닭도리탕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것보다 더 맛있었다는 이야기가...
 닭다리를 신나게 뜯으며 일단 주린배를 채우고, 매콤한 국물에 밥을 싹싹 비벼먹고 나면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이구나 하면서 행복해졌던것 같다. 닭도리탕 말고 백숙을 파는집도 많았는데 시간이 오래걸린다 해서 결국 먹어보지는 못했다. 인도에서 먹는 백숙맛은 또 어떨지, 내심 궁금해진다.

 카주라호에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곤 하지만 어떻게 쌀이나 고추장같은 진짜 한국 식재료들을 늘 구비하고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카주라호에는 공항이 있었다. 델리나 바라나시같은 대 도시들처럼 공항이 있고 지리적으로 대도시에 가까운 카주라호에서 그럴싸한 한국요리들이 많은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더 외지고 작은 도시들에서 파는 한국요리들은 시키기 전에 고민을 꼭 한번 해봐야 한다. 팁을 주자면, 식당에 비치된 방명록 같은걸 달라고 해서 먼저 다녀간 한국사람들의 코멘트를 읽어보고 메뉴를 선택하면 실패할 확률을 조금 줄일 수 있다. 인도땅에서 제대로된 한국요리를 먹길 바라는것도 무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비싼 돈 주고 먹는것 이왕이면 맛있게 먹는게 좋으니깐 말이다.






 인도로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떠나기 전부터 음식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곤 한다. 인도음식의 강한 향때문에 카레한번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사람부터 현지식을 먹고 탈이나 한달 내내 화장실만 들락날락하다가 살이 쪽 빠져서 왔다는 사람까지... 이런 이야기를 듣고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젠 걱정 할 필요가 없다.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도시면 어김없이 눈에 띄는 한국식당의 한글로 된 간판들과, 어설프지 않은 정통 한국요리와 얼큰한 라면까지! 마음에 인도를 품고 있다면 그런 걱정은 모두 떨쳐버리길. 유적지 관람보다 더 재미있고 익스트림한 식도락으로 가득한 인도야말로 맛있는 매력으로 가득한 곳이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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