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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공부좀 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아마도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아닐까. 어느덧 대학 졸업반이 가까워진 나역시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같이 집에서 듣는 말이니 말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한국에 있을때는 누구나 다 그러려니 하는통에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회화만 구사하는 나를 보고 영어가 혹시 한국의 공용어냐고 물어오는 인도인이 있을 정도였으니. 어느새 나역시도 한국의 주입식 영어교육에 물들어 그저 하라는대로만 했던건 아니었을지.

 인도의 아이들은 어떨까. 한국의 아이들이 학창시절 내내, 혹은 평생동안 영어와 씨름하며 골머리를 앓지만 영어가 공용어인 인도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마치 한글깨우치듯 영어를 배우는 걸까.


 카주라호에서 우연찮게 초등학교 1~2학년 또래 되보이는 아이들을 만난적이 있었다. 꽤 오랜시간을 한 도시에 머물다보니 자연스럽게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동네 아이들이나 청년들한테 먼저 말을 건네는 일이 많아졌는데 그날따라 커다란 눈망울의 아이들이 무리지어 내 앞을 지나가길래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학교에 돌아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던 모양이다. 빈부격차가 꽤 심한 인도에서는 그래도 정식으로 교육하는 학교에 다닐 정도면 중산층 이상은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행하면서 만났던 아이들중에는 학교는 커녕 집에서 글씨연습할 펜하나가 없어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아이들도 있었다.


 인도에서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면 취직이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잘사는 집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는데 반해, 형편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그놈의 영어때문에 취직도 제대로 못하고 평생 힘든 노동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결국 이 모든게 영어가 공용어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듣고보니 조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영어가 공용어인 인도나, 그저 외국어인 한국이나 똑같이 영어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있으니말이다.





 사진을 찍어주다보니 고사리손에 작은 교과서가 하나 들려있다. 별 생각없이 지나칠 뻔 했는데, 마침 옆에있던 예비 초등학교 선생님인 동행이 교과서를 좀 보고싶단다. 그러고보니 영어가 공용어로 지정된 인도에서는 아이들이 어떤식으로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인도풍으로 살짝 각색된 등장인물 삽화들을 빼고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와 거의 다를게 없는 인도의 영어교과서.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 교과서에비해 저학년용임에도 나름 어려운 예문들이 들어있다는 점 정도. 손에 교과서를 들고있던 아이에게 한번 읽어달라고 부탁했더니 자기는 아직 영어를 배운지 얼마 안됐다며 절래절래 고개를 흔든다. 인도 아이들에게 과연 영어라는건 어떤식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헬로 마이 뿌랜드~
 Hello, my friend
 오오, 디스이즈 나뜨 뻬~리 익스뻰시부~
 Oh, This is not very expensive

 인도에 도착하면 자주 들려오는 말 그대로 인도식 영어발음이다. 한달정도 인도를 여행하며 수많은 인도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물건을 사며 자연스럽게 인도식 영어에 익숙해지고 나니 인도영여라는게 의외로 단순한 구석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사하는 영어는 아주아주 기초적인 문장구조만을 유지할뿐 시제나 수동태등의 활용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물론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나 고급 직종의 사람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의 영어는 몇개의 단어 조합으로만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손님과 물건을 사고파는 경우가 아니고 자기들끼리 대화할때는 힌디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것 같기도 하다. 
 사실상 영어는 표면적인 공용어일뿐 역시 인도인들의 모국어는 힌디어인건 아닐까. 인도에서 만난 사람들중 영어를 할줄 모른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힌디어를 모른다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어쨌든 인도 아이들에게도 영어는 넘어야 할 큰 산이다. 넓은 땅 만큼이나 수천개의 언어와 다양한 문화를 가진 인도지만 강자에 의해 원하든 원치않든 영어를 사용해야만 했던 인도 사람들. 이제 지배당하던 시대는 물러갔어도 영어만큼은 남아서 여전히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건 아닐런지.

 물론 인도가 영어권 국가가 되어서 얻게된 이득이 더 많았을수도 있겠다. 우리나라에서도 심지어 몇몇 사람들에게서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해버리자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하지만 영어때문에 고통받고, 영어때문에 차별받는 아이들이야기가 여행하는 내내 왜그렇게 자주 들려오는지 가슴이 아팠다.

 언어는 마음속에 담아둔 생각을 표현하고 이야기하도록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축복이다. 그 축복은 필히 세상을 더욱 이롭게 하는데 쓰여야 하지만 언어가 무기가 되어 사람들을 차별하고 갈라놓는 일도 많다. 인도를 여행하며, 이제 겨우 세상에 첫 발을 디딘 아이들이 언어의 벽에 가로막혀 꿈과 희망을 잃고 슬퍼하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왠지 남일같지 않았다. 순수하고 영롱한 눈망울의 인도 아이들, 이 아이들의 작은 꿈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에 영어때문에 먹구름이 끼는 일만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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