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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들 보다 유난히 땀이 많고, 더위를 싫어하는 나. 그런 내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결국 또 7월 마지막주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결제해버렸다! 이상하게도 여행을 가려고 마음먹고 일정을 만들다 보면 어김없이 여름, 그것도 한 여름이 되어버린다. 첫 배낭여행지인 유럽에서도 여름이었고, 인도의 사막 위에서 낙타를 탈때도 그랬고, 이번 아프리카 여행에서도 한국은 겨울이었지만 그곳은 35도를 넘나드는 한여름이었다. 고생할걸 알면서도 이번 여름에 다시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떠나려는 나도 참 웃긴 놈인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죽을만큼 고생한 기억이 더 즐겁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매년 찾아오는 여름도, 왠지 나에게는 특별하기만 하다.

 사람들이 흔히 마실용이라고 부르는 미니벨로 자전거 스트라이다지만, 갸냘픈 몸으로 스트라이다를 타고 멋지게 제주도 일주를 마쳤다는 한 여고생의 이야기를 보고는 용기가 생겼다. 7월이 제주도가 아무리 덥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일은 또 아닌가보다. 적어도 하루에 50km씩은 달리며 체력도 기르고 몸을 만들어 놔야 큰 탈 없이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50km라. 따로 시간을 내어 달릴 여유는 없는데 어떻게 할까. 그래서 나도 자출(자전거 출근)에 도전하기로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한강-안양천-도림천을 타고 한번에 이어진다. 늘 다니던 방식대로 버스-지하철-버스를 이요하면 한 시간 반 가까이 걸리는 거리지만 자전거 도로를 따라 가면 이론상 1시간 내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인터넷 지도에서 거리를 계산해보니 대략 20km. 왕복으로 매일 타고 다니면 하루에 40km씩은 달리게 되니 제주도 일주를 준비하는데에 그야 말로 최적의 코스다. 이렇게 좋은 코스를 곁에 두고 지난 4년간 나는 무엇을 했는지.
 어제 간만에 술을 한잔 마셔서 몸도 찌뿌둥하고, 황사가 있다는 일기예보에 조금 망설였지만 아침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집을 나섰다. 무작정 출발!

7:50 집에서 출발
9시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시간 전에는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속도계도 없고, 그렇다고 GPS가 지원되는 스마트폰이 있는것도 아니다. 모든건 눈짐작, 어림대중에 맡기고 일단 길을 따라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사실 도림천 끝에서는 길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자전거 도로가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안난다. 정 안되겠으면 접어서 지하철에 타는걸로 생각하니 마음이 좀 놓였다. 이럴땐 스트라이다가 참 좋다.

8:00 염강 나들목 / 한강 진입
집에서 한강으로 나가는 가장 가까운 나들목인 염강 나들목에 10분만에 도착했다. 아직까지는 자전거 도로가 없어서 샥이 없는 스트라이다는 심하게 덜컹거린다. 얼른 안장을 하나 좋은걸로 사야겠다. 아이고 엉덩이야.

8:05 안양천 합수지점 도착 / 안양천 진입
늘 하던 것 처럼 버스를 탔으면 한참 기다리다가 이제야 막 탑승했을 시간. 하지만 스트라이다를 타고 오니 벌써 안양천 합수지점, 양화교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시간에는 한강 자전거 도로에 처음 나와봤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꽤 많다. 이따금씩 양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아저씨들도 보인다. 한강을 빠져나와 안양천으로 진입했다.

8:17 신정교, 도림천 합수지점 도착 / 도림천 진입
안양천을 따라 양화교, 목동교, 오목교를 거쳐 신정교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지하철 2호선과 신나게 경주를 하면서 달릴 수 있는 구간이다. 원래대로였으면 이제 막 당산역에서 지하철을 탔을 시간. 지하철을 타고 지나가던 길을 따라 자전거로 아침에 달리니 기분이 묘하다. 바람이 시원해서 머리가 상쾌해지는 기분이다.

8:34 구로 디지털 단지역 통과
지난번 도림천 라이딩의 목적지였던 구로 디지털 단지 역을 통과했다. 시계를 보니 지하철에게 따라잡힌 느낌이 들지만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이제부터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 혹여 중간에 자전거 도로가 뚝 끊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계속 달렸다.

8:43 신림역 통과
다행히 신림역을 지나서도 계속해서 자전거 도로가 이어진다. 신대방-신림 구간은 도로 상태가 조금 안좋긴 했지만 신림역 이후부터는 다시 막 깔아놓은 듯한 깨끗한 도로가 나온다. 원래는 없었는데 도림천 생태하천 복원 공사를 하면서 최근에 만들어 놓은 듯 하다.
신대방을 넘어서부터는 거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어느새 꽤 멀리까지 왔나보다.

8:50 도림천 아래에서 길을 잃다
관악산이 조금씩 가까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림천 상류로 따라 올라갈 수록 길도 좁아지고 높이도 낮아진다. 그런데 생각치 못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끝까지 달리면 관악산 입구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더니만 그 끝은 막다른 길이다. 공사하시던 아저씨가 웃으며 다시 돌아가라고 손을 흔드신다. 세상에. 결국 왔던 길을 되 돌아서 미림여고 사거리(동방 1교)에서 도로로 올라가야 했다. 혹시라도 도림천을 끝까지 달려 보려는 분들은 반드시 동방1교에서 마지막 계단을 타고 도로로 올라가시길...

8:55 서울대 정문 도착
결국 자전거 도로로 잘 따라오다가 마지막에 와서 공도를 달려야만 했다. 의외로 자전거 도로보다 아스팔트 위에서 더 잘 나가는 느낌이다. 한 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 지하철 출퇴근보다 무려 30분이나 단축한 셈이다. 이정도면 첫번째 자전거 출근길 치고는 꽤 성공적이라고 혼자서 뿌듯한 표정을 지어본다. 도착해서 메신저 백을 내려놓고 자전거를 접다가 문득 스친 생각. 맞아. 가방에 카메라가 들어있었지... 열심히 달리다가 카메라 꺼내는 것도 잊어버렸다. 결국 오늘의 라이딩은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그렇게 마무리 되어버렸다.

오늘의 주행거리 : 약 20km / 걸린 시간 : 65분 / 평균속력 : 약 20km/h

수고했어! 내 귀염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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