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년을 묵혀뒀던 인도 여행기. 이제는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간이다. 그동안 밀린 여행기를 쓴답시고 하루가 멀다하고 여행사진을 꺼내어 보고, 또 다시 보고 그러는 시간들이 참 좋았다. 벌써 먼 옛날 일이 되어버렸지만 사진을 주욱 훑어보고 있노라면 마치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한데... 그래서 여행기를 마치는 것조차 아쉽다. 어쩌면 그래서 나도모르게 여행기를 천천히 썼던걸지도 모르겠다. 델리를 떠나던 그날 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름도, 얼굴도 서로 몰랐던 네 남녀가 함께 모여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나와 정민이형은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떠날 예정이지만 나머지 둘은 아직도 여정이 많이 남아있던 터. 우리는 우리대로 여행이 끝나는게 아쉬워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은 그들대로 다..
하나. 여행 초기에는 인천발 델리행 에어인디아 비행기를 함께 타고왔던 일행이 몇 있었다. 다들 이름도 얼굴도 모르던 사이였지만 델리에서의 첫날밤, 수다를 안주삼아 맥주를 들이키며 금새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즐거운 만남도 잠시, 몇몇은 북쪽 라다크 지방으로 올라가고 우리는 제썰메르로 향하는 바람에 갈라서게 되었다. 제썰메르로 가는 길에서도 또 새로운 일행을 만났지만 사막투어를 마치고 각자의 길을 따라 갈라졌다. 그런데 그때 헤어졌던 경훈이형을 한 달여만에 바라나시에서 다시 만났다! 영어를 한마디도 할줄 몰라서 '화장실이 어디냐', '메뉴판을 가져다달라' 같은 기본적인 문장을 발음까지 받아 적어가던 경훈이형. 우리보다 일정이 조금 더 긴덕택에 남부 함피, 고아지방 까지 내려갔다가 바라나시로 올라왔다고 했다..
얼마전 친한 후배 한놈이 세계일주를 떠났다. 작년 초 나와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했던 친군데 이번엔 무려 1년짜리 계획으로 지구 한바퀴를 돌겠다며 훌쩍 떠나버렸다. 그의 길고긴 여정의 출발은 당연히 인도다. 나의 강력한 추천과 조언에 힘입어 자신있게 델리행 티켓을 끊더라. 요새 간간히 페이스북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니 요새는 북부 라다크 지방을 돌고 있는것 같다. 또 다른 누님 한분도 내일이면 인도로 떠난다. 짧은 일정이지만 처음 가보는 인도라는 낮선 여행지에 걱정이 많으시길래 아는대로 최대한 조언을 해드렸다. 물론 나의 조언은 항상 이런식이다. '무조건 일단 떠나보세요! 그럼 다 알게 됩니다.' 그러고보면 내가 인도에 다녀온 이후로 참 많은 사람들이 인도 여행을 물어온다. 그 중에서도 제일 답하기 어려..
건축학도인 내가 여행을 한다고 하면 흔히들 '답사'를 위한게 아닐까 하고 으레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오히려 내 여행은 그 반대다. 사실 '답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여행'에서 만큼은 그런 강박관념을 버리고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유유자적 유랑하는걸 즐기는 편이다. 물론 인도에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답사'할 거리가 널렸다. 꼬르뷔제가 설계한 계획도시 찬디가르나, 2학년때 과제로 만들었던 쇼단하우스 같은 건물들 외에도 참 많다. 하지만 내가 진짜 보고싶은건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 자체, 가장 낮은 곳에서 눈높이를 맞추고 바라보는 그들의 삶 그 뿐이었다. 바라나시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내가 보고싶었던 인도와 가장 흡사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눈앞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인도..
인도를 여행하려는 당신에게 오직 단 하루만 허락된다면 어느 도시를 택할 것인가. 정치, 경제의 중심지이자 인도의 수도인 델리? 아니면 고요한 아름다움이 있는 푸쉬카르? 서구 문명과 인도의 전통이 어우러진 뭄바이? 만약 그 하루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라나시를 택할 것이다. 인도인들의 성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 그 곳에서 가트에 앉아 갠지스강 너머로 지는 태양을 보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델리에서 시작하는 인도 배낭여행은 크게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의 두 가지 루트로 나눌 수 있다(물론 라다크 지방을 여행하거나 더 길게 여행하는 경우는 제외). 내가 선택한 반시계방향 루트의 경우엔 델리를 출발해 제썰메르나 조드뿌르를 제일먼저 만나게 되고 한바퀴를 다 돌아..
인도에서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고 많이 찾는 곳은 어디일까? 수도인 델리도 아니고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도 아니다. 정답은 바로 카주라호. 규모도 작고 인구도 얼마 없는 작은 도시지만 이곳에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그 뭔가가 있단다. 카주라호의 별명은 애로틱시티! 이름만 들어도 왠지 한번 가보고 싶은... 그런 도시였다고 하면 너무 속보이려나?^^; 오르차에서 지친 몸을 카주라호에 오자마자 말끔히 풀었다. 사실 카주라호에는 점심때쯤 도착해서 첫날에도 둘러볼 여유가 있었지만 일부러 밖에 안나가고 푹 쉬었다. 덕분에 둘째날인 오늘은 이른 시간부터 팔팔하다! 애로틱시티 카주라호를 돌아보려면 이정도 체력비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응?) 카주라호는 다소 남사스러운 포즈의 정교한 조각들로 덮인 사원들이 가득한 곳이다...
오르차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는 새벽 네시가 넘어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음식과 물이 맞지 않아 계속 힘들어하는 누나와 그 옆에서 마지막까지 정중히 부탁을 하는 가네쉬.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더 남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길 바라는 가네쉬의 마음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그러기엔 누나의 몸상태가 자꾸만 악화되는게 눈에 보였다. 네시가 조금 넘어서 결국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늦은시간까지 우리와 함께있어준 가네쉬를 돌려보내려 했지만 막무가내다. 결국 가네쉬는 숙소 마당에 있는 해먹에 누웠다. 인도의 여름밤은 밖에서 자도 좋을만큼 덥지만 혹시나 모기가 있을까 걱정되어 우리가 가지고 있던 해충방지 스프레이를 가네쉬에게 건네줬다. 오르..
질나쁜 홍차 찌꺼기를 달여 설탕과 우유를 넣어 마시는 짜이. 인도 사람들은 아침에 짜이 한잔을 마시지 않으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인도 사람들에게 짜이는 습관이자 생활이다. 게스트하우스 손님들에게 짜이 끓여주기를 참 좋아하는 템플 뷰 게스트하우스의 주인 아저씨 덕분에 오르차에 머무는 내내 셀 수 없이 많은 짜이를 마셨다. 그리고 오늘은 그 마지막 한 잔을 마시는 날. 오르차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이자 간즈 빌리지 아이들과도 마지막 수업이다. 짜이 한 잔에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모든 맛이 들어있다. 오르차에서의 시간들 역시 한 잔의 짜이처럼 기쁨, 슬픔, 흥 여유... 여행하며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한데 뒤섞인 기분이랄까. 그래서인지 마지막 수업을 하러 간즈 빌리지로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