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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네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주신 내 이름이 반짝반짝 빛나던 세발 자전거를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그 때부터 자전거와 인연을 맺게되어 참 많이도 타고 돌아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 관리를 딱히 소홀히 했던 것도 아니지만 십 몇년 동안 거의 매년 한번씩 자전거를 도난당했던 쓰린 아픔도 있다. 마지막 자전거를 샀던게 2006년. 하지만 고이 잘 묶어두었던 자전거는 다음날 아침 온데간데 없이 증발해 버렸고, 그 이후 꽤 오랜 시간동안 자전거 없이 살았다. 하지만 요새 봄볕이 왜 그리도 좋은지. 자꾸만 몸이 근질근질 거려서 결국 다시 또 한대를 질러버렸다. 이번엔 정말 잘 간수해서 평생 함께 할꺼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말이다.


 화사한 봄날의 낭만을 한껏 즐기려면 이정도 준비로 충분 할까. 지하철에도 접어서 들고 다닐 수 있는 자전거 스트라이다와 함께 다시 즐거운 라이딩 생활을 시작해보려 한다. 발을 즐겁게 해줄 자전거, 귀를 즐겁게 해줄 엠피쓰리, 눈을 즐겁게 해줄(혹은 손을 즐겁게 해줄) 카메라. 이렇게 삼총사 세트로 나들이 준비를 마치고, 바로 한강으로 떠나는가 싶었지만... 일요일 오전부터 멀리 강남까지 가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길고도 길었던 세 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드디어 자유의 몸이다! 낑낑대며 멀리까지 접어서 들고갔던 스트라이다를 순식간에 펼치고 안장에 앉았다. 과외 학생의 집은 서울 고등학교 근처. 우리집은 멀리 가양대교 남단이다. 다행히 한강을 따라 직선으로 연결이 되지만 지도에도 나와있다시피 지하철 2호선을 타면 빙빙 돌아서 가야 한다. 게다가 버스-지하철-버스로 이어지는 잔혹한 환승사정상 오는데는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자, 이제 다시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보자. 과속을 할 생각도 없고, 중간중간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유랑할 계획이지만 그래도 대중교통을 타고 가는것 보다는 조금더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그렇게 채비를 마치고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반포 한강공원에서 부터 라이딩을 시작했다! 출발~


 일단 자전거를 제대로 타려면 어떻게든 한강으로 진입해야 한다. 말이 많은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지만 그나마 덕분에 확실히 좋아진게 하나 있다면 한강 진입로가 예쁘고 안전하게 정비되었다는 것. 유량의 변화가 급격한 한강의 특성상 고수부지가 넓게 있고, 그 위로는 자동차까지 쌩쌩 달려서 보행자나 자전거 유저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게 한강이지만, 곳곳에서 지하로 연결되는 통로 덕분에 힘들지 않게 강변으로 나갈 수 있었다. 서울고등학교에서부터 법원 앞, 고속터미널을 거쳐서 반포대교 남단 사거리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오르막이 많아서 낑낑대는 바람에 30분이나 걸렸다.

멀리 남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화창한 날씨


 멀리 서울타워도 보이고 시계가 꽤 좋은걸 보니 날이 참 화창한것 같아 기분마저 좋아진다. 언제 또 멀리서 중국발 황사가 몰려와 서울을 뒤덮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날 미리미리 라이딩을 충분히 즐겨놔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 쌩쌩 위험하게 질주하는 차들을 뒤로하고 지하 연결통로 출입구에 도착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이내 밝은 빛이 쏟아져 내리며 한강이 펼쳐진다


 예전에 한창 라이딩을 즐기는 시절에 들었던 말인데, 반포대교(잠수교)는 라이더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다리 높이가 낮고 차도만큼 넒은 자전거 도로가 다리 양 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어서 한강을 건너기에는 최고의 조건이라고 한다. 사실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보면 정말이지 강을 건너는게 의외로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요새는 꽤 달라진것 같다. 춤추는 분수가 만들어지고 플로팅 아일랜드 띄운다고 공사판을 벌이면서 잠수교의 자전거 도로는 폭이 더 넓어졌고, 한강의 다른 다리들도 자전거를 들고 쉽게 상판까지 오르내릴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너무 오랜만에 한강을 찾았더니 하여튼 뭔가 많이 바뀐 느낌이다.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지금부터 달리면서 찬찬히 둘러보기로 하자.



반포지구에 막 진입하여 둘러본 주변 풍경


 하늘이 참 파랗고 좋다. 강바람까지 솔솔 불어오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그래서 그런지 강가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참 많이 보인다. 전문적인 장비를 갖춘 우락부락한 선수들 부터, 알콩달콩 수다를 떨며 2인 자전거를 함께 타는 연인들까지.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그렇게 한강을 즐기고 있다.



편리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구조물


 반포대교를 출발해 다음 다리인 동작대교를 지났다. 지하철, 자동차, 자전거가 함께 만나는 곳이라 그런지 교각 아래가 많이 복잡해 보인다. 멀리 다리에 붙어있는 관제탑 같은 구조물이 바로 엘리베이터다. 다리가 꽤 높아서 계단으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엔 힘들수도 있는데 그런점에서는 왜 이제서야 만들어졌을까 할 정도로 반가운 구조물이다. 게다가 위에는 멋진 풍경을 보며 차 한잔 할 수 있는 테라스 카페까지 있단다. 물론, 올라가보지는 않았지만. 한강의 거의 모든 다리에는 이러한 구조물이 현재 덧붙어 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모든 구조물의 생김새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다는 점이다.(물론 양화대교 같은 일부 다리에는 조금씩 다른 모습도 보인다) 모든 다리가 저마다의 표정이 있고 색깔이 있는 만큼, 그 맥락을 그대로 이어받아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 같이 만들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우주에서 뚝 떨어진것 같이 우뚝 솟은 엘레베이터 타워들이 어딘가 위화감 마저 들게 만든다.



내 사랑 스트라이다!


 잠깐 쉬어가며 강을 배경으로 인증샷 한장, 찰칵!



아름다운 풍경 이면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아픔도 스며 있다


 직접 달려보니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 자전거 도로가 많이 정비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중간중간 잠깐 쉬어갈 수 있는 데크도 예쁘게 설치되어있고 사람들도 꽤 잘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에게 보기좋고 편한 것들도 자연에게는 큰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최근에도 인터넷 상에서 한강 정비사업의 이면이 이슈화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와같이 예쁘고 보기좋은 시설들을 만들면서 자연 환경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없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또한, 강변에 널려있는 폐자재나 쓰레기들은 눈살을 찌뿌리게 만든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또 뜯어내는 헛수고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배려하는 세심함이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하는 한강대교 근처 코스


 한강대교가 가까워지면서 이렇게 자동차 도로와 자전거 도로가 엇갈리며 만들어지는 재미있는 코스도 만날 수 있다. 하나로 합쳐졌다가 또 갈라지고 하면서 교각사이를 요리조리 통과하며 달려본다. 어쩔수없이 오르막이 가끔 생기기도 하지만 다리 밑으로 불어오는 강바람이 있어서 그리 힘들지는 않다. 때마침 엠피쓰리에서 MC Sniper의 '지도 밖으로의 행군'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지도 밖도 아니고, 행군도 아니지만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리듬에 몸을 맡겨본다.



드디어 여의도다!


 자, 드디어 63빌딩이 눈앞에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의도까지 왔으니 대충 절반은 넘게 달린 셈이다. 중간에 잠깐 마포대교 아래를 지나쳤는데, 칙칙한 콘크리트 교각 일부를 알록달록하게 칠해 놓은게 눈에 띈다. 예전에 서울시 디자인 본부에서 '서울색'이라며 선정했던 몇몇 색깔들로 칠을 해 광장을 꾸며 놓았다고 한다. 그냥 콘크리트로 남겨두는 것보다야 보기 좋을 것 같지만, 왜 서울색이 꼭 그 색깔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강 옆에 인공 호수라니, 조금 아이러니 같기도 하다


 반포대교에서 가양대교 까지 달리며 지나간 코스 중에서 가장 붐비던 곳이 바로 이곳 여의도 지구다. 작년 디자인 올림픽때 조금은 어설픈 수변공간으로 꾸며놓았던 이곳은 어느새 본격적인 광장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이런걸 언제 만들었는지 참 빠르기도 하다. '물빛광장'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에서 사람들은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삼 면이 바다로 둘러 쌓이고, 굵직한 강들도 참 많은 우리나라지만, 이렇게 길가다가 어디라도 물이 있으면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 같다. 하긴 나도 어렸을때는 그랬었지...하는 생각을 하며 옆을 지나쳐 계속 페달을 밟았다.



선유교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힘내자!


 여의도를 지나고 당산철교 아래로 계속 길이 이어진다. 이제는 좀 익숙한 풍경. 문턱이 마르고 닳도록 드나들었던 선유도, 그리고 아름다운 다리 선유교. 가느다랗고 유려한 자태를 뽐내는 선유교 위에는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건너고 있었다. 앗! 저기 다른 스트라이다도 한대 보인다. 반가워!




드디어 집으로~


 계속해서 성산대교, 가양대교를 지나 드디어 집으로 가는 구암 나들목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반포대교부터 정확하게 50분이 걸렸다. 쉬엄쉬엄 사진을 찍으며 달린것 치고는 적당히 걸린 것 같다. 스트라이다를 얕봤었는데 이정도 주행 능력이면 전국일주도 문제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전거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나들목을 건너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로 들어섰다.


수고했어~ 조만간 이쁜 이름하나 지어줄게!


 한강은 확실히 달라졌다. 더욱 안전하고, 즐겁게, 그리고 편안하게. 풍경을 즐기고 바람을 느끼며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앞서도 언급 했듯이 한강 정비사업 중에서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점은 접근성을 확보했다는 점. 다리와의 엘레베이터를 통한 연결이나 나들목 정비사업은 진작부터 했어야 하는 한강의 중요한 숙원이었다. 다만 급하게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자연환경과 주변 맥락을 미처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한 점은 안타깝게 생각된다. 앞으로 한강 뿐 아니라 서울시 전체를 따라 자전거 도로를 계속해서 확충해 나갈 계획이라고 서울시는 밝혔다. 한강 정비사업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더 멋진 자전거 길이 이곳 저곳에 뚫리길 기대해 본다. 언젠가는 서울 어디에서라도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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