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Ávila)를 출발한 기차는 다시 고원을 가로질러 살라망까(Salamanca)에 도착했다. 마드리드로부터 약 220km, 기차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와 같은 '대학도시'다. 1218년에 설립된 살라망까 대학은 중세 유럽의 지성을 이끄는 한 축이 되었고, 15세기 말에는 스페인 예술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지성의 숨결은 오늘날까지도 도시 구석구석에 깃들어 살라망까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살라망까는 스페인 전역에서 까스떼야노(Castellano-스페인 중부 까스띠야지방의 언어, 현대 스페인어의 기원이다.)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스페인을 찾는 사람들에겐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보다 더 친숙한..
까스띠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은 바야돌리드를 중심으로 마드리드 서북쪽 지역을 넓게 아우르는 행정구역이다. 넓고 평탄한 고원지대와 건조한 기후는 스페인 내륙지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덕분에 까스띠야 이 레온은 이러한 환경에 아주 잘 맞는 '하몬(jamón)'과 '와인'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하몬은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소금에 절여 수 개월 이상 건조시킨 스페인의 전통 음식이다. 상온에서 매달아두고 보관하기 때문에 건조한 날씨는 필수다. 우리나라처럼 습도가 높은 곳에선 수입해오는 것 조차 쉽지가 않은 음식이다.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 역시 건조한 날씨와 물이 잘 빠지는 마른 토양에서 잘 자란다. 그야말로 스페인의 정체성과도 같은 하몬과 와인이 바로 이 지역의 자연적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
포트와인(Vinho do Porto, Port Wine)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와인이다. 주요 생산지는 포르투갈 북부의 도우루 강 계곡이며, 중세 시대 포르투갈 제 2의 항구인 포르투(Porto)에서 영국으로 대량 수출되기 시작하며 '포트(Port, 항구) 와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은 포트와인 수출을 통해 막강한 부와 힘을 축적했다. 그리고 그 명맥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늘날에도 전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포트와인의 매력을 찾아 포르투를 방문한다. 와인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은 우리 둘이지만, 오늘 만큼은 그 매력에 흠뻑 매료되고픈 마음이다. 포르투의 아침이 밝았다. 도우루 강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갑지만 사람들은 분주하게 저마다의 일상을 시작한다. 모두들 일터를..
포르투(Porto)는 포르투갈 북부의 항구도시다. 리스본 다음가는 제 2의 도시지만 어쩐지 한국 웹상에서는 포르투보다 FC포르투가 상위에 검색된다. 실제로 인구는 약 24만명 정도로 대한민국 수도권 인구밀도와 규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제 2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들릴 정도의 규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투는 과거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무역의 중심지이자 포르투갈의 기원이 된 역사적인 도시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세계 각국의 수 많은 여행자들이 이 곳을 찾고있다. 비몽사몽 아픈몸을 이끌고 간밤에 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 힘겨운 여정이었다. 미리 앱으로 검색해놓은 값싼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왔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문은 닫혀있었고 얼떨결에 같은 주인이 운영하는 싸구려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
예전에 웹상에서 '세상의 끝'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자욱한 안개 위로 깎아지는 듯한 높은 절벽이 날카롭게 이어지는 풍경으로 기억된다. 그 사진은 실제 영국 어느 지역에 있는 '하얀 절벽'이라는 곳이라고 하는데 다른 사진을 더 찾아보니 맑은날의 풍경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두어시간 거리에 있는 호까곶(Cabo da roca) 또한 여느 해안 절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진짜 '세상의 끝'이다. 적어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의 유럽인들에게 있어서는 정말 그랬을 것이다. 포르투갈 서쪽 해안선에서 대서양을 향해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 이 곳은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이다. 꽤 의미 있는 장소이지만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의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전날 하도 푸지게 먹고 놀아서인지 몸이 무겁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여행하며 이렇게 마음 편히 놀고먹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다. 스무 살 멋모르고 떠났던 첫 유럽여행에선 여유보다는 의무감이 앞서곤 했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곳을 들르고 봐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황당한 생각이 또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땐 그게 너무나 당연했다. 그래서인지 운 좋게 맞이한 두 번째 유럽 여행은 더욱 즐겁고 풍성하기만 했다. 특히나 포르투갈에서의 짧은 일주일은 그 절정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의 여행은 먹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여행하며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리스본에서의 둘째 날 아침 메뉴는 내가 제안한 프렌치토스..
텅 빈 캔버스 위에 도시를 그린다고 상상해보자. 우선은 배경, 코발트빛 하늘, 7개의 언덕, 푸른 강물 정도면 될 것이다. 다음은 세부적인 것들을 그려야 할 차례. 알록달록한 집들,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길, 사람들이 햇빛을 쬐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광장... 이 정도면 경치는 무척 아름답다. 하지만 무엇인가 상징물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샌프란시스코의 현수교처럼 생긴 다리, 마누엘 양식의 작은 탑, 하얀 돔을 그려 넣어보자. 자, 이정도면 완벽하다. 이제 한발짝 물러서서 방금 그린 걸작을 한 번 살펴보자. 이것이 바로 리스본이다. -론니플래닛 스페인&포르투갈편 823p. 줄곧 스페인에 대해서만 써오다가 갑작스레 포르투갈 이야기를 꺼내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몰라 익숙한 책 한권을 펼쳤다. ..
입사 2년차 중반에 접어들던 지난 초여름, 처음으로 혼자 주택 설계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대상 부지를 답사를 시작으로 사례조사와 대지분석, 기본설계 제안까지의 초기 과정은 학교에서 하던 설계스튜디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계획안이 어느정도 잡히고 본격적으로 공사용 도면을 그리는 실시설계가 진행되면서 부터는 난생 처음해보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모르는 것 투성이라 시간이 오래걸리는건 물론이고 마음고생도 심했다. 다행히도 이제는 설계가 거의 마무리되어 착공을 준비하는 중이다. 건축에서 도면은 설계자의 생각을 시공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도구다. 하나의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는 물론이고 창호도, 내부전개도, 화장실상세도, 천장도, 우오수계통도 등 수 많은 종류의 도면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