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탕속에 누워 큰 기지개로 아침을 맞았다. 전날의 피로는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평소 같으면 느즈막히 일어나 출발했을 우리지만 오늘 만큼은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기로 마음이 통했다. 내가 지난 1년간 Y와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며 전수해준 몇 가지가 있는데 온천욕도 그중 한가지다. 발을 담가봤을때 몇 초 못견딜 정도로 뜨거운 온도여야만 근육이 풀리는 효과가 있다. 확실히 수안보 이후 Y는 온천욕 맹신자가 되었다. 친구는 이렇게 닮아가는 것 같다. 아침부터 열심히 씻었더니 배가 고프다. 숙소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기웃거려보는데 식당이 눈에 띄질 않는다. 분명 어젯밤만 해도 보였던것 같은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근처 시장까지 한바퀴 슥 둘러보았지만 김밥집 하나 보이질 않는다. 그냥 짐을 다 챙겨나와..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자락 옥녀봉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한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을 굽이치며 지나 지리산을 휘감아돌아 마침내 광양만에 이르러 남해바다와 한 몸이 된다. 한국에는 섬진강을 노래하는 시인들이 참 많다. 산이 많아 동서남북으로 흐르는 강줄기도 참 많은 우리나라지만 섬진강 만큼은 어딘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한 달 전부터 휴가를 미리 써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꼭 4월의 아름다운 어느날에 섬진강을 내달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주말, 하늘이 내려준 축복과도 같은 날씨 속에 꼭 꿈을 꾸는 듯한 이틀간의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 최고의 자전거길은 무조건 섬진강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섬진강을 달린다는건 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선물이다. 섬진..
금강의 둘째 날 하늘 역시 맑았다. 아침나절엔 바람도 제법 선선하게 불어오는 것이 자전거 타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우리가 하룻밤을 묵었던 부여에서 금강 하굿둑이 있는 군산까지는 아직도 70km 정도 남아있다. 하지만 바람도 없고 길도 좋아 큰 무리 없이 예정대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젯밤 늦게까지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운 터라 아침은 가볍게 먹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커피를 샀다. 학생 때는 커피를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부터 확실히 늘었다. 평소엔 아주 연하게 내린 원두커피를 여러 번 푸짐하게 먹는 걸 좋아하지만 길 위에서만큼은 달달하고 걸쭉한 게 끌린다. 부소산성 근처에 숙소에서부터 남쪽으로 부여 시내를 가로질러 곧바로 금강에 합류할 계획이었다. 차도 ..
퇴근길에 외투를 벗어 손에 들었다. 정말 봄이 오려나 보다. 일부러 몇 정거장 전에 버스를 내려 밤공기를 쐬며 걸었다. 간만에 여유가 생기니 차곡차곡 밀려있는 여행기들부터 떠올랐다. 하지만 아직도 교환학생 시절의 유럽 여행기는 리스본의 차디찬 겨울에 머물러 있다. 마침 그 무렵 아팠던 터라 즐거운 기억도 딱히 없었다. 써지지도 않는 글 때문에 스트레스받기엔 아까운 밤이다. 작년 추석, 그러니깐 9월 초 날씨가 딱 지금 같았다. 기분 좋을 만큼 시원한 바람과 적당한 햇빛. 자전거를 타기엔 더없이 완벽한 조건이다. 물론 그 좋은 계절을 그냥 흘려보낼 리 없는 우리였다. Y와 난 추석 명절을 지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반대로 경부선 하행 기차에 올랐다. 연휴를 이용해 1박 2일로 짧게 다녀오는 라..
전에 국토종주 여행기를 올리던 당시 학교 선배가 링크하며 붙여준 한 줄의 코멘트가 생각난다. '여행기도 여행기지만 가끔 등장하는 맛집투어가 일품'이라고 하셨던 것 같다. 정확히 보셨다. 어쩌면 우리가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목적은 전국의 산해진미를 맛보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면에서 1편의 제목 '담양 죽통밥에서 나주 곰탕까지'는 이 여행의 정체성을 참으로 잘 드러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질세라 둘째 날 여행의 제목은 '비는 쫄딱 맞았지만 목포에서 산낙지'다. 가방을 잃어버려 광주 터미널까지 다녀온 일이나, 나주를 코앞에 두고 펑크 때문에 고생한 일, 밥 먹을 데가 없어 펑크난 자전거로 나주 시내를 빙빙 돌았던 기억. 이 모든 고생스런 여정에도 쏟아지는 비를 맞아가며..
브라보. 설 연휴를 틈타 1박 2일간의 영산강 종주를 무사히 마쳤다. 거리도 그럭저럭 괜찮고 일정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크고 작은 일들이 겹쳐 힘들고도 처량했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자가 정비능력의 향상과 함께 겸손함이라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면 그냥저냥 흘려보냈을 연휴를 알차게 즐겼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여행하며 틈틈이 맛보는 산해진미는 덤이다. 순서상으로는 이미 작년에 마친 북한강, 금강 종주에 이어 '4대강 종주' 카테고리의 맨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매번 오래된 여행기만 끄집어내다간 생생한 추억마저 잊혀질까 해서 영산강 부터 적어보려 한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오늘은 무려 5일간의 꿀맛 같은 설연휴 후의 첫 월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