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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은 정말 넓고, 또 길다. 남한강과 북한강 까지 합치면 한강 수계는 전 국토의 거의 절반에 이를 만큼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렇게 큰 강을 끼고있는 아름다운 도시 서울. 그래서 나는 언제나 외국 친구들에게 서울을 설명할때 제일 먼저 한강을 이야기하곤 한다. 파리의 세느강도, 런던의 템즈강도 부러울거 하나 없다! 도심에 이렇게 큰 강이 흐르는 메트로 시티는 전 세계에 서울뿐이야! 하고 말이다.
 전에도 여러번 이야기 했었지만 한강은 유량의 변화가 급격하여 '고수부지'라는 어쩔 수 없는 지형을 만들어 내게 된다.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물속으로 잠겨 버리는 비운의 땅이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는 잘 닦인 자전거 도로를 따라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홍수다.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사랑스런 오렌지 스트라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지하철 5호선에 올랐다. 화곡역에서 아차산 역까지는 거의 한시간 거리. 꽤 멀긴 하지만 스트라이다 한 대를 더 들이기로 약속한지라 부랴부랴 발걸음을 재촉했다. 덕분에 약속 장소인 아차산역에 딱 약속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유난히도 오렌지색을 좋아한다. 그것도 희미한 귤색이 아니라 선명한 다홍에 가까운 오렌지. 심지어 학교 설계 스튜디오에서 모형을 만들때에도, 어딘가 꼭 한 곳에는 오렌지색 재료를 사용하는 버릇이 있었다. 길을 가다가 오렌지색 그 무언가를 마주치면 친구들은 어김없이 나에게 저것도 네 색깔이니 하고 묻곤 했다.
 처음 인연을 맺은 은빛 스트라이다도 좋지만, 꼭 오렌지색을 가지고 싶었다.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도, 성능이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가지고 싶었다. 운 좋게도 스트라이다 카페에서 뎃걸님에게 양도 받기로 약속을 잡아서 그날 바로 타고 나가 한강을 달릴 수가 있었다.

오늘의 라이딩 코스, 거리가 꽤 되긴 하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아차산역 1번 출구 근처에 있는 광진OMK에서 간단한 점검과 안장 교체를 받고서 곧바로 출발했다. 오늘의 라이딩 코스는 아차산역(군자교)에서 여의나루역 까지. 지하철로는 30분 조금 넘는 거리지만, 날이 하도 좋아서 자전거로 천천히 강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일단 한강에 진입하려면 공도를 따라 군자교까지 가서 중랑천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출발하기도 전부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온다.

출발하기 전에 먹었던 만두 칼국수 전골, 칼칼한게 아주 일품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일단 가는 길에 보이는 아무 식당이나 골라잡아서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얼큰한 만두 칼국수 전골을 한그릇 뚝딱 비우고 나니 벌써 몸이 나른해진다. 더 늘어지기 전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자전거에 올랐다. 오늘은 갈길이 멀다구!

저 뒤로 보이는 슬로프를 타고 내려가면 곧바로 중랑천변으로 진입할 수 있다


 중랑천은 안양천 만큼이나 꽤 굵직한 한강의 지류다. 강북에서 한강쪽으로 나오는데에는 더없이 좋은 코스지만 집에서 워낙 멀어서 몇 년 전에 청계천 라이딩을 하며 한번 지나가 본게 전부다. 덕분에 한강까지 나오는데 길을 조금 헤맸다. 아차산역에서 군자교까지 가는 길은 인도도 울퉁불퉁하고 자전거 도로도 따로 없어서 엉덩이가 욱신거린다. 군자교에 도착해서 본격적인 자전거 도로에 진입! 어찌나 반갑던지...

겨우 두 번째 와보는 곳이라 그런지 길이 조금 헷갈린다


 이제부터는 남쪽으로 계속 달려서 한강을 만나면 된다. 그런데 강변을 따라 계속 달리면 될 줄로만 알았더니 길이 좀 이상하다. 강의 왼편을 타고 달리게 되면 중간에 높은 레벨로 올라가야 하는 구간이 나온다. 굴다리를 통해 진입하게 되어있는데 아주 밖으로 나가버리는 건줄 알고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살곶이 다리 앞에 돋자리를 펴고 누웠다


 한양대 앞 살곶이 다리에 도착! 안장 높이를 너무 높여버린 바람에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 준비해온 돗자리를 깔고 잠시 강가에 앉아있다가 이내 드러누워 버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온갖 최첨단(?)장비를 갖춘 동호회 사람들이 지나가는가 하면, 보조바퀴 달린 조그마한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페달을 돌리는 꼬마 신사도 보인다.

교각 밑으로 지날때면 묘한 공간감이 느껴진다


 계속 안장에 신경을 쓰다가 어느새 한강까지 들어와버렸다. 원래는 서울 숲에 들러서 한바퀴 돌고 갈 생각이었는데, 워낙 천천히 달린데다가 안장까지 말썽이라 아쉽지만 그냥 지나쳐 왔다. 옥수역 근처의 한강 북단 자전거 도로는 고가도로 아래로 달리게 되어있는데, 큼지막한 교각들이 마치 고대 그리스 건축의 포티코를 생각나게 한다. 달릴때는 잘 모르지만, 강 너머에서 이쪽을 바라보면 커다란 기둥들이 남산을 받히고 있는 듯한 형상이 재미있다.

라이더의 천국! 반갑다 잠수교야


 이제는 한강을 건널 차례. 라이더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잠수교를 따라 강을 건넌다. 잠수교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레벨이 낮아서 자전거 도로에서 바로 진입할 수 있기도 하고, 또  자전거 도로의 폭이 넓어서 안전하게 건널 수 있기 때문이다. 잘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몇 해 전에 왔을 때 보다 자전거 도로와 인도의 폭이 더 넓어진 것 같다. 잠수교를 달릴 때 만큼은 자동차들 보다 자전거가 대우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중간에 야트막한 언덕을 오른 뒤에 신나는 내리막과, 운이 좋으면 볼 수 있는 무지개 분수는 덤이다.



반포지구의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청해본다


 잠수교를 건너자마자 한강 둔치에 넓은 광장이 펼쳐진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하면서 새롭게 조성된 광장인데 전에 지나갈때는 몰랐는데 잔디가 심어진 기하학적인 구조물들이 마치 묘기 자전거 트랙을 보는 듯 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살짝 경사가 진 잔디밭은 얼핏 델프트 공대 도서관 건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실 한강 르네상스 정비 사업을 가지고 말이 많다. 더군다나 선거철이어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자연을 복원하고 원래 모습을 돌려주는게 최근 하천 프로젝트들의 트렌드이건만, 한강 둔치는 어마어마한 콘크리트를 덮어서 마치 예전 여의도 광장의 롤러 스케이트장을 보는 듯 하다는 비판이다. 물론 어느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광장이라고 만들어 놓기는 했는데 너무 넓어서 황량하기까지 하니... 잔디밭에는 나무도 몇 그루 없어서 그늘조차 없다. 누워서 쉬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이긴 하는데 하나같이 책이나 부채로 얼굴을 덮고는 어딘가 불편해보인다. 나도 돗자리를 펴고 잠시 누웠다. 머리속이 복잡하긴 하지만, 그래도 얼굴을 스치는 강바람 하나는 정말 끝내주더라.


다섯 시간만에 여의도에 도착! 참 오래도 걸렸다


 열 두시 조금 넘어서 군자교를 출발했는데, 다섯시가 다 되어서야 여의도에 도착했다. 아마도 여지껏 자전거를 타면서 가장 느리고 천천히 달린날이지 않을까. 그래도 빨리 달리는 것보다 느리게 달리는 잔재미가 있다. 휙하고 지나쳐버릴 풍경을 조금 더 즐길 수 있고, 이야기를 하며 또 잠시 누워서 쉬어가며 그렇게 온몸으로 한강을 느끼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스트라이다가 바퀴가 작다고, 또 느리다고 무시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재미를 모르는 심심한 사람들이지 않을까. 그렇게 여의도 수변공간 한켠에 스트라이다를 세워놓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해본다. 아... 엉덩이는 지금도 너무나 아프다.

아무리 봐도 난 오렌지 홀릭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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