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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도, 빠를라에 이은 세 번째 여행지는 세고비아. 세고비아는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150km 정도 떨어진, 버스로 두 시간 조금 못되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도시다. 아직까지도 마드리드가 속해있는 까스띠야(Castilla) 지방을 못벗어나고 있는게 아쉽긴 하지만, 공휴일을 이용해 당일치기로 가볍게 다녀왔다. 개인적으로는 똘레도(Toledo)보다 훨씬 더 정감가고 예쁜 도시였다.
커다란 쇼핑몰과 기차, 버스 터미널이 있어 늘 번화한 쁘린시뻬 삐오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로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버스다. 마드리드 북서쪽 도시로 향하는 버스들의 출발지 쁘린시뻬 삐오(Principe pío)에서 매 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출발한다. 진원이랑 아침 열 시에 여기서 만나 열시 반 차를 타고 세고비아로 출발했다. 요새 마드리드엔 거의 매일같이 비가 내린다. 이날 아침에도 빗방울이 살짝 떨어지길래 걱정을 좀 했었는데 다행히 여행하는 동안은 날씨가 괜찮았다.
세고비아로 가는 버스는 라 세뿔베다나(La sepulvedana) 버스가 유일하다
전날 한 숨도 잠을 제대로 못자는 바람에 버스에서 잠깐 골아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버스는 순식간에 세고비아 터미널에 도착했다.
가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세고비아의 거리
전에 여행했던 똘레도처럼 세고비야 역시 매우 작은 도시다. 오히려 둘러본 느낌으로는 똘레도 보다도 작은듯 보였다. 게다가 우리가 여행한 화요일은 스페인의 공휴일이었다. 덕분에 관광객 인파에 휩쓸리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한가로운 거리를 걸어볼 수 있었다. 다만 공휴일이라고 버스터미널의 관광안내소가 문을 닫아버린 바람에 구시가지까지는 살짝 갈팡질팡하며 찾아 올라간 기억이 난다.
마요르 광장 카페에 앉아서...
똘레도 보다는 확실히 관광 포인트는 적어보였다. 어차피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작은 도시라 초반에는 여유롭게 수다떨며 구 시가지 주변을 걸어다녔다. 늘 그렇듯 이정도 규모의 도시들은 까떼르랄(Catedral)과 마요르 광장(Plz.Mayor)을 중심으로 모든게 이루어져 있다. 광장의 분위기도 느낄 겸 마요르 광장 한켠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돌아다닐 경로를 구상해봤다. 카페 솔로 한잔 마셨는데 2.4유로나 나왔다. 아차. 보통 이런 광장들의 물가를 잠시 잊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커피로 기분전환을 마치고 세고비아의 서남쪽에 위치한 알까사르(alcázar)로 향했다.
똘레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꽤 웅장했던 까떼드랄
알까사르로 가는 길에 잠시 들렀던 까떼드랄. 똘레도 까데드랄이 7유로나 주고 들어가야했던 반면 여긴 공짜다. 공짜로 입장하니 별 부담도 없고 편안한 마음으로 한바퀴 쭉 둘러보고 나왔다. 확실히 가격 차이가 차이인 만큼 까떼드랄은 똘레도의 그것이 더 멋졌던것 같다. 혹여나 첨탑에라도 올라갈 수 있다면 돈내고서라도 올라가보고팠는데...
조금 더 걸어 도착한 알까사르. 디즈니 만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의 모델로 더 유명한 그런 성이다. 멀리서 처음 봤을땐 왠지 밋밋한 느낌의 파사드였는데 막상 가까이 가보니 변태스러울 정도로 정교한 디테일이 인상깊었다. 성 내부를 둘러보는 것 보다는 높은데 한번 올라가서 세고비아를 내려다보고 싶은 마음에 2유로 짜리 또레(Torre) 입장권만 사서 들어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예술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세고비아의 풍경은 참 아기자기했다. 주변으로는 온통 산과 들판 뿐이라 그런지 마치 동화속 작은 마을을 떠올리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겨우 150여개의 계단을 오르고 내렸을 뿐인다 배가 고파졌다. 함께 다니던 진원이는 여행하면서 원래 끼니를 제때 잘 안챙기는 타입이란다. 나는 오히려 정 반대인지라 얼른 점심먹으러 가자고 보챘다. 그렇게 다시 알까사를 나와 마요르 광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마요르 광장 파노라마
세고비아는 확실히 똘레도보다 훨씬 훨씬 더 작은 도시다. 점심 먹을 식당을 찾아 구시가지 여기저기를 헤멨는데 식당이 채 열개도 못되어 보였다. 커피 한잔에 2.4유로나 하는 마요르 광장은 너무 터무니없이 비쌀것 같고... 고민끝에 사람들로 북적대는 식당을 하나 찾았다. 스페셜 메뉴(Menu especial)가 한 명당 21.40유로! 만약 이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된다면 스페인에서 두 달 넘게 머물며 먹었던 한 끼 식사로 최고금액을 경신하게 된다. 하지만 큰맘먹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이유는 아래 사진에서...
첫번째 접시(Primer plato), 후디오네스. 콩으로 만든 슾?
이건 까스띠야 슾(Sopa castellana)라는건데 순두부 찌개랑 흡사한 맛이었다
두번째 접시(Segundo plato). 드디어 나온 꼬치니요! 귀까지 달려있다...
이건 송아지(Ternera) 스테이크, 평범하지만 나름 맛이있었다
세고비아는 원래 꼬치니요(Cochinillo asado, 새끼 돼지 통구이 요리)로 유명한 지방이라고 했다. 도시 자체가 너무 작아 볼게 별로 없었던 반면, 세고비아 여행의 핵심은 바로 꼬치니요를 맛보는데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21.40유로라는 만만찮은 지출을 무릅쓰고 이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온거였다. 사실 마드리드에서도 꼬치니요를 한 번 먹어본 적이 있었다. 과연 꼬치니요의 본고장 세고비아의 꼬치니요는 얼마나 맛있을까!
후식으로 나온 푸딩(flan)
그리고 아이스크림(Helado)까지
과연 비싼 금액에도 전혀 아깝지 않은 최고의 식사였다! 후식(Postre)까지 싹 비우고 나니 너무 배불러서 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지난번 똘레도 여행에서는 가격대비 너무 형편없는 최악의 식사 때문에 기분을 망쳤었는데, 세고비아에서는 오히려 반대다. 안그래도 평화로운 도시 분위기에 한껏 취해서 돌아다녔는데 너무나 맛있는 식사까지 하고 나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드디어 마요르 광장에서 다섯명이 다 모였다
점심을 먹고 나서 뒤늦게 세고비아에 도착한 다른 친구들과 합류했다. 시간이 어느새 늦어져서 다른 세 친구들은 알까사를 먼저 가보기로 하고, 나랑 진원이는 수도교를 따라서 라 그란하(La granja)에 가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세고비아에서 가장 좋았던건 수도교를 따라 걸었던 바로 이 길!
세고비아의 도시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건 단연 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수도교다. 시멘트 같은 접착제 없이 순수하게 화강암을 쌓아올려 만든 로마식 수도교는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계속해서 수도교를 옆에 두고 끝까지 걸었다. 겨우 차 한대 지나갈 정도의 골목을 사이에 두고 현대식 주택들과 수도교가 마주하고 있는 풍경이 참 인상깊었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하지만 너무나 잘 어울리는!
라 그란하... 결국 보지 못했다
족히 6~7층 건물 높이는 되어보이던 수도교가 끝나는 지점 즈음에서는 내 허리춤 정도로 낮아졌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나니 어느덧 세고비아 시내에서 꽤 멀리 와버렸다. 원래 우리의 목적지는 라 그란하(La granja)라는 궁전. 가이드북에 의하면 시내에서 택시로 10km정도라고 했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생각으로 한참을 기다렸다. 하지만 라 그란하 입장이 끝나는 5시 까지 버스는 한대도 오지 않았고(한 대가 오긴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라 그란하에 안간다고 했다... 분명 노선도에 써 있는데) 라 그란하라고 써있는 교통 표지판을 보는걸로 아쉽지만 만족해야 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하도 오질 않아서 걸어가볼까 생각도 했는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구글맵으로 찾아보니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되어 보였다. 무작정 걸었으면 아무것도 없는 도로 한복판에서 이도저도 못할 뻔 했다.
사진속에 한껏 여유를 담아...
버스도 놓쳤겠다, 세고비아 구시가지엔 더 구경할 것도 없겠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정류장 한켠의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햇살도 참 좋고 하늘도 예뻐 그렇게 한참을 누워서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어느새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이제 겨울이 오면 이렇게 잔디밭에 누워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을텐데...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한참을 더 누워있었다.
내 카메라에 진원이가 담아온 알까사르의 야경
다시 수도교를 따라 구 시가지로 와 늦게 도착했던 세 친구들과 다시 합류했다. 광장 근처 카페에 있다가 진원이랑 다른 한 친구는 알까사르의 야경을 보겠다며 내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위의 사진들은 진원이가 찍어온 알까사르의 야경 사진들.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저녁 일곱시가 훌쩍 넘어서야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세고비아가 작기는 해도 영락없는 스페인의 도시인것이, 확실히 낮보다는 밤이 되고 해가 지니 길거리에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북적북적, 구시가지는 걷기가 힘들 정도로 사람들로 넘쳐나더라.
공휴일을 맞아 가볍게 다녀온 여행이었던 만큼, 한가롭게 여유부리며 잘 쉬다온것 같았다. 물론 기가막히게 맛있던 꼬치니요도 크게 한몫 했고. 이제 다음 여행부터는 슬슬 까스띠야 지방 밖으로 눈을 돌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면 할 수록 머릿속 나만의 스페인 지도 역시 함께 조금씩 커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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