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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블로그를 통해 현재 핀란드에서 교환학기를 보내고 있는 한 분을 알게 되었다. 12월에 학기가 끝나고 스페인에서 한 달정도 살면서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싶다며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제일 먼저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마드리드에 살면서 스페인어 많이 늘었어요?' 음. 내 대답은 '말하기와 듣기가 특히 비약적(?)으로 늘었지요'였다. 그렇게 스페인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나의 '스페인어'에 대해 새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창밖으로 스페인 마드리드 거리를 내려다보며 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솔직히 잘 실감이 안난다. 수학, 과학은 자신 있었어도(물론 고등학교때 이야기지만) 영어라면 진저리를 치던 내가, 무려 스페인어라는 제 2외국어로 매일같이 수업을 듣고, 말하고, 놀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말이다. 처음 교환학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대학교 2학년 무렵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어디로 가야겠다, 어디로 가고싶다 이런 구체적인 생각보다는 '그냥 교환학생이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컸던것 같다. 우리학교의 협정교 목록을 주욱 훑어보면서 스페인, 프랑스, 독일 처럼 비영어권 국가들은 애초부터 눈길 줄 생각조차 못했었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스페인: 토플 IBT 85점 이상, 스페인어 능통한 자'. 영어도 버벅대던 그 시절에 '스페인어 능통한 자'라는 말을 보면서 '대체 이런데로 교환학생 가는 애들은 어떤 애들일까?'하고 마냥 신기해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스페인에 '교환학생'으로 와있다. 막연히 생각하던 '이런데로 교환학생 가는 애들'이 바로 지금의 나인 셈이다. 아직도 신기하기만 하다. 내년 2월이 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즈음에는 내가 스페인에서 6개월이나 살았다는게 조금은 실감이 날까.
DELE B1 합격증! 내가 스페인어 자격증을 가지게 될 줄이야...
스페인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건 작년 9월 즈음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우리학교 건축과에서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거의 교환학생의 기회가 없던 시절이었고, 다만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교'와 학생교류 협정을 새롭게 맺었다는 협정서 한 장이 학과 홈페이지에 덜렁 올라가 있을 뿐이었다. 무슨 생각에서 무작정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일본어는 익숙치 않으니 마드리드 대학교로 파견 첫 해가되면 곧바로 선발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하겠다는 당돌한(?) 생각이었던것 같다. 그렇다고 아직 파견 계획이나 일정조차 나오지 않은 마드리드 교환학생 하나만 바라보고 공부할 수는 없었다. 요새 대학생들 하나쯤 다 한다는 제 2외국어를 공부해 보고 싶기도 했고, 설령 교환학생으로 마드리드에 못간다고 해도 남미 여행을 스페인어 능통한 상태해서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렇게 2010년 9월부터 2011년 3월까지는 학원 한번 등록 안하고 오로지 인터넷 강의랑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교재로만 독학했다. 스페인에서 조금이나마 지식이 있었던건 더더욱 아니었다. 9월달 첫 인터넷 강의를 결제하고 스페인어 알파벳 이름, 읽는 방법 부터 공부했으니 말이다. 그때만 해도 내가 아는 스페인어 단어는 'Hola', 'Amigo'가 전부였다.
APTO(합격), 인터넷으로 확인하는 순간 나도모르게 꺅 소리를 질렀다
2011년 5월 DELE(스페인어 자격시험) B1 등급을 목표로 그렇게 독하게 공부했다. 하지만 그 전에 3월달 IBT 토플도 함께 준비하고 있던 터라 스페인어에 큰 비중을 두지는 못했다. DELE 시험은 듣기, 읽기, 쓰기 뿐 아니라 말하기도 있기에 시험을 두 달 앞둔 3월 말에는 홍대에 있는 스페인어 학원에 등록했다. 사실상 스페인어 공부에 올인 했던건 토플 시험이 끝난 그때 부터 였던것 같다. 그렇게 두 달을 학원에서 체계적으로 마무리하고 5월 DELE B1 시험에 합격했다!
성적표를 보면 점수가 아주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스페인어에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DELE B1 합격하기까지 보통 1년정도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독학으로 그보다 짧은 시간에 그것도 토플이랑 함께 준비하며 합격을 했으니 나름 자신감에 넘쳐있던것 같다. 이후 우리학교에서 마드리드 대학교로 첫 교환학생 모집 공고가 났고, 교환학생에도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스페인어로 생활하는 것과 수업을 듣는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렇게 올해 8월 말, 나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왔다. 함께온 한국 학생들 중에서도 DELE 자격증을 가진건 내가 유일했으니 그땐 정말 자신감에 넘쳤었다. 그런데 개강을 하고, 스페인어로 수업을 듣고 매 주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DELE 자격증 따위는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다는걸 순식간에 깨달았다. DELE B1 시험볼때 열심히 준비했던 말하기 실력은 마드리드에 도착한지 딱 3일까지가 유효기간이었다. 그때부터는 나도 모든걸 새롭게 공부하고, 익혀야만 했다. 하긴 그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책으로 공부했고, 그나마 만나본 스페인 원어민은 마지막 두 달간 학원에서 배웠던 선생님이 유일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스페인 사람들은 외국인(특히나 우린 동양인임에도)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어찌나 빨리 말하고 어렵게 말하는지... 그렇게 처음 한달 정도는 스페인어 홍수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정신 못차렸던것 같다.
잠깐 상담만 받았던 어학원, 비싸서 별 관심은 없었다
물론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왔다고 해서 다들 스페인어에 열을 올리고 공부하는건 아니다. 여기서 만난 다른 학생들 중에는 스페인어는 거의 한마디도 못하지만, 딱히 공부할 의지도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난 욕심이 좀 많았다. 이왕 6개월이라는 시간을 스페인에서 보내는 만큼 다른건 몰라도 스페인어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얻어가고 싶었다. 한국에서 영어든 스페인어든 공부하면서 늘 했던 생각이, '실제로 그 나라에 가서 그나라 언어로 먹고살며 공부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로망을 마음속에 품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에 도착한지 이틀만에 Marta를 따라서 어학원에도 가봤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비싼 가격에 그냥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스페인어 수업 우리반 풍경!
그러던 와중, 학교에서 제공하는 스페인어 수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한 학기 내내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수업하고도 다해서 25유로 밖에 안하는 엄청 싼 가격! 곧바로 등록을 했고, 지금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내가 듣는 수업은 'Curso de Español para la Ciencia y la Tecnología. Nivel B1.2.(과학과 공학을 위한 스페인어 수업)'이라 대부분 학생들이 비슷한 전공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더욱 좋다. 매 시간 자기 전공 분야 관련한 프리젠테이션도 해야하고 숙제도 많지만 그래도 덕분에 이곳에 와서도 계속해서 스페인어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가장 빠른 길은, 스페인어로 노는 것!
스페인에서 생활하며 가장 좋은점은, 교실을 벗어나도 늘 스페인어, 스페인어, 스페인어라는 점이다. 물론 유럽에서 온 에라스무스들 끼리는 영어로 대화하는 일도 있지만, 난 마드리드에 와서 영어를 쓴 일이 정말 거의 없는 것 같다. 예를들어 우리집만 해도 독일, 프랑스, 스페인, 한국, 스위스 다섯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모여 살지만 집안에서는 오로지 '스페인어만' 쓴다. 학교 친구들을 만나도 그렇고, 술을 마셔도 그렇고, 영어를 쓰는 일은 거의 없으니 매일 일상이 공부다. 물론 내가 의식적으로 영어보다는 자꾸 스페인어를 쓰려고 하고, 그런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언어를 익히는데 있어서 그만큼 환경이 중요하다는걸 알기에 일부러 자꾸만 스페인어에 더 스스로를 노출시키려 하고 있다.
자주는 아니어도 틈내서 짬짬이 공부를!
그래서 나의 지금 스페인어는 어느정도일까. 한국에서 공부할 때 처럼 시험 등급같은걸로 테스트할 수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국을 떠날 당시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는게 사실이다. 이건 나 뿐만 아니라 여기서 생활하는 내 친구들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새는 가끔 영어랑 스페인어 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되면 스페인어로 말하는게 훨씬, 훨씬 더 편하다. 식당에 가도 가끔 외국인 관광객으로 생각하고 영어 메뉴판을 주는데, 자연스럽게 다시 스페인어 메뉴판을 가져다 달라고 말하게 된다. 물론 아직도 학교 수업은 100% 알아듣지 못하고 여전히 어려운 대화에서는 어버버대고 있는건 비슷하다. 그래도 겨우 내 소개와 간단한 인사 정도만 자신있게 하던 8월달에 비하면, 외국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이야기를 스페인어로 나눌 수 있는 지금의 모습에 가끔 스스로도 놀라게 된다.
이제 마드리드 생활 6개월 중에 딱 절반이 지났다. 물론 스페인어 실력이 상대적으로는 많이 늘었다고 해도 절대적으로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남은 시간도 더 열심히 스페인어로 말하고, 놀고, 즐기고, 살아갈 생각이다. 여기서 열심히 사는 만큼 얻어가는 것도 많을 거라고 믿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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