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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인 7명의 남녀가 모여사는 마드리드의 우리집. c/Maudes 16번지 5층에서는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특별한 만찬이 펼쳐진다. 이름하야 '일요일의 만찬(Cenita de Mudes)'. Vincente의 아이디어로 처음 시작된 이 전통은 벌써 두 달 넘게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아직은 전통이라고 부를 만큼 오래되진 않았지만, 남들에게 자랑하고 초대하고플 만큼 멋진 일이기에 블로그를 통해 소개(라고 쓰고 자랑이라고 읽는다)해볼까 한다.

처음엔 회의를 위해 다같이 시간을 맞추는 것 조차 힘들었다


 마드리드엔 우리집처럼 이렇게 에라스무스들이 중심이되어 모여 사는 삐소(piso)가 꽤 많다. 전에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느꼈던건 집집마다 나름의 규칙같은게 정해져 있다는 점. 아무래도 국적도, 성별도 제각각인 여러 친구들이 모여살다보니 지켜야할 규칙 없이는 금새 엉망이 될게 뻔하다.

 하지만 우리집의 경우는 시작이 조금 달랐다. 이미 사람들이 살고있는 집에 얹혀 들어오는게 아니라 아무도 없는 집에 사람이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끼리 새롭게 규칙 같은걸 만들어내야만 했고 사람이 다 채워지기 전까진 한동안 그냥 살았다. 처음 집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머리를 맏댄건 Vincente의 회의 제안 덕분이다. 서로 학교도 다르고 시간표도 다르니 의외로 같은 집에 살면서도 다같이 모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입주자 회의(?)'가 열렸다.

청소 순번표, 나름 이날 회의덕에 우리집은 꽤 짜임새가 있게 변모했다


 이날의 회의 안건은 함께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본적인 규칙들을 정하는 것이었다. 예를들면 매주 공동공간 청소 순번을 정하고, 진공청소기 같은 공용물건의 구매 계획을 세웠다. 사실 함께 얘기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막상 규칙을 정하는 일은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순조롭게 회의를 마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Vincente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바로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한 주에 한명씩 자기 나라의 음식을 모두를 위해 요리를 하자는 멋진 제안이었다. 

 사실 7명이나 모여 사는 집이지만 막상 같이 사는 친구들이랑 친해질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서로 학교도 다르고 생활 패턴도 다르다보니 하루에 한 번 마주치기가 어려울 정도. 그래서 Vincente의 제안은 더욱 빛을 발했다. 적어도 일요일 저녁마다는 '같이 사는 가족' 같은 느낌으로 멋진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9월 25일 일요일
Florent의 닭고기 야채 볶음

 회의가 있었던 바로 그 주 일요일 저녁, 프랑스에서 온 Florent의 요리로 일요일의 만찬이 시작됐다. Florent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 바로 옆에 있는 '리유니온'이라는 작은 프랑스령 섬이 고향이다. 섬사람이라 그런지 성격도 쾌활하고 어딘가 독특한 에너지가 늘 느껴지는데, 요리도 그렇다. 특히나 저 토마토 샐러드 같이 보이는건 Florent의 트레이트 마크. 거의 매 끼니 식사마다 등장하는데 혀가 살짝만 닿아도 얼얼해질 정도로 매운 고추가 들어가는 샐러드다. 이날 저녁때 처음으로 맛을 봤었는데 지금은 Florent와 같이 밥을 먹을때 오히려 없으면 이상할 정도로 익숙해져 버렸다.


 







10월 2일 일요일
내 차례, 김밥과 연어초밥

 Florent의 요리로 첫번째 만찬을 멋드러지게 마치고 두번째는 내 차례였다. 독일에서 온 두 녀석이 하도 '스시(sushi)' 노래를 부르길래 만들어준다고 약속했는데 이왕 하는김에 일요일 만찬때 다 같이 먹는게 좋을것 같았다. 물론 친구들이 생각하는 스시는 말 그대로 '생선초밥'이지만 한국 음식을 알리고픈 생각에 '김밥'을 주 메뉴로 정했다.



집중해서 김밥을 말고 있는 Alex



잘 말았지만 썰다가 망가져버린 Vincente의 김밥




나름 능숙한 솜씨로 김밥을 말던 Florent


자신없다고 계속 빼다가 마지막에 도전한 Marco




 이날은 다른 친구들도 많이 와서 피에스따(fiesta)처럼 되어버렸다. 난 재료를 준비하고 각자 한줄씩 김밥을 직접 싸보며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김밥이라는게 한국에서는 그냥 소풍날에나 먹는 음식이지만 여기선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처럼 되어버렸다! 만들기도 쉽고 재료에 따라 맛도 다양하고 술마시며 손으로 그냥 집어먹기도 편하니... 김밥 얘기는 다음에 따로 한번 더 포스팅 할 생각이다.

 이날 김밥 만들기 컨테스트의 우승자는 Cristiana. 내가 '숙련된 조교'로서 시범을 먼저 보이고 각자 만든 김밥을 나누어 먹었는데, Cristiana의 김밥이 제일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았다. 나름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을 먹였(?)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고.





 이날은 보너스로 연어초밥도 살짝 만들어줬다. 김밥도 좋지만 진짜 스시를 기대했던 친구들에게 내가 주는 깜짝 선물이랄까. 이날 연어초밥을 처음 만들어보고는 괜찮아서 나중에 한번 더 만들어 먹었다. 재래시장에서 연어를 사오면 가격도 싸고 품질도 좋아 꽤 괜찮은 한 끼가 된다.











10월 9일 일요일
Alex와 Vinecente의 햄버거

 독일 친구들의 차례. 독일식 족발요리인 '학센'을 먹고싶다고 얘기했지만 그건 좀 어렵다고 해서 결국 '수제 햄버거'로 메뉴가 결정됐다. 다같이 모여 패티를 만들었는데 이친구들이 고기를 무려 3kg나 사온 덕분에 패티가 서른 세 장이나 나왔다. 옆집 친구 Marco까지 불러서 같이 먹었지만 패티가 하도 많이 남아서 이날 이후로도 몇 번을 더 먹었다. 










10월 15일 일요일
나, Alex, Florent, Cristiana 각자 요리하나씩

 이날은 딱히 요리하기로 한 사람이 없어서 처음으로 저녁이 무산될뻔 했다. 마드리드엔 일요일이면 까르푸며 시장이 죄다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요리 할 사람을 미리 정하고 토요일에 장을 봐두어야 한다. 결국 아무도 준비된 사람이 없어서 피자를 시켜먹을까 하다가, 모인 사람들 끼리 각자 요리 한가지씩을 해서 먹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난 한국의 매운맛(?)을 보여줄 틈새라면, Alex는 제일 자신있어하는 코코넛 밀크 닭고기 요리, Florent는 늘 만들어 먹는 매운 토마토 샐러드, Cristiana는 양송이 샐러드를 만들었다. 하마터면 피자 시켜서 흐지부지 될 뻔했기에 더 즐거웠던 만찬이었다.













11월 6일 일요일
내 차례, 브라운 소스와 돈까스


 다시 내 순서가 되었다. 이번엔 돈까스를 하기로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가 먹고 싶어서 욕심을 부린 것도 조금 있다. 그냥 마트에서 돈까스 소스를 사왔으면 더 편했겠지만 그닥 내키지 않았다. 마침 양식 조리기능사 준비하며 브라운 소스 만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루부터 시작해서 아주 정석으로 브라운 소스를 만들어봤다. 맛은 당연히... 파는 소스랑 비교가 안될 정도로 최고!

 마드리드에서 살면서 느끼는건, 모든 식재료중에 고기가 제일 싸다는 것. 돼지고기를 거의 한 두 근 넘게 사온것 같은데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먹고도 각자 2유로 씩만 내면 충분할 정도다.








11월 13일 일요일
Florent의 라따뚜이

 제대로된 프랑스 요리를 먹은 날이었다. 라따뚜이는 원래 야채만 가지고 하는거라 Florent가 특별히 고기도 준비했다. 사진에도 보이지만 매운 토마토 샐러드는 늘 항상 함께다.



 9월에 처음 시작된 이후로 아직까지 매주 빠지지 않고 잘 지켜지는 '일요일의 만찬'. 포스팅에는 쓰지 못했어도 무려 40여명의 친구들이 왔던 한국음식 파티도 있었고, 조금 소소하게 함께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던 적도 있었다. 하마터면 같은 집에 살면서도 얼굴 보기 힘들뻔했지만 이 만찬 덕분에 서로 얘기도 더 많이하게 되고 각자 자기 나라의 음식 문화를 공유하는건 아무리봐도 정말 멋진 일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이 전통이 계속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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