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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느글느글 파스타 열전에 이어 오늘은 볶음밥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스페인에 오니 언어도 바뀌고, 문화도 바뀌고, 모든게 다 달라졌지만 토종 한국인스러운 내 식성만큼은 쉽게 변하질 않더라. 그렇다고 늘 한식만을 고집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파스타 보다는 밥이 들어가는 요리가 훨씬 든든하다는 뜻. 이사오고 한동안은 파스타보다 밥을 더 많이 해먹었다. 쌀은 까르푸에서도 1kg 단위로 포장된걸 쉽게 구할 수 있는데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한국에서 먹던 쌀이랑 아주 비슷하다. 게다가 전기밥솥이 없어 늘 냄비밥으로 1인분씩 하는데 밥도 꽤 잘되는 편이다.
밥을 자주 먹게된건 꼭 내 식성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집에 같이 살고있는 독일 남자애 둘, 프랑스 남자애 하나... 얘네들도 밥을 거의 매일같이 먹는다. 쌀은 우리나라 쌀보다 조금 더 가늘고 찰기없는 인도쌀을 주로 쓰지만. 물론 우리나라 처럼 반찬 놓고 맨 밥을 먹지는 않는다. 그래도 매 끼니마다 손수 쌀을 씻고 밥을 앉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끔 웃음도 나온다. 한번은 '너희 나라에서도 원래 밥을 먹니?'라고 물어봤는데 밥은 원래 전 세계적으로 다들 먹는거라며(todo el mundo) 오히려 나를 다그치기도.
초리쏘(chorizo) 볶음밥
(초리쏘chorizo, 마늘, 양파, 감자, 양송이, 통후추)
이사오고 처음으로 해먹었던 볶음밥. 초리쏘chorizo는 하몬jamón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전통 햄 종류의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순대를 만드는 것 처럼 돼지 창자에 고기를 넣어 저염 건조시킨 식품인데 상당히 간이 센 편이다. 참고로 초리쏘, 살치촌, 하몬, 모르치쟈와 같이 돼지 창자에 고기를 넣어 만든 햄 종류를 통틀어 엠부띠도스(embutidos)라고 부른다.
먹다남은 초리쏘를 처리할 요량으로 만든 볶음밥인데, 간이 세서 특별한 재료를 넣지 않아도 짭잘하니 맛이 꽤 괜찮았다.
베이컨 볶음밥
(베이컨, 마늘, 양파, 감자, 통후추, 케찹)
초리쏘 볶음밥이랑 비슷하지만 대신 베이컨을 넣어 만든 볶음밥. 역시나 초리쏘에 비하면 베이컨이 한참 간이 덜된 느낌이라 결국 싱거워서 케찹을 뿌려 먹었다. 옆에 있는 와인처럼 생긴 음료는 띤또 데 베라노(tinto de verano). 직역하면 '여름의 눈물(잉크)'정도 되는데 레드와인과 탄산수를 1:1로 섞어 만든 스페인의 대중적인 술이다. 하도 자주 접하는 술이라 이제는 밥먹을때 없으면 되려 서운할 정도.
돼지 목살 볶음밥
(돼지 목살, 마늘, 양파, 당근, 간장, 통후추)
까르푸에서 간장을 발견해 곧장 집에와 간장으로 간을 해서 볶음밥을 만들었다. 초리쏘든 베이컨이든 뭐 하나 그래도 단백질 보충할만한 재료가 있어야 볶음밥이 그럴싸한데, 그날따라 냉장고에 남은 돼지고기가 있어서 투입!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 나면 배가 아주 든든해진다.
김치 볶음밥
(김치, 소고기, 마늘, 양파, 당근, 양송이, 간장, 통후추)
한국에서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오신 학교 선배가 선물로 가져다주신 김치. 덕분에 한 일주일 동안은 김치로 뭘 만들어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거의 한 달만에 김치를 먹은 셈인데 요리하는 중간중간 몇 조각이나 집어먹었는지 모른다. 혼자있을땐 보통 밥도 1인분치만 하고 요리도 혼자 먹을만큼만 하게 되는데, 어느새 손지 커진건지 만들다 보면 거의 2인분씩 나와버린다. 마침 옆에있던 독일 친구 Alex가 김치에 호기심을 보이길래 함께 나누어 먹었다.
스페인어로 김치를 설명하느라 없는 단어 생각해가며 꽤 애를 먹긴 했지만, Alex는 김치 볶음밥이 너무너무 맛있었다며 연신 Gracias(고마워)를 외쳤다. 이 후에도 내가 한국요리 하고있을때면 늘 옆에 와서 '여기도 김치가 들어가?'라며 묻는다. 하하
김치 볶음밥 2
(김치, 소고기, 마늘, 양파, 당근, 양송이, 간장, 계란, 완두콩, 통후추)
딱 한포기 있는 김치로 국이나 찌개를 끓이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생으로 먹자니 아깝고 해서 결국 다시 만들게 된 김치 볶음밥. 라 시레나(La sirena)에서 사다놓은 냉동 완두콩을 이때부터 꽤 요긴하게 썼다. 배가 많이 고파서 계란도 하나 넣었는데, 볶음밥에 계란을 넣을땐 가운데서만 살살 익히다가 다 익을때쯤 밥이랑 섞어주는게 훨씬 맛있다.
그러고 보니 볶음밥처럼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도 한국에서보다 뭔가 더 맛있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동안 요리하면서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스페인산 올리브유가 좋아서 그런것 같다. 이사오고 처음 샀던 까르푸표 싼 올리브유는 향이 별로였는데, 지금은 다른건 몰라도 올리브유 만큼은 제일 좋은걸로 사곤 한다.
하몬(jamón) 볶음밥
(하몬jamón, 마늘, 양파, 완두콩, 파마산 치즈, 통후추)
까르보나라 해먹을때도 베이컨 대신 하몬jamón을 한번 썼었는데, 볶음밥에도 꽤 잘 어울린다. 다만 이때는 술에 많이 취한 상태에서 야식으로 해먹었던거라 정확히 어떻게 만들었는지, 무슨 맛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그와중에 사진까지 찍어둔 내 정신이 참 대단하다)
베이컨 토마토 필라프
(베이컨, 마늘, 양파, 완두콩, 당근, 통후추, 토마토, 토마토 페이스트)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하는 대신 토마토 페이스트로 새콤달콤하게 만든 볶음밥. 전날 프랑스 친구 Florent가 먹고 남은 찬밥이 있어서 그걸로 만들었는데, 볶음밥 만들때는 오히려 한국쌀 보다 인도쌀이 훨씬 맛도 모양도 좋아보인다. 조금 덜 익은 꼬두밥으로 만든 거라 볶음밥 대신 필라프라고 내맘대로 이름을 붙였다.
참치 계란 볶음밥
(참치, 계란, 마늘, 양파, 파프리카, 당근, 양송이, 껍질콩judía, 김, 에멘탈 치즈)
참치가 한 캔 있길래 뚝딱 만들어본 볶음밥. 완두콩 대신 길쭉한 껍질콩judía을 통으로 넣었는데 나름 잘 어울린다. 다 만들고 나서 뭔가 허전하다 싶어서 선반 한켠에서 굴러다니던 김밥용 김을 조금 찢어 넣었는데 의외로 아주 괜찮았다.
스페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지 채 두달이 안되었는데 어느새 요리가 조금씩 늘고 있는게 느껴진다. 재료 손질도 상당히 빨라졌고 소금이나 간장은 눈감고 대충 뿌려도 딱딱 간이 잘 맞는다. 사실 볶음밥은 '요리'라고 하기에도 좀 민망할 정도로 쉽고 간편한 음식이긴 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볶음밥이 아니라 진짜 뭔가 '요리다운 요리'를 해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슬며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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