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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4일 오후 8시,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홍콩을 경유해 암스테르담 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꼬박 14시간.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탄 케세이 퍼시픽 비행기는 한국가요를 들을수도 있었고(심지어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까지 한국인 DJ가 들려주었다) 한국영화를 볼 수도 있었기에 지루하지 않게 네덜란드까지 올 수 있었다.
(오는동안 '미녀는 괴로워'를 즐겁게 감상하면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스키폴공항에 내렸을때, 하늘은 조금 흐렸다


 졸린눈을 비비고 암스테르담 스키폴(Schiphol)공항에 내린 시각은 아침 6시 30분.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창밖으로 본 유럽의 하늘은 실망스럽게도 너무나 흐렸다. 설마 여행 첫날부터 비가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결국 상상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첫날뿐 아니라 이후 한달 내내, 맑은 하늘을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었다. 심지어 스위스에서는 우박까지 맞아가며 계속해서 힘겨운 여행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비가와서 꼭 나쁜것만은 아니었다. 나름 덕택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이 생기고, 나쁜 날씨를 주신 하늘에 억울한 마음으로 오히려 더 여행지마다 열심히 다니게 된것같기도 하다. 아참, 우리는 그냥 지나치고 말았지만 네덜란드의 스키폴(Schiphol)공항은 한국의 인천국제공항과 홍콩의 첵랍콕공항과 함께 세계 3대공항으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을 들르게 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공항을 둘러보는것도 좋겠다.

 스키폴 공항에서 암스테르담 중앙역까지는 열차로 약 15분 거리이다. 유럽대륙에서의 여행 마지막날, 파리에서 몽생미셸을 TGV로 가기 위해서는 내일(7월 6일) 유레일을 개시해야 했기에, 공항에서 시내로 오는 열차는 따로 3.1 € 라는 거금을 주고 티켓을 사야만 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열차내에는 티켓을 확인하려는 차장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암스테르담 중악역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네덜란드의 풍경은 솔직히 말하면 조금 실망스러웠다. 날씨도 먹구름이 잔뜩 낀 기분 나쁜 날씨인데다가 창밖의 풍경은 내가 기대했던 유럽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그다지 비슷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풍경은 아름다웠으나 전체적인 느낌이 서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나 할까.(마치 청량리에서 춘천으로 가는 열차의 창밖을 보는 느낌)

사용자 삽입 이미지네덜란드의 아침, 중앙역 앞에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우리가 내린 시간은 아침 8시. 수많은 출근객들로 역 주변은 붐비고 있었다. 때마침 내리는 비 때문에 한껏 들뜬 내 마음은 한순간에 찬물이 끼얹어 진 듯 했다. 자전거 대여소는 9시에나 문을 연다고 하고, 분명 기내식은 먹었는데 배는 또 왜이리 고픈지... 여러모로 속상한 상황이었다. 추위에 떨고있는 K를 위해 가까운 맥도날드로 가서 맥모닝을 먹으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이로하여, 기대하고 기대했던 유럽에서의 여행은 맥도날드에서의 첫 식사와 함께 시작하는 가슴아픈 사연을 겪어야만 했다. 유럽으로 떠나기전, 여행을 이미 했던 친구들에게 조언을 청했었는데 다들 하는말이 유럽은 날씨가 매우 더우니 반팔 반바지만 준비해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우리가 여행한 기간의 반정도는 긴팔을 입거나 움직이지 않을때는 담요를 덮을정도로 추웠다. 비가 많이왔던 탓도있지만 우리는 주로 남부유럽보다는 중부유럽을 여행했기 떄문에, 남부를 주로 다녀왔던 친구들의 조언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나 스페인같은 남부유럽에서는 끔찍한 더위와 태양을 맛보게 될줄은 이땐 몰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9 €를 주고 하루동안 빌린 자전거


 암스테르담은 정말 자전거가 보편화 되어있는 도시다. 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자전거 도로가 없는곳이 없으며, 심지어 차는 못들어오게 되어있고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큰 길도 많다.
 아무래도 도시 규모도 작고 대부분의 주요시설이 좁은 중심부 안에 밀집되어있기 때문에 다른 교통수단 보다는 자전거를 이용하는게 더 빠르고 편리해 보였다. 물론 도로위를 달리는 트램도 많이 이용되고 있었지만 이왕 암스테르담에 왔으니 자전거를 타면서 시내 곳곳을 다녀보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빌린 자전거는 특이하게 핸드브레이크가 없었다. 대신 페달을 거꾸로 돌리면 속도가 줄어드는 페달브레이크 방식의 자전거다.
 우리한테는 조금 생소한 자전거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암스테르담의 대부분의 자전거가 페달브레이크 방식의 자전거였다. 자전거를 빌릴 때 안내판에는 foot brake 라고 써 있어서 처음에는 자전거를 멈추기 위해 진짜로 발로 땅을 끄는 황당한 짓도 했었지만, 곧 적응하고 본격적으로 시내를 즐겁게 라이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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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처음 목적지는 주요 볼거리 중에 가장 먼 '반 고흐 미술관'이다.
 가이드 북에는 트램을 타라고 써 있지만 막상 자전거로 달려보니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는길에 '폰델공원'을 가로질러서 암스테르담의 아침을 마음껏 느껴보고 싶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로 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이렇게 여유로운 도시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시내 곳곳에 있는 운하 옆으로,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옆으로 스치며 반 고흐 미술관에 도착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반 고흐 뮤지엄 입구에서


 사실 이번 여행에서는 의미없는 미술관, 박물관들은 되도록이면 가지 않으려고 한다. 일단 잘 알지도 못하고, 괜히 들어가서 얼렁뚱땅 보는 것도 시간낭비인데다가, 입장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 고흐 미술관은 결코 입장료 10 € 가 아깝지 않은 곳이었다.

 의미없는 미술관, 박물관을 가지 않겠다던 약속은 여행 내내 잘 지켜졌다. 하지만 무조건 안가는게 아니라 정말 내가 관심있는 분야에 관련된 곳이면 친구들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나혼자 다녀왔다. 몇개의 주요 미술관을 빼먹은건 지금 생각해보면 아쉽긴 하지만, 배경지식이 별로 없었던 그때 갔었더라도 크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을 것 같다. 생각보다 유럽여행에서 박물관과 미술관 입장료로 들어가는 돈이 꽤 되기 때문에 잘 생각해서 원하는 곳만 꼼꼼히 보고 오는게 훨씬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네덜란드는 자전거를 타는사람에겐 천국과 같은 도시이다


 미술관을 나올 때쯤, 하늘은 더욱더 화창해져서 자전거 타는 흥이 절로 났다. 푸르른 잔디밭위의 빨간 자전거를 탄 세남자. 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려나가고 싶을 정도로, 암스테르담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임에 틀림없다.

 암스테르담에는 볼거리가 없다고 흔히 얘기한다. 하지만 여행의 볼거리라는게 꼭 성당이나 미술관 같은 특정한 장소만은 아닐 것이다. 암스테르담의 운하와 집들, 그리고 수많은 자전거 탄 시민들과 함께 시내를 질주하는 그 기분, 바로 그 느낌이 진정한 암스테르담의 볼거리라는데에 누가 반대할 수 있으랴.
 암스테르담에서 자전거를 타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건 암스테르담의 매력을 단 1%도 보지 못한 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곳에서 탔던 자전거는 다시한번 타보고 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 여행을 시작하기전 많은 사람들이 '암스테르담은 볼게없어...' 라며 조언을 해줄때만 해도, 그냥 지나가는 조그만 여행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 여행지 3곳 중에 한군데는 들 수 있을것 같다. 가이드북에는 가볼만한 곳이 몇군데 안적혀 있는 암스테르담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도심, 주택가, 골목골목을 돌아다녀보면서 도시를 온몸으로 느끼는것이야말로 제대로된 관광이 아닐까.
 
 참고로 네덜란드의 델프트 라는 곳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좋은 도시라고 책에 쓰여있었다. 비록 가보지는 못했지만 델프트를 들를 기회가 있다면 그곳에서도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강가에서 라이딩을 즐겨보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길바닥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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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 미술관에서 베이떠닝 공원을 거쳐서 뮌트광장에 도착해 운하 난간근처에 자전거를 잠시 세웠다. 뮌트광장 한켠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광장의 분주함과 활기를 크로키북에 담아보려 하고있는데, 앞에 지나가는  행인이 내 그림을 힐끔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간다. 아 기분좋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세상 일 모두 잊고 잠시 그림을 그리는 이 유여, 얼마만이던가.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일뿐 옆에있던 K와 J는 내가 언제 다그리고 출발하려는지 지루해보이는 표정이다.

 유럽여행을 떠날때만 해도,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써 크로키도 많이 하고싶고, 이것저것 그리고싶은 마음에 두꺼운 크로키북을 하나 사갔었다. 하지만 결국 그림을 그릴 기회는 몇번 없었다. 사진을 찍느냐고 바쁜것도 이유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것. 여행지를 이곳저곳 옮겨다니다 보면, 나 혼자 가만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기란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다. 다음에 혼자 여행을 하게 될 기회가 되면 그땐 꼭 크로키북을 한권 다 채워서 오고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화사한 꽃시장의 모습

 
 네덜란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풍차와 튤립. 뮌트광장 한쪽 골목으로는 꽃시장이 있다. 도시가 작은 만큼 사실 꽃시장이래봐야 점포(그것도 비닐하우스와 슬레이트로 된 간이점포처럼 생긴) 수십개가 전부지만, 잠시나마 튤립향에 흠뻑 젖어서 꽃시장을 천천히 걸어보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담광장의 사람들


 근처 골목에서 피자로 점심을 해결한 뒤 암스테르담의 제일 번화한 곳인 '담 광장'으로 향했다.
 '담 광장'이야 말로 우리나라에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광장이다. 위령탑 앞 계단에 앉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점심을 먹는 가족, 관광객 티 팍팍 내면서 위령탑 앞에서 독사진을 찍는 유럽 청년, 왕궁앞 광장에서 실로폰을 연주하며 조용히 모자를 벗어 앞에 놓으시는 할아버지, 삐에로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거리의 예술가들. 그리고 광장을 가득메운 사람들과 사람보다 더 많은 비둘기들...

 광장은 사실 아무것도 없는 빈 땅이지만, 분명히 그 빈 땅은 더욱더 풍부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는 그릇으로 너무나 잘 작동하고 있었다. 신기하고 또 신기한 광경. 나도 잠시 광장의 매력에 빠져서 친구들도 잃어버리고 바보같이 박수치고 웃으면서 거기,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보고싶었던 것중 하나가 유럽 여러나라들의 매력적인 골목길들과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이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보고싶었던건 시장이었다. 시장이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살아가는 가장 원초적인 '광장'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벼룩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가이드북에 나와있던 암스테르담의 벼룩시장도 살짝 들러보았지만 기대했던것 만큼은 아니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물건도 많았지만 사람냄새는 별로 안나는 그런 곳이다.

 

 내가 원했던 시장을 찾으려면 암스테르담처럼 큰 도시보다는, 조금 작은 도시를 찾아갔어야 했다. 여행지들을 쭉 다니다보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자연스러움보다는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곳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때만해도 대도시가 아닌 조그만 여행지를 찾아갈 용기가 초보인 나에겐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마헤레 다리에서, K


  좀더 운하를 따라 내려가서 '마헤레 다리'를 본 뒤, 저녁거리를 사기위해 담 광장 바로 뒤에있는 슈퍼마켓 albertheijin 으로 향했다.
 빵과 음료수, 우유, 땅콩버터 등 부실해보이는 저녁거리를 사와서 스키폴 호텔로 돌아와 나누어 먹었다.

 

 우린 돈없는 학생 배낭여행객들이었다. 한달 내내 몇번을 빼놓고는 거의 모든 식사를 이런식으로 해결했는데,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단돈 2 €만으로도 맛있고 배부른 한끼식사를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해 버렸다.
 하지만 무작정 돈을 아끼겠다고 모든 식사를 이렇게 하는건 추천하지 않는다. 음식도 그 나라의 문화인데 그걸 맛보지 못하고 그냥 가버린다면 너무 아쉽지 않겠는가. 가끔 한끼정도는 거하게 즐겨볼 베짱정도는 있어야 더 풍성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부실해 보이는 첫날의 저녁식사

 

 지금 글을 쓰고있는 저녁 9시 현재, 아직도 해는 중천에 떠 있지만 나머지 두명은 꿈나라를 헤매고 있다. 비행기에서 쌓인 여독이 아직 덜 풀린 모양이다.
 아까 저녁먹을때 새삼 느낀거지만 유럽에서 먹는 한국의 미숫가루 맛은 말그대로 꿀맛이다. 아직 여기온지 만 하루도 안됐지만 벌써부터 한국이 그리워지니 이거 큰일이다.

 식사비를 아낄 생각으로 한국에서 미숫가루를 1kg정도 가지고 갔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오히려 배낭 무게를 늘려서 날 힘들게 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아침식사를 제대로 하는 적이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미숫가루를 먹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가끔 야간기차에서 일어나서 마시는 미숫가루한잔은 달콤함 그 자체였다.

 이제 다시 시내로 나가 홍등가를 구경하면 암스테르담의 밤낮 모든 모습을 조금씩은 다 맛본 셈이다. 자는 애들 깨우고 슬슬 다시 시내로 나가봐야겠다. 암스테르담의 밤거리는 또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다릴지 벌써부터 두근두근 거린다.


오늘의 지출

공항 코인라커 2 €
기차표(공항 -> 시내) 왕복 6 €
맥모닝 에그머핀 2 €
자전거 대여 9 €
반 고흐 미술관 입장료 10 €
공중전화 0.8 €
점심식사(뉴욕피자) 3.95 €
저녁거리 장본거 7.44 €

                                                                                                                             total 4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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