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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나 다를까.
 역시 유럽의 햇빛은 너무나 뜨거웠다.
 사실 그동안 다녔던 중부유럽에서는 매일같이 비가오고 흐린날씨라 제대로 햇빛을 받아본적이 없었는데 그동안 못본 햇빛을 하루에 몰아서 다 받는 느낌이었달까.
 태어나서 그렇게 강한 햇빛은 정말 처음이었다.

 이탈리아의 하늘은 정말 구름이 하나도 없는 푸른하늘빛 그대로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을 조금만 받고 있어도 금새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지난 밤, 처음으로 침대가 있는 쿠셋칸 야간열차를 타고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사실 침대칸이라기에 나름 큰 기대를 하고 탔지만 너무도 좁은 한칸, 그것도 창문조차 열리지 않는 밀폐된 실내에 6명이 마치 책장에 꽃힌 책처럼 누워서 잠을 자려니깐 어째 속은 느낌도 들고 예약비 25 € 가 아까운 느낌도 들고 그랬다.

 하지만 막상 자고 일어나보니 나름 편하게 잔거같기도 하다.


 쿠셋칸 침대에 딱 자리를 잡고나면, 정말 자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있다.
 앉아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 허리를 펴려고 하면 바로 천장에 머리가 닿아버린다. 3층에 자리를 잡는 바람에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옷도 겨우 갈아입었다) 잠만 자면서 베네치아까지 흘러들어와 버렸다.


 베네치아의 첫인상은 너무 좋았다. 역앞을 나서자마자부터 펼쳐지는 물길과, 그 뒤로 빼곡히 모여서 있는 이국적인 집들의 풍경은 내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내눈에도 아름다운 도시는 다른 사람에게도 아름답게 보이는 걸까, 그동안 다녔던 그 어느도시보다도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한국인 관광객은 또 왜그리 많은지... 잠시 눈살을 찌뿌리기도 했었지만 이내 몸을 풀고 본격적인 배네치아의 매력속으로 빠져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그 많은 관광객의 홍수속에서도,
베네치아를 빠져나가는 야간열차 예약도 끝마치고, 짐보관소에 짐을 맡기는데 까지도 성공했으나
다른곳에서 예상치못한 문제가 터져버렸다.

 우리는 베네치아에 아침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바로 수상버스(바뽀레또)를 타고 부라노섬 부터 돌아볼 계획이었으나 표를 사기위해 매표소에 말을거는 순간 내 귀에 들려오는 한 단어, STRIKE!!!


 그랬다. 가이드북에서나 보던 파업이 하필이면 그나라라 일어난 것이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4시부터는 다시 정상적으로 모든 노선이 다닌다고 하길래 일정을 변경하여 베네치아 본섬부터 돌아본 후에 부라노섬을 가보기로 했다.


 수상버스 파업으로 모든곳을 걸어다녀야만 하는 우리에게, 처음 겪어보는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은 상상 그 이상의 고통이었다. 마치 찜통에 들어있는 닭마냥, 한걸음 한걸음이 말그대로 고문이었다.

 아까전에 짐보관소에서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냥 메고 걸어다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걸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아마 이 날씨에 큰 배낭까지 메고 다녔더라면 정말 길바닥에 쓰러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적응 안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는 순식간에 베네치아의 매력속으로 흠뻑 빠져들어 버렸다.
 길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물이 있는 신기한 광경에 힘든것도 순식간에 잊고 또 기운을 차릴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베네치아는 워낙 길이 좁고 복잡해서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게 거의 불가능 하다고 한다.
 그래서 헤메고 해메다 보니 지도에도 없는 재래시장에도 들르게 되었다.




 다른곳 보다 훨씬 싼 과일가격에 놀라며 복숭아 하나씩을 물고 다시 힘을내어 걸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낮선 곳에서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배낭여행중에는 비타민 보충이 중요하다.
 꼭 의식적으로 보충제같은걸 먹지 않더라도, 목마르고 힘들때 하나씩 베어무는 현지의 과일이야말로 제대로 된 비타민이다.

 우리는 늘 천도복숭아를 가지고 다녔다. 가격도 싸고 맛도 좋은데다가, 비타민까지 풍부하니 이보다 더 좋은 과일이 어디있겠는가. 한달 내내 유럽 각지에서 천도복숭아를 사다 보니, 천도복숭아의 가격을 가지고 각 도시의 물가를 대강 헤아릴 수도 있었다.

 참고로, 천도복숭아가 가장 싸고 맛있었던것 곳이 바로 이곳 베네치아였다. 지중해의 맛이랄까^^




 골목골목마다 촘촘히 걸려있는 빨래들과, 마치 한국 골목길에 주차된 자동차들 처럼 짚앞 물길에 세워져 있는 배들의 모습은 정말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특정한 곳을 찍어다니면서 구경하기보다는 골목길을 그냥 헤메가며 베네치아의 정취를 느끼는게 진짜 베네치아를 제대로 보는 방법이기에, 잠깐 길에 앉아 쉬기도 하고 다리에서 사진찍으며 놀기도 하면서 좁은 골목길만의 매력에 흠뻑 젖어보았다.





 베네치아의 싼 마르코 광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실 사람보다 비둘기가 더 많은것 같다.

 광장 바닥을 가득 메운 비둘기들과, 먹이를 주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평화롭고 즐거워 보였다.
 거금 1 € 를 투자해서 나도 비둘기 모이를 사서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여행하는 내내 계속 비둘기들을 관찰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먹이를 먹으러 사람팔은 물론이고 머리에까지 올라가는 비둘기들 덕에 아주 재미가 쏠쏠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싼 마르코 성당에도 못들어가고
두깔레 궁전역시 너무 더운 날씨탓으로 돌리고 포기.

 결국 잠시 쉬어 갈 겸 해서 광장의 비둘기들과 보낸 시간이 본의아니게 길어졌다.
 이런 순간 만큼은 애나 어른이나 다 똑같은가 보다. 다들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어 광장에서 그렇게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난 우리는, 부라노 섬으로 가기 위해서 섬 반대편 수상버스 정류장에서 무작정 파업이 끝나는 4시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이탈리아의 푸른 하늘과 아드리아해의 초록빛 바다가 만나며 이루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다행히 파업이 일찍 끝나서 3시 조금 안되었을때 부라노섬으로 가는 수상버스 LN Line 을 타게 되었다.
 베네치아 본섬에서 버스를 탈때만 해도 사람이 얼마 없길래 '역시 사람들이 부라노는 잘 모르는구나' 했는데,
알고보니 부라노 가는 사람들은 무라노섬에서 '부라노, 브라보!'를 외쳐대며 무더기로 탑승했다.


 약 40 분여 걸려 도착한 부라노는, 주민들이 사는 작은 섬이었다. 사실 한국에서 사진으로는 대충 보긴 봤었지만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집들로만 되어있는 마을에 들어가 보니 이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장난감 마을에 와 있는것 같기도 하고 뭔가 오묘한 느낌이었다.






 한적한 마을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잠시 쉬어가기에 딱 좋았다.
 
 마을을 거닐던 중,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알록달록하게 벽을 칠한 이유가 대체 뭘까?'

 우리 세명은 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여기서 나온 의견들을 정리해보면..

1.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칠한 것이다. (K군)
2. 정부에서 이 마을만 이런 규칙을 만들어 준 것이다.(나)
3. 여긴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섬이다.(J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에도 없던 엽서 한장까지 사면서 가게에 들어가 아저씨께 물어보니,
'Just tradition' 이라고만 하신다. 미처 그 전통의 유래까지는 못 물어봐서 아쉬웟지만 어쨋든 참 특이한 전통이다.









 부라노를 빠져나와서 다시 배를 타고 한시간. 니스보다 아름답다는 리도섬의 백사장을 가보았지만,
미처 수영할 준비를 못하고 온 터라 그냥 바라볼 수 밖에 없어서 더 아쉬운 곳이었다.


 앞으로 가게 될 니스에서의 해변을 상상하며, 다시 배를 타고 베네치아 본섬으로 돌아왔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성당이나 박물관에는 가볼 수 가 없고, 기차시간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그냥 탄식의 다리 앞 바닷가에 앉아 사람구경이나 하면서 장봐온 재료들로 저녁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즐거웠던 베네치아에서의 하루를 마치고, 로마로 가는 야간 열차를 타기위해 역으로 돌아온 우리에게 다시한번 큰 일이 벌어져 있었다. 컴파트먼트 3자리를 예약한 우리칸에는 이미 흑인 3명이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정말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흑인을 처음본 나는 조금 무서웠지만,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들은 나폴리에서 베네치아로 일을 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 들이었고 지금 일을 마치고 다시 나폴리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6명이 가득 차서 로마까지 가는 바람에 편하게 잘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착한 아저씨들을 만나서 마음 놓고 로마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얘기를 나누다 보니 착한 사람들이었고 자리도 비켜주어서 잘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무서웠다. 열차바닥에 조그려 앉아서 로마에 입성하는 비참한 신세는 겨우 면할 수 있었다.

오늘의 지출

수상버스 1일권 13 €
열차 예약비 3 €
점심 피자 4.2 €
부라노 엽서 0.5 €
저녁 마트에서 장본것 4.48

                                                                                                                          total 2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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