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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친한 후배 한놈이 세계일주를 떠났다. 작년 초 나와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했던 친군데 이번엔 무려 1년짜리 계획으로 지구 한바퀴를 돌겠다며 훌쩍 떠나버렸다. 그의 길고긴 여정의 출발은 당연히 인도다. 나의 강력한 추천과 조언에 힘입어 자신있게 델리행 티켓을 끊더라. 요새 간간히 페이스북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니 요새는 북부 라다크 지방을 돌고 있는것 같다.
 또 다른 누님 한분도 내일이면 인도로 떠난다. 짧은 일정이지만 처음 가보는 인도라는 낮선 여행지에 걱정이 많으시길래 아는대로 최대한 조언을 해드렸다. 물론 나의 조언은 항상 이런식이다. '무조건 일단 떠나보세요! 그럼 다 알게 됩니다.'



갠지스강의 가트는 저마다 재미있는 볼거리로 가득하다


 그러고보면 내가 인도에 다녀온 이후로 참 많은 사람들이 인도 여행을 물어온다. 그 중에서도 제일 답하기 어려운건 '인도에 가면 뭐 볼게 있어?'라는 질문. 한번이라도 인도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 질문이 얼마나 난해한지 알리라. 물론 내 답변은 항상 똑같다. '일단 가보면 지내는 매 순간이 볼거리고 곧 여행이다'라고. 그게 바로 인도를 제대로 여행하는 방법이기에.





같은듯 다른듯 재미있는 가트의 풍경들.


 바라나시에서 사르나트에 다녀온 날은 생각보다 너무 시간이 많이 남았다. 한국에 있을때는 이렇게 아무 할일없이 시간을 보내는게 왠지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인도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남는 시간이 반가울 따름. 강가를 따라서 한두시간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여기가 인도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멀리 보이는 바라나시의 구시가지들은 참 옹기종기 정겹다


 바라나시에는 수십개의 가트가 갠지스강을 따라서 늘어서있다. 도시 자체가 강을 따라 길게 늘어서있다 보니 가트를 따라 걸으며 구시가지와 어지럽게 연결되는 골목을 탐험하는게 아주 재미있다. 그날따라 날씨가 많이 더웠지만 이왕 바라나시까지 온김에 가트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가트의 서쪽 끝은 이렇게 한적한 분위기다


 가트들은 각자 고유한 이름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계속해서 걷다보면 묘하게 하나로 이어진다. 전에 푸쉬카르에서도 가트를 따라 걷는게 참 좋았는데 이곳의 가트는 그보다 더 크고 아기자기해서 걷는 맛이 난다. 바라나시의 신시가지는 강에서 먼 쪽으로 조성되어있기에 가트에서 바라보는 강가 풍경은 더없이 나즈막하고 소박한 풍경이다. 유량이 커서 장마철이면 고수부지가 물에 잠겨버리는 한강과는 많이 대조적인 모습이랄까.




그냥 말없이 걷기만 해도 좋은곳


 누나랑 함께 한 시간 넘도록 가트를 걸었다. 그간 여행을 하며 참 수다를 많이 떨었던 우리지만 왠지 이곳에서만큼은 둘다 꿀먹은 벙어리다. 그저 강바람을 맞으며 이 분위기, 이 순간을 음미하며 천천히 걸었다.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딱히 덧붙일 말도, 설명할 것도 없다. 글과 사진만으로는 그때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해낼 수 없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목욕을 하며 더위를 피하는 물소들


 그렇게 가트를 따라 걷다가 마음에 드는 자리를 발견하고는 얼른 크로키북을 꺼내 들었다. 비록 처음 계획했던것 만큼 여행하며 많은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지만 바라나시에서 만큼은 꼭 한장 담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그림을 그리고, 누나는 옆에서 음악을 들으며 한숨 쉬어가기로 했다.


 한 삼십여분 걸려서 드로잉 한 장을 완성했다. 강물 바로 옆으로 바싹 붙어있는 고풍스런 옛 건물들, 그리고 그 뒤로 멀리 원호를 그리며 강을 감싸앉는 구 시가지의 스카이라인. 내게 여유와 평안을 주었던 가트의 풍경, 바라나시의 느낌이 그림속에 잘 녹아들어 있기를.






가트의 끝에서 두 소녀를 만났다


 관광객들이 잘 찾지않는 가트 서쪽 끝까지 왔다. 이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 찰나, 양 손에 바리바리 꽃을 든 두 소녀가 우리에게 달라붙는다. 이정도 되면 안봐도 상황은 뻔하다. 대충 보니 강가에 띄워서 소원을 빌때 쓰는 '꽃불'을 팔려는 모양인가보다. 날씨도 덥고 성가시길래 잔돈이 없다고 대충 둘러댔는데, 그럼 가까운 가게가 있으니 잔돈으로 바꿔서 사라고 연신 부추긴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마침 물도 사러가야하기에 눈 딱감고 속아주기로 했다.






꽃불을 강물에 띄우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같은 바라나시지만 서쪽과 동쪽의 느낌은 또 많이 다르다. 가장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더샤스와메드 가트에는 인도인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더 많은 반면, 이쪽은 말 그대로 우리 둘뿐이다. 우리가 아니면 또 누가 이 소녀들의 꽃불을 사줄까 싶어서 기분좋게 10루피를 내고 두 개를 샀다. 저녁을 먹고 어둑어둑해지면 다시 가트를 찾아와 강물에 띄우기로 했다.




나의 소원은 언제나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 갠지스강에서 빌면 조금 더 효력이 있으려나?^^


 그렇게 여유로운 하루가 또 저물었다. 다시 찾은 가트에서 소원을 빌고 꽃불을 띄우는데 다시보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의식을 하고 있더라. 다만 강 중심부까지 배를 타고 나가 꽃불을 피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띄운 꽃불은 얼마못가 꺼지고 말았지만, 여행의 말미에서 갠지스 강가에 나와 이런 의식을 해보는 기분도 나름 괜찮았다.

 늘 비는 것처럼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는데, 왠지 갠지스강에서 빌었으니 좀더 효력이 있을것만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저물어가는 하루해가 너무 아쉽기만 하다


 이제는 지나갈 시간보다 지나온 시간이 더 생각나는 여행의 말미다. 바라나시를 떠나면 처음 인도여행을 시작했던 델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참 시원섭섭하다. 지는 하루해가 어찌나 아쉽기만 하던지...

숙소로 돌아와 옥상에 올랐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갠지스강과 바라나시는 참 소박하면서도 정겹더라. 떠나야 한다, 떠나야 한다, 떠난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오늘도 허리가 푹 꺼지는 고장난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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