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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를 여행하려는 당신에게 오직 단 하루만 허락된다면 어느 도시를 택할 것인가. 정치, 경제의 중심지이자 인도의 수도인 델리? 아니면 고요한 아름다움이 있는 푸쉬카르? 서구 문명과 인도의 전통이 어우러진 뭄바이?

 만약 그 하루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라나시를 택할 것이다. 인도인들의 성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 그 곳에서 가트에 앉아 갠지스강 너머로 지는 태양을 보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바라나시와 갠지스강은 인도인들의 삶, 그 자체다.


 델리에서 시작하는 인도 배낭여행은 크게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의 두 가지 루트로 나눌 수 있다(물론 라다크 지방을 여행하거나 더 길게 여행하는 경우는 제외). 내가 선택한 반시계방향 루트의 경우엔 델리를 출발해 제썰메르나 조드뿌르를 제일먼저 만나게 되고 한바퀴를 다 돌아서야 마지막에 바라나시를 만나게 된다. 그 반대에 경우엔 델리 다음으로 곧장 바라나시다.

 인도땅에 발을 디딘지 얼마 되지않아 참 많은 한국 여행자들을 마주쳤었다.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나의 물음에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바라나시였다. 꼭 갠지스강이라는 상징이 아니더라도 그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참 좋았다고 했었다. 심지어 어떤이는 바라나시에서 여행을 시작했다가 한달 내내 그곳에서 머물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이른 아침부터 릭샤를 타고 바라나시를 달렸다


 이처럼 바라나시는 많은 여행자들에게 뭔가 특별한 기억,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 도시였다. 오르차에서 더 많은 시간을 머물렀다면 포기했어야 하는 곳이었지만 다행히도 여행의 마지막 5일 정도는 바라나시에서 머물수 있었다.

 카주라호에서 사트나로, 사트나에서 다시 바라나시까지 꽤 먼 거리를 이동해왔다. 초저녁 무렵에 사트나를 출발하는 기차를 탔지만 바라나시 역에는 동틀 무렵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아직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이른 아침. 바라나시 역에서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싸이클 릭샤를 잡아 탔다. 흔히 사람들이 얘기하는 바라나시란 역 근처의 신시가지가 아닌 갠지스 강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구시가지다.


갠지스강을 처음 바라본 역사적인(?) 순간


 숙소로 바로 들어가기엔 너무 이른시간인것 같아 곧장 더샤스와메드 가트로 향했다. 바라나시의 수많은 가트들 중의 대표격인 곳이다. 그렇게 처음 갠지스강과 맞닥뜨렸다.



평온한 모습의 갠지스 강, 하지만 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더러웠다


 어렸을적 참 좋아했던 만화영화중에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펠로라는 고양이와 카터라는 하마의 좌충우돌 세계일주를 담은 내용이었는데 여행의 마지막즈음해서 인도의 갠지스강이 잠깐 등장한다. 지는 석양을 뒤로하고 황금빛 강물로 목욕하는 코끼리와 사람들. 내용상 기승전결에서 거의 '결'에 해당하는 부분이었기에 아직도 내 머릿속에 또렷한 장면이다.

 그렇게 드디어 만난 갠지스강! 하지만 역시 만화는 만화일 뿐이었을까. 아름다운 황금빛 물은 고사하고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말 그대로 구정물 천지다. 이미 사람들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니 충격 그 자체였다.


 

그들은 갠지스강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래도 만화영화속 장면과 똑같았던건, 그 물로 정성스럽게 몸을 닦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인도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바라나시에서 보는 풍경은 왠지모르게 여유로우면서도 편안했다. 제일 먼저 바라나시부터 들린 것 보다, 이렇게 여행을 마무리짓는 곳으로 바라나시를 택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라나시에서 만나는 오늘의 아침 햇살


 가트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데 강 저너머로 오늘의 태양이 맑갛게 솟아오른다. 이제 이곳 인도 땅에서 저 태양을 바라보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바라나시에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좋을지, 그리고 나의 여행을 이곳에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찬단 카페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이른 아침부터 가트를 돌아다녔지만 워낙 일찍 도착한 탓에 아직도 도시는 잠들어있는것만 같았다. 이제는 여행이 종반부로 접어들다보니 숙소를 잡는데도 요령이 생겼다. 한국사람들에게 너무 잘 알려진 숙소보다는, 여유롭게 여정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낼 숙소를 잡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쉬바 카쉬 게스트하우스'.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가이드북에는 '바라나시 최악의 숙소'라고 나와있는 곳이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주저없이 선택했다. 예상대로 한국인은 한명도 없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깨끗한 시설과 친절한 주인 아저씨 덕분에 놀랬다. 창문 너머로 갠지스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좋은 방에 짐을 풀었다.



흔한 바라나시의 일상 풍경들


 바라나시의 아침이 밝았다. 이 도시의 매력은 비단 갠지스강과 가트 뿐만이 아니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구시가지의 골목길과 그 좁은 틈새마다 가득한 사람들의 활기와 사는 냄새. 바라나시에서는 아무리 좋은 지도도 무용지물이다. 한손에는 지도, 다른 한 손에는 나침판을 들고 열심히 길을 찾아 보지만 채 5분도 안되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사람 한명이 채 지나갈까 말까한 작은 골목길들로 가득한 바라나시의 구시가지는 지도없이 감각에 의존해 다니는 수밖에 없다.




바라나시의 정체성, 가트

 
 골목길을 좋아하는 나에겐 바라나시가 마치 커다란 놀이터처럼 느껴졌다. 아무런 질서도 규칙도 없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골목길들은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때 마다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눅눅한 공기와 참을 수 없는 더위때문에 잠깐 마다 한번씩 쉬어가야만 했다.



여행자들에겐 그냥 계단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겐 인생이 담긴 성스러운 곳이다


 다시 가트로 나왔다. 가트라는게 사실 그냥 강가에 있는 계단에 불과하지만 인도에서만큼은 특별한 뭔가가 있다. 갠지스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바라나시의 구 시가지에는 수 십개의 가트가 있다. 모양은 비슷비슷해도 저마다 고유한 이름이 있고, 그 장소만의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는 뭔가가 있었다. 왠지 바라나시에 머무는 내내 가트에 참 많이 오게 될것 같다.



강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가트를 따라 계속해서 걸어보기로 했다. 바라나시에서 가트는 그들의 전부이자 삶 그 자체다. 아침 일찍부터 나와 기도를 드리고 성스러운 의식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 저녁이면 강가에 꽃등을 띄우고 하루를 정리하며 젊은이들은 가트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밤을 맞이하기도 한다. 내 눈에는 더러운 구정물로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담겨있는 황금빛 물결로 보이리라.

 이대로 가트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바라나시에서 가장 어렵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 곳, 화장터가 나온다.



허락을 구하고 딱 세 장의 사진을 찍었다


 바라나시는 나의 여행에 있어서도 종착역이었지만, 수 많은 인도사람들이 인생을 마감하는 삶의 종착역이기도 한 곳이다. 인도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긴다는 갠지스강에서 육신을 놓아주고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의식이 이루어지는 이 곳. 바라나시의 화장터는 그야말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성스러운 장소다.

 당연한 얘기지만 본래 화장터에서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우리는 근처 직원에게 허락을 맡고 멀치감치서 기록의 의미로 몇 장을 찍어두기로 했다. 하지만 이 세 장의 사진을 촬영한 뒤로는 더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장작더미 속에서 타들어가는 육신, 화장장을 가득 덮은 매캐한 연기와 냄새,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의식의 소리와 계속해서 화장터로 들어오는 시신들. 어떤이는 이곳에서 눈물을 흘렸고, 어떤이는 더 지켜보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해댓다고 했다.

 나는 그저 멀치감치서 묵묵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눈물이 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다만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에 잠깐 어지러움이 느껴졌을 뿐이다. 내가 감정이 메마르거나 무심한건 아니다. 다만 갠지스강에서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을 하는 그들의 모습의 너무나 행복해보였기 때문에 슬퍼하거나 눈물을 보이는건 오히려 실례처럼 느껴졌다. 화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도 아무도 울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그들의 세계관 속에서는 죽음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 조금은 다른것 같다.


산 자의 하루는 또 이렇게 마무리된다


 화장터로 들어가는 골목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라씨샵과 식당, 인터넷 카페들이 즐비하다. 그곳에 앉아있다보면 한 시간에도 수 차례씩 시신들이 옆으로 지나간다. 참 묘한 기분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스쳐 지나가는 바라나시의 골목길은 세계 그 어느곳에서도 볼 수 없는 인도만의 문화이자 삶이다.

 화장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서였을까, 바라나시에서의 첫 날은 유난히 빨리 지나가버렸다. 더운 날씨때문에 숙소에 들어와서 등목을 하고 다시 나가길 수 차례. 어둑어둑 해진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이곳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는데 저 쪽에서 다시 땡그랑 하는 종소리가 들린다. 바라나시의 화장터는 밤 새도록 그렇게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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