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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넘어오면서 가장 큰 변화는 야경 사진을 찍게 되었다는 점이다. 필름을 쓸때만 해도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없어서 불안하기도 하고, 내 실력을 믿을 수 없어서 야경 사진은 잘 찍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디지털 카메라로 야경 사진을 조금씩 찍다보니 이렇게 재미있는 사진놀이도 또 없지 싶다. 셔터를 누른 뒤의 기다림과 설렘, 결과물을 보며 다시 한번 느끼는 즐거움은 야경을 찍으며 누리는 특권이 아닐까. 오늘도 퇴근길에 잠시 한강쪽에 들러 몇 장 찍어보고 왔다. 삼각대가 없어도 난간이나 돌 위에 카메라를 올리면 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바닥에 놓으면 그만이다. 야경 사진이 이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대체 뭘까.





하나, 눈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풍경
 '감도를 최저로 설정하고, 조리개는 9~13정도로 조인 뒤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여 장노출한다'
 흔히 말하는 야경을 찍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카메라 세팅 방법이다. 그리 밝지 않은 상황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 이런 세팅으로 노출을 길게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헌데, 야경사진이 재미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전 눈으로 보는 풍경과 카메라에 찍힌 사진의 느낌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 특히나 움직이는 물체가 있는 곳에서는 빛의 궤적이 만들어 지기도 하고, 어둡게만 보이던 하늘이 사진 속에서는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기도 한다.
 사진이 감동을 주기 위한 방법 중에서, 인간이 평소에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시선, 장소, 구도로 피사체를 바라보라는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인간의 눈으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풍경, 그래서 야경 사진은 찍을 때 마다 늘 새롭고 재미있다.


둘, 빛으로 그리는 한 장의 그림
 노출시간을 길게 하면 자연스럽게 빛망울이나 궤적등이 사진 속에 표현되는데 이 또한 야경 사진만의 매력이다. 낮 시간에 찍는 사진이 대부분 있는 모습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 것이라면, 야경을 찍을 때는 사진속의 빛을 의도적으로 연출하기가 훨씬 수월해 진다. 결국 사진은 빛을 가지고 하는 예술이다. 캔버스 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야경을 찍을 때면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느낌 마저 든다. 게다가 색감이나 노출 시간을 조절한 결과가 밝을 때보다 사진 속에 더 확연히 드러나게 되니 셔터를 누를 때 마다 짜릿한 손맛이 느껴진다.


셋, 사진 속에 시간을 담다
 짧게는 1초에서 길게는 30분에 이르는 노출 시간. 사진을 찰나의 미학이라고도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셔터를 열어두면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 사진 속에 담기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야경 사진에 자동차 궤적이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꼭 도로 위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사진을 담을 수가 있다. 특히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은 밤거리에서는 미리 예측할 수 없는 분주한 움직임과 사람들의 실루엣이 한데 어우러지며 몽환적인 느낌을 만들게 된다. 오랜 시간의 궤적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한다는건 그만큼 매력적이다.


넷,  자리 잡기
 사진을 찍다보면 유명한 출사지에는 흔히 말하는 '포인트'를 한 두개 씩 딸려있는데, 소위 사진이 잘 나오는 명당 자리를 뜻하는 말이다. 야경사진의 경우에는 더욱이 좋은 포인트가 빛을 발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경,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산 꼭대기, 남산 타워가 내려다 보이는 달동네의 언덕. 물론, 남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포인트를 굳이 다시 찾아가서 똑같은 사진을 담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야경 사진을 찍기 위해 나만의 포인트를 찾아 다니는 재미가 또 쏠쏠하다.
 몇 백 분의 일초 만에 찰칵 하고는 돌아서는게 아니라, 진득하게 한 자리에서 머무르며 담아야하는 야경 사진의 특성상, 마음에 드는 자리를 신중하게 잡고, 몇 번 씩이나 파인더를 다시 들여다 보며 신중하게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 또한 사진 찍기의 일부가 아닐까. 이런 소소한 즐거움은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운 나만의 야경 사진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다섯, 기다림의 미학
 아무리 좋은 자리를 잡았어도, 마음에 드는 프레임을 찾았어도, 일단 셔터를 누른 뒤에는 옆에서 함께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필름 세대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결과물을 그자리에서 확인 할 수 있게 되고 지우는 것도 간단해서 셔터를 누르는 신중함이 사라져 버렸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야경 사진을 찍을 때 만큼은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고, 누른 뒤에도 뒤돌아 가버리는게 아니라 함께 그 옆을 지키며 같은 곳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그 시간이 나는 참 좋다. 카메라의 셔터가 닫히기를 기다리며 홀로 서있는 그 시간, 그래서 왠지 야경 사진을 찍을 때면 곁에 누가 있는 것 보다는 혼자인게 더 좋다.


 야경을 찍다보면 새삼 서울이 참 아름다운 도시라는걸 느끼곤 한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은 복잡한 거대 도시 서울. 하지만 늦은 밤에도 잠들지 않고 쉴새없이 돌아가는 도시의 보고 있노라면 지쳤던 몸과 마음에 다시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 야경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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