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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을 그릴줄만 알았지 받을줄은 몰랐다. 인도를 스케치북 가득 담아 그리고 오겠다며 큰소리 뻥뻥 쳤지만, 애초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페이지가 텅텅 빈 스케치북을 들고 여행을 마쳐야 했다. 비록 스케치북은 다 채우지 못했지만 그림을 그리며 만든 추억들이 나머지 빈 페이지를 가득 채워주는 것 같아서 그래도 허전하진 않다. 

 그림이라는게 한장만 그린다 해도 30분이 넘게 꼼짝않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에피소드도 많이 생기고 현지인들과 오랜 대화를 나누는 일도 많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그렇게 대화로 마음이 통했던 친구들에게 작은 그림이라도 한장씩 그려서 선물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이 안들었는지, 어휴.


아래 웃고있는 사진이 MAMITA, 위에는 그녀의 조수(?)


 어쩌면 난 욕심만 가득한 이기적인 여행자는 아니었을까. 인도의 풍경을 혼자만 보겠다고 꾸역꾸역 스케치북속에 담고있었으니말이다. 하지만 정작 내 스케치북의 그림중 가장 소중한건 내 그림이 아니다. 나에게 그림을 그려준 소녀 MAMITA, 바로 그녀의 그림이다. 푸쉬카르에 머무르며 자이푸르 가트에 나와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던 어느 오후의 일이었다. 그날따라 어찌나 해가 쨍하던지 땡볕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다가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어서 그늘아래서 쉬고있던 동행 누나를 찾아 다시 돌아왔다. 여행하는 내내 인도 여자들이 하고다니는 머리스타일에 관심이 많던 누나는 어느샌가 또 여자아이 두명을 불러앉히고는 머리를 땋아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외국인 남자 여행자가 인도의 여자들과 툭터놓고 대화를 나누거나 친구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쉽지가 않다. 얼굴을 꼭꼭 숨기고 보여주지 않는 여자들에게 무슨 말을 걸며, 심지어 대부분의 결혼한 여자들은 밖에 나다니는 일도 거의 없어보였다.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볼 기회는 MAMITA 처럼 어린 소녀들을 만났을 때 뿐이다.


 내가 그림 그리길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는 귀퉁이가 찢겨진 노트 한페이지를 주욱 찢어서 볼펜으로 뭔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는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저 낙서 아니면 간단한 그림으로 대화를 하려는거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MAMITA가 다시 내민 종이에는 다름아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손에 힘을주고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꼼꼼하게 그린 흔적이 역력했다.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 문양을 그렇게 쉽게 그려내는지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내친김에 그림 한쪽 귀퉁이에 싸인까지 받고 나니 그 어떤 여행지의 그림엽서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고보니 인도에는 MAMITA가 그려준 그림같은 정교한 문양들이 참 많았다. 가장 인도다운 문양, 익숙하면서도 한국의 그것과는 많이 달라보인다. 단순한 패턴의 반복을 넘어 뭔가 특별한 질서를 담은듯한 심오한 문양들.
 하도 신통해서 나도 비슷하게 따라그려보려는데 잘 안그려진다. 쉬워보였는데 막상 처음보는 문양을 따라그리려니 잘 안되는 모양이다.


 인도 소녀들은 무슨생각을 할까. 어쩌면 우리나라의 십대 소녀들과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늘 궁금했던 찰나에 MAMITA를 만났고, 대화도 나눴을 뿐 아니라 예쁜 그림까지 얻었다! 함께있던 누나는 머리도 인도식으로 덤으로 땋았으니 인도에서 만난 친구중 제일 멋진 친구가 아닐까. 고마운 그녀의 그림은 인도 여행의 추억과 함께 스케치북에 잘 끼워서 오래 간직하고싶다.

 에구. 글을 쓰다보니 또 뒤늦은 후회가 이제서야 든다. 그때 MAMITA에게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문양이나 간단한 그림을 답례로 그려줬으면 좋았을텐데. 이런건 왜 꼭 나중에 지나서야 떠오르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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