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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껏 한번도 다른 도시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말 그대로 '서울 촌놈'인 나.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직도 서울에서 가보지 못한 곳,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예전에는 서울이 너무 크다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 했었는데, 돌이켜보면 서울이 너무 익숙했기에 내가 나고 자란 도시를 감히 '여행'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도 같다.
 아마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서울 사람들이 또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라는게, 이미 경험한 것 보다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것에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 그래서 시간을 따로 내어 서울을 '여행'한다는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서울시티투어버스 노선도, 우리는 주황색 네모까지만 이용했다


 그런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 방법은 무엇일까.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서울시티투어버스라는 매력적인 방법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시티투어버스는 말 그대로, 외국인 관광객들을 주 타겟으로 하여 시내 이곳저곳을 쉽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만든 서울시의 여행 상품이다. 내가 고른 노선은 일반 관광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아보는 버스였지만, 청계천을 따라서 도는 2층 버스도 있고, 야경 투어 노선까지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생각보다 알차게 서울을 여행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광화문에 마련된 서울시티투어버스 매표소


 하룻동안 여행자가 되어 내가 사는 이 도시를 여행한다는 발상이 참 매력적이었다. 여행은 광화문 교보타워 맞은편의 매표소에서부터 시작된다. 일 인당 요금은 만원. 티켓을 가지고 있으면, 원하는 관광지에서 내렸다가 시간을 맞춰서 몇번이고 버스를 다시 탈 수 있다. 또한 티켓에는 여행과 관련된 각종 할인권이 함께 들어있어서 또 소소한 재미가 있다.


외국인들 뿐 아니라 한국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드디어 오늘의 버스가 도착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꽤 많은 편이었는데, 외국인 관광객 못지 않게 한국 사람들도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가보다. 외국에서 봤던 오픈형 2층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서울시티투어버스는 1층, 2층 버스 모두 개방형이 아니다.




한가로운 궁궐의 오후


 교차로 하나를 지나 첫번째 목적지인 덕수궁 앞에 내렸다. 마침 시간이 딱 맞아서, 하루에 세 번 뿐인 수문장 교대식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 가이드가 친절하게 안내 방송을 해준다. 오랜만에 고궁에 들어서니 참 많은 생각이 든다. 건축과에 입학할때만 해도, 열심히 공부해서 외국인들이 한국의 건축에 대해 물어오면 유창하게 설명해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졸업반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아직 우리나라의 건축물, 한국의 고궁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는게 많다. 우리의 것을 알고 이해할 수 있어야, 더 많은 문화를 내 안에 담을 수 있는 것인데... 아직도 공부 해야 할게 너무나 많다.



여유롭게 주말을 즐기는 가족


 주말이라 그런지 나들이 온 가족들도 자주 눈에 띈다. 시원스레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대를 바라보며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이 참 여유롭고 좋아 보인다.
 궁궐 한 복판에 들어오니, 아름다운 곡선의 지붕 위로 고층 건물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는게 보인다. 옛날에는 저 뒤로 산세가 아름답게 펼쳐졌을테지만,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이렇게 바뀌어버린 스카이라인을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의 스카이라인에서 다른 의미의 감동을 받는다. 오랜 시간의 두터운 켜가 한 장면에서 느껴지는 미학. 어쩌면 궁궐 안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이야말로 2010년 서울의 진정한 정체성이 아닐까.







내 눈에도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수문장 교대식


 두 시가 되자, 대한문 앞에서 수문장 교대식이 시작됐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사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생소한 풍경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야 눈이 휘둥그레 지는게 당연하겠지만, 이날 만큼은 내가 더 신이나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날이 많이 더웠음에도, 모두들 엄숙한 표정과 절도있는 동작으로 멋지게 행사를 마무리 지었다.




전쟁기념관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국립 중앙박물관을 지나 전쟁기념관에 도착했다. 그래도 여긴 어렸을때 와본 기억이(정확히 말하면 사진을 본 기억이)나는데 비행기나 탱크들만 기억나지 건물은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학교 설계 튜터로 오시던 이성관 선생님의 작품이라는데, 이제서야 뒤늦게 만나보는 셈이다.


 전시실로 들어가는 메인 홀이다. 얼핏 루이스 칸의 킴벨 미술관이 떠오르는 아치형 천장이 눈에 띈다. 킴벨 미술관의 경우는 자연광이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전쟁기념관은 규모가 크고 복층 구조로 되어있어서 그 자리에 인공 조명이 대신하고 있었다. 날이 많이 덥고 시간이 촉박해서 모든 전시실을 다 둘러볼 수는 없었고, 기획 전시실에서 열리는 DMZ사진전만 관람하기로 했다.




의외의 발견, 꽤 흡족한 전시였다


 DMZ 사진전시회는 따로 5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했는데,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은 멋진 전시였다. 사진전이라고 되어있지만, 사진 뿐 아니라 각종 자료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서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여담이지만, 전시장에 들어가면서 뮤지컬 '잭 더 리퍼' 티켓 응모 행사를 하길래 장난 삼아 한번 넣어봤는데, 어제 연락이 왔다! 당첨이란다! 허허



늘 그렇듯, 여행의 마무리는 즐거운 술과 함께!


 전쟁기념관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이태원으로 향했다. 특별히 뭘 더 보러 갔다기 보다는, 다양한 음식점과 놀거리가 있어서 여행의 종착지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오늘은 시티투어버스 전체 코스에서 절반도 채 안되는 짧은 구간만 이용했지만, 조금 서두르면 남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 명동에서 마무리를 짓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살면서, 내가 사는 이 도시를 다시 돌아볼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서울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다양한 국적, 인종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서울을 여행하고, 한국을 되돌아 보는 기회. 여행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추억, 즐거운 또 하나의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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