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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동인천까지 지하철로는 1시간 남짓, 자동차를 타고는 빠르면 30분이 고작이다. 이제는 9호선이 생겨 서울 한복판에서도 질주하는 급행열차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지만, 어두컴컴한 지하가 아닌 땅 위로 달리는동인천 급행을 타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꼭 기차가 아니어도 덜컹거리는 리듬에 몸을 맡기고 차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꼭 기차여행이라도 하고 있는 마냥 신이나곤 했다.

 서울에서는 접하기 힘든 제대로 된 중국 요리들이나 군것질을 맛보려는 목적으로 인천 차이나타운까지 먼 걸음을 하는 사람들도 많단다. 사실, 휴가를 나온 친한 동생녀석이 1박2일로 어디든 여행좀 다녀오자는 말에 서울서 제일 가까운 인천을 무작정 택했던 것 같다. 차이나타운은 그만큼 서울과는 뭔가 다른게 있을거라고 생각했던것 같기도 하고.


 날씨가 하도 추워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목이 화해지는 고량주부터 찾았다. 그러고보니 차이나타운에서 찍은 사진이라고는 술안주로 함께 먹었던 탕수육과 짜장면 사진 두장이 고작이다. 나름 그럴싸하게 만들어놓은 패루도 있었고 삼국지 이야기를 그린 벽화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필름을 쓰면 이런게 참 좋다. 그때는 의식하지 않았지만 돌아와 현상을 하고 나면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디에 관심을 가졌었는지 고스란히 사진속에 묻어나니 말이다.


 짬뽕 혹은 잡탕밥. 인천에서 내가 먹은 요리는 짜장면과 탕수육이었지만 인천은 짬뽕 혹은 잡탕밥같은 여행지로 기억된다. 동인천에서 시장쪽 골목으로 걸어가다보면 꽤 흥미로운 거리를 만날 수가 있는데 일제시대의 가옥양식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거리란다. 얼핏 기억이 나는게 인천시에서 이 거리를 만들기로 결정했을때 각계 인사들이 여러가지 의견을 내놓으며 토론을 펼치기도 했던것 같다. 직접 가서 본 첫인상은? 그야말로 짬뽕이다.





 실제로 인천은 처음 개항된 이래로 청국과 일본의 조계지가 들어섰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일제나 개항기에 관련한 실제 등록 문화재들도 꽤 많이 남아있고, 번화한 도심풍경 사이사이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묘한 분위기도 인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좋은 자원을 그냥 홀로 남겨두기가 미안했는지 어느새 주변 가로의 모든 건물들은 일제식 목조건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냥 구워먹어도 참 맛있을 새우를 짬뽕에 집어넣어서 국물을 우려낸 느낌. 너무 맵고 강해서 새우 맛을 느끼기도 전에 목구멍이 벌겋게 데어버릴것만 같은 불편함이 있었다. 진짜 목조건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껍데기만 바꿔썼지만 제대로 고증이 된건지 알 방법도 딱히 없어뵌다. 아무리 일본 조계지라는 역사적 배경을 전제로 하더라도 굳이 한국에서 이런 세트장을 만들어야 했는지도 의문이고...
 더욱 재미난건, 그렇게 만들어놓은 일본식 세트장 건물에 달린 간판들이다. 이왕 할거면 간판까지 제대로 옛날식으로 어울리게 만들어나 줄것이지 늘 하던 간판정비사업처럼 또 반듯반듯한 간판을 달아놓았다. 짬뽕중에서도 제대로 우러난 진국 짬뽕이다.


  그나마 짜장면이라도 먹을 수 있는 차이나타운 골목에 비해, 이쪽 일본 골목은 사람들의 왕래도 뜸하다. 이래저래 실망하고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에 떡하니 세워진 공자상이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고 서있다. 얼핏 뒤에서 보면 브라질 리우에 있는 거대한 예수상이 떠오르지만, 왜 공자선생님이 인천에 난데없이 와계실까. 이유도 목적도 알수없는 공자상을 뒤로하고 자유공원에 올라 복잡한 머리를 조금 식혔다.

 디자인계에서는 요새 패밀리룩이 중요하다고 한다. 자기 브랜드에서 나온 제품들에 비슷한 디자인 요소를 공통적으로 넣어 아이텐터티를 부각시키는 일종의 디자인 기법이다. BMW의 두 쌍의 라디에이터 그릴이나 애플사의 미니멀리즘한 MP3 전면부가 척 보기만해도 어디제품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시디자인 혹은 공공디자인도 크게 다를바가 없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최근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여러가지 도시 디자인 프로젝트에는 색깔이나 글씨체, 기본적인 디자인 조형등을 공유하면서 어느정도 아이덴터티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천 차이나타운엔 그게 없었다. 차이나 타운 골목은 그 골목대로, 또 일본 조계지에 오면 또 그 골목대로, 제각기 다른 접근 방식과 디자인으로 결국 이도저도 아닌 정체성을 잃은 인천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짜장면만 먹기위해 인천까지 갈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풍부한 근대 건축물들과 역사의 흔적들. 이 모든게 함께 읽혀지고 엮어지면서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인천에는 충분하다. 더이상은 말초적인, 혹은 일시적인 자극만을 강조하는 짬뽕이 아니라 그냥 구워먹어도 맛있는 인천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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