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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인동, 통인동, 효자동, 필운동, 체부동.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듯한 익숙한 동네 이름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경복궁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산자락을 따라 걸으며 마주치는 '서촌'의 지명들이다. '북촌'은 들어봤어도 '서촌'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 하지만 어쩌면 북촌보다 더 생생한, '진짜 한옥'들이 이곳 서촌에는 가득하다.


 얼마 전, 종로구에서는 걷기좋은 고샅길 20선을 발표했다. 그중 마지막 스무번째 고샅길이 이곳 서촌이다. 통의동 백송 및 창의궁터 → 효자로 → 효자·옥인동 한옥길 → 박노수 가옥 → 옥인 시민아파트 청계천 발원지 → 이중섭 가옥 → 필운동 골목길 → 배화학교 및 필운대 터로 이어지는 코스는 2010년까지 정비사업 및 기타 조성사업을 통해서 관광코스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평범한 삶의 터전, 또 하나의 한옥 체험코스]라는 테마 이름에서처럼 말그대로 서촌은 사람사는 마을 그 자체다. 북촌의 한옥마을이 예전 모습과는 달리 삼청동, 인사동과 연계하여 부티나는 카페와 갤러리 촌으로 변신을 한데 반해 서촌에는 아직까지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여기가 뭐 그리 특별하길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냥 내집앞 골목을 걷고 있는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 편안함이 참 좋았다. 좁은 골목길을 돌아 설 때 마다 이따금씩 깜짝 선물처럼 나타나는 오래된 한옥들. 우리가 흔히 책에서 보는 그런 한옥은 분명 아니다. 1920년대 마구잡이로 지어지기 시작했던 도시형 한옥, 소위 집장사들의 한옥이 대부분이다. 회벽 대신 콘크리트로 담을 쌓고, 흙대신 양철판으로 지붕을 덮었다. 어디가서 서까래가 붙어있는지, 어느부분을 처마라고 불러야 할 지 애매한 건물들. 일본식 주택양식과 한옥의 모습이 섞여서 만들어낸 이런 주택들은 왠지 모르게 우리 정서와 이미 친숙한 느낌이다.

 북촌은 한옥마을로 그 정체성을 확실히 굳히기로 했지만, 되려 그때문에 진짜 한옥들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기도 하다. 한옥이라는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그냥 기와만 있고 나무로 지으면 북촌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는지... 건축가들과 정치가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한옥이라는 이름하에 북촌은 이미 여기저기 공사하는 소리로 시끌시끌하다.









 서촌은 근대기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화가 이중섭의 일생중 서울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머물렀던 생가가 아직 서촌에 남아있다. 물론 지금은 들어가볼 수 없긴 하지만... 그래서 종로구가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서촌을 택한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가보는 서촌에서 만난 어색하지 않은 정겨운 풍경이 참 좋았지만, 왠지 서촌은 이방인인 나를 반기지 않는듯한 표정이다. 한옥 보존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들을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고샅길이며 문화관광자원이며 다 필요없단다. 그냥 이 자리에 아파트를 세워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북촌의 한옥들이 민속촌과 다른점은 바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존재한다는 점이다. 집이라는건 본래 사람이 살기 위한 것이지 박물관에 전시하는 유물처럼 그냥 놓고 보기위한건 아니다. 민속촌의 한옥들이야 깨끗하게 잘 보존하고 관광객들이 볼 수 있게 한다면 어느누가 싫다고 할까. 하지만 내가 정말 '살고'있는 집을 관광객들이 볼 수 있게 만든다면 반길 사람은 그리 많치 않을거다. 그래도 어느정도 상업화가 진행되고 이제는 이방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북촌에 비해, 서촌은 이런 서울시의 일방적인 태도가 다분히 당황스러웠을테다.


 관광객, 외국인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서울의 마지막 기회의땅, 서촌.
 하지만 지금까지 관심도 없이 방치하다 싶이 해오던 그곳을 다짜고짜 고샅길로 만들테니 내놓으시오 하는건 분명 도둑놈 심보가 아닐까.
 적어도 내가 걸어본 서촌은 아직 관광지로 만들기에는 부족한점이 많았다. 마땅한 카페나 가게도 없고 길을 걷다가 쉬어갈만한 의자 하나 찾기가 만만치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 이런 시설들을 만들어 주는게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일까. 서촌에서 한평생을 살아오고 지금도 살고있는 주민들, 그들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름도 모르는 외국인들을 위해 조용하고 살기좋은 마을을 통째로 가져다 바칠 사람들은 많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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