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식, 예쁜 선물,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욱 풍성했던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지나갔다. 원래 크리스마스 이후 우리의 계획은 베를린으로 올라가 그 곳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 하지만 막상 생각해보니 시간이 꽤 많이 남았더라. 어차피 멀리 가있는것 보다는 파울네 집에서 몇 일만 더 신세지는게 좋을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이제는 정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파울네 집 뒷마당에 있는 닭들이랑 인사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일기장에 끄적여 보기도 하지만 어쩐지 심심하다. 그래서 우린 스키장으로 향했다. 뒤셀도르프에서 가까운 곳에 '실내 스키장'이 하나 있다고 해서 전날 밤 잠깐 찾아봤었다. 나중에 들어서야 알았지만 우리나라에도(그것도 서울 근교에) 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침이 밝았다. 어느덧 독일에 온 지도 나흘째지만 빡빡한 학교 수업에 시달리던 마드리드에서와는 달리 딱히 할일이 정해지지 않은 편안한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독일에서의 시간은 더욱 느리게만 흘렀다. 날씨도 한 몫 단단히 했다. 파란 하늘과 쨍한 햇살이 익숙한 마드리드와는 달리, 어딘가 우중충 하면서도 빗방울을 가득 머금은 뒤셀도르프의 하늘은 늘 멈춰있는것만 같았다. 독일 사람들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란 우리나라의 설날과 견줄 만큼 큰 명절이다. 유럽에 오기 전까지는(더욱 정확히는 파울네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전까진) 몰랐지만 이들에게 크리스마스란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더라. 그런 점에서 난 참 행운아다. 멀리 마드리드에서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보낸것도 과분한데 독일의 가정집..
마드리드 공과대학교의 2011년 2학기 공식 종강일은 12월 21일 수요일. 그리고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기 위해 독일 뒤셀도르프로 떠나는 내 비행기표 역시 12월 21일 출발이었다. 다른 과목들은 일찍이 종강을 했지만 한국에서도 늘 그랬듯이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는건 설계스튜디오 과목이다. 강의 계획표 상에는 12월 19일 월요일 마감이었던게 어찌된 영문인지 21일 수요일로 일정이 변경되어버렸다. 마감 제출시간은 정오~오후 1시 사이, 뒤셀도르프로 가는 내 비행기표는 오전 11시 20분 출발. 결국 교수님께 따로 말씀드려 하루 일찍 마감을 하고서야 독일로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마드리드에서의 교환학기 마지막 할 일을 끝내고, 치킨과 맥주를 곁들인 소박한 종강파티 뒤에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오전 1..
스페인은 곧 ‘피에스따(fiesta, 파티)’다. 매일 밤 창문을 통해 길거리에 전해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시끌벅적한 분위기, 신나는 음악. 이제는 오히려 길거리가 조용하면 되려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 그만큼 피에스따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문화이자 곧 스페인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교환학생을 오기 전 알고 지내던 서어서문과 친구가 마지막으로 건넨 인사도 그랬었다. ‘잘 다녀 와’가 아닌 ‘피에스따 잘 하고 와’ 피에스따는 보통 밤 10시~11시 사이에 시작된다. 여기엔 별다른 규칙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사실 따로 없다. 그냥 누구 한 명이 자기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면 다같이 모여 새벽 3~4시까지 음식과 술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하고 그러면 된다. 그나마 작은..
오늘은 설계 스튜디오 마감과 함께 마드리드에서의 교환학기가 공식적으로 끝나는 날이다. 어느덧 2011년이 보름도 채 남지 않았고, 이제는 마드리드에서 지낸 날 보다 앞으로 지낼 날이 더 적어져 버렸다. 한국의 겨울 만큼 춥지는 않지만 뙤약볕 아래 한걸음 마다 물 한모금씩 마시던 여름에 비하면 날씨도 많이 쌀쌀해졌다. 지난 8월, 마드리드에 도착해서 처음 했던 일은 바로 '집(Piso) 구하기'였다. 교환학생으로 오기 전부터 이런저런 준비를 많이 했었지만 당장 집 구하는 문제는 현장에서 발로 뛰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더욱 정신 없었던 그 때였다(참조: 마드리드에서 집 구하기). 그렇게 마음에 쏙 드는 집을 구해서 6명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좌충우돌 신나게 살기를 벌써 4개월. 어느새 시간이 흘러 이제는 다시..
지난주, 학회 때문에 스페인에 잠시 들른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한 번도 얼굴볼 기회가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바다건너 스페인에서 5년만에 얼굴을 보게 된 셈이다. 마드리드에선 도착해 내 방에서 딱 하룻밤을 자고 학회가 열리는 그라나다(Granada)와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로 가게 되는 짧은 여정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기도 하고, 마침 또 마드리드에서 4개월이라는 적지않은 시간을 보낸 내가 하룻동안 마드리드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주어진 시간이 겨우 하룻밤 뿐이라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일단 마드리드 관광의 중심인 솔(Sol) 광장에서 부터 출발해 구 시가지를 한 바퀴 함께 걸었다. 걷다보니 문득 마드리드에 처음 도착한 8월 ..
이 날 레스토랑 보띤(Botín)에서 먹었던 저녁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거다. 물론 맛도 너무 좋았지만 그 보다는 학생 신분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비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마드리드에서 살면서,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면서 이만큼 비싼 요리를 먹어볼 일이 또 있을까. 아마 없을것 같다. 맛있게 먹고 집에돌아와 물어보니 보띤(Botín)이라는 레스토랑은 생각보다 꽤 유명한 곳이었고, 마드리드를 찾는 사람들에겐 거의 '필수 코스'같은 곳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살짝 소개해본다. 마드리드에서 쓰는 처음이자 마지막 '맛집'포스팅이다. 마드리드의 보띤(Botín)이라는 레스토랑을 처음 알게된건 우연히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김민수 교수님을 통해서였다. 김민수 교수님과는 전에 '디자인과 문화'..
벌써 네 번째 월말 가계부 정산이다. 11월달은 유난히 돈이 모자른 한 달 이었다. 9월 초 학기가 시작할때 즈음 마음먹기를 '학기중에는 여행에 큰 욕심 부리지 말고 학기가 끝나고 실컷 다니자!'했었는데... 실제로 11월에는 세고비아, 엘 에스꼬리알, 사라고사로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지 지출이 확 늘어버렸다. 12월 말에는 크리스마스 여행도 있고 해서 일부러 긴축재정을 했던 한 달이었는데 정산해보니 오히려 지출이 늘어 조금 당황했다. 역시 여행에는 만만찮은 지출이 따른다. 어차피 12월 말이면 학기도 끝나고 연말 정산을 할 생각이라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눈에 띄는 점은 당연히 '여행'항목. 지난 10월달엔 0% 였던게 무려 전체 지출의 32.8%로 크게 상승했다. 자연스럽게 생활비 총 합도 80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