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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날 레스토랑 보띤(Botín)에서 먹었던 저녁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거다. 물론 맛도 너무 좋았지만 그 보다는 학생 신분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비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마드리드에서 살면서,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면서 이만큼 비싼 요리를 먹어볼 일이 또 있을까. 아마 없을것 같다. 맛있게 먹고 집에돌아와 물어보니 보띤(Botín)이라는 레스토랑은 생각보다 꽤 유명한 곳이었고, 마드리드를 찾는 사람들에겐 거의 '필수 코스'같은 곳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살짝 소개해본다. 마드리드에서 쓰는 처음이자 마지막 '맛집'포스팅이다.


보띤(Botín)에서 꼬치니요를 한번 먹어보시게...


 마드리드의 보띤(Botín)이라는 레스토랑을 처음 알게된건 우연히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김민수 교수님을 통해서였다. 김민수 교수님과는 전에 '디자인과 문화'라는 수업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되어 지금도 종종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리는 사이. 마드리드에 오기전 교수님과 함께 가벼운 술자리를 가지며, 가을쯤 스페인에 오실 계획이 있으시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가서 자리잡고 나면 연락 한번 달라는 말씀에 9월 말쯤에 메일을 드렸다. 얼마 후 받은 답장에는 일정이 변경되어 스페인은 못오시게 되었다는 슬픈 소식이 적혀 있었지만, 눈에 띄는 한 문장이 있었으니... 바로 마드리드의 유명한 레스토랑, 보띤(Botín)에 대한 이야기였다.

멀리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소박한 간판


 그때만 해도 학기초 이것저것 정신없던 때라 보띤(Botín)이라는 이름만 얼핏 읽고 지나쳤었다. 얼마후 레스토랑에 찾아가 식사를 하게 된건 또 하나의 우연이 겹치면서였다. 평소 야구부에서 알고지내던 과선배 한 분이 결혼을 하시게 되었는데 신혼여행으로 스페인에 오신 것이다. 결혼식에 참석 못해서 아쉬워 하던 차, 마침 마드리드에 오시는 김에 저녁이라도 함께 하면 좋겠다 싶어 약속을 잡았다. 선배는 '가난한 유학생 신분에 가기 힘든 괜찮은 레스토랑 하나 예약해둬'라고 말씀하셨고 순간 머리속에 보띤(Botín)이 떠올랐다. 사실 이 레스토랑에 대해 별로 아는바는 없었지만 교수님께서 사진까지 찍어오라고 하실 정도니 이참에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간판 만큼이나 소박한 레스토랑 전경


 그렇게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마드리드로 오신 선배와 형수님을 만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미리 지도에서 찾아봤을땐 마요르 광장(Plaza Mayor) 근처였는데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몇 골목을 헤멘 끝에 드디어 레스토랑 앞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허름해 보이는 입구. 그래서 더 찾기 힘들었나보다.




뭔가 정신없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실내


 레스토랑 보띤(Botín)은 기네스북에도 올라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라고 한다. 대충 300년 정도 되었다고 들었는데, 헤밍웨이가 즐겨 찾던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화가 고야가 알바(!)를 했다는 소문도 있다. 미리 알아보지 못한 까닭에 예약도 안하고 무작정 들어갔는데 다행히 딱 한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이곳에는 1층(한국 층수로 2층)과 지하에 식사홀이 있는데 포도주 저장고를 개조해 만든 지하가 손님들에게는 더욱 인기가 많다고 한다. 우린 예약을 못한 죄로 1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이런 컨셉 포즈도 자연스레...


 1층의 분위기도 나름 괜찮았다. 오래된 레스토랑은 내부가 어떨지 좀 궁금했었는데 생각보다는 깔끔하면서도 소박한 멋이 있었다. 물론 아무리 깔끔하다고 해도 으리으리한 최신 레스토랑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정감가는 스케일이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분위기를 한껏 살리고 있었다.

두둥, 드디어 메뉴판이 등장했다


 무려 300년이나 된 레스토랑이지만 나름 인터넷 홈페이지도 갖추고 있다(하하). 선배와 형수님을 만나기 전, 확인차 홈페이지에 들어가 메뉴를 확인했었는데 역시나 가격은 안 써 있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가격부터 확인했다. 확실히 비싸다. 가끔 피치못해 밖에서 사 먹는 점심 한 끼 10유로도 벌벌떠는 유학생에겐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가격들! 말초신경이 짜릿짜릿해진다. 재미있는건 이날 홀에 한국인이 꽤 많았다는 사실. 마드리드가 관광으로는 그리 유명한 도시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한국인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한국인 관광객은 여기 다 모여있나보다. 

하우스 와인(Vino de la casa)


샹그리아(Sangría)


 일단 자리에 앉았으니 술부터 사뿐사뿐. 예쁜 도자기 병에 담겨나오는 샹그리아 한 잔씩 마시고, 하우스 와인으로 분위기를 더해갔다.

샐러드(Ensalada)


새우구이(Gambas Asadas a la plancha)


 첫번째 접시(Primero plato)로 스페인식 샐러드와 새우구이(Gambas asadas a la plancha)가 나왔다. 사실 원래 시키려고 했던건 저렇게 생긴 새우구이가 아니라 '새우 요리'였는데 주문할때 살짝 헛갈렸다. 물론 맛은 매우 좋았지만... 집에와서 찾아보니 'a la lancha'는 사진속 새우구이 처럼 철판에 직접 굽는 요리를 뜻한다고 한다.

양고기 구이(Cordero asado)


새끼돼지 통구이(Cochinillo)


 드디어 두번째 접시(Segundo plato). 김민수 교수님이 추천하셨던 '꼬치니요(Cochinillo, 새끼돼지 통구이)'와 '양고기 구이(Cordero Asado)'를 반반 나누어 주문했다. 스페인에 와서 꼬치니요를 딱 두 번 먹어봤는데, 이날 보띤(Botín)에서 먹은게 처음이었다. 책에서 보면 큰 접시위에 새끼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구워져 나오는 사진이 있었던것 같은데, 이날은 잘게 썰어서 개인 접시에 담아 나왔다. 돼지고기지만 살이 워낙 연하다보니 식감은 닭고기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참 맛있게 먹었다.


메론과 하몬(Melón con jamón)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 삼아 와인과 함께 먹었던 '메론과 하몬(Melón con jamón)'. 난 잘 몰랐었는데 원래 스페인에선 하몬을 이렇게 메론이랑 같이 먹기도 한단다. 잘 안어울릴줄 알았는데 같이 먹어보니 정말 맛있더라.

다같이 단체사진! 웨이터 아저씨는 사진 찍는것도 능숙하시더라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 보띤(Botín)에서의 근사한 만찬이 끝났다. 평소 잘 챙겨드리지도 못하고 결혼식도 참석 못한 못난 후배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신 멋쟁이 선배와 형수님! 덕분에 마드리드에 반 년이나 살 면서 영영 못와볼 뻔 했던 보띤(Botín)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결혼 축하드리며... 그 날 정말정말정말정말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드리드는 원래 유럽도시 치고 볼 게 없기로 유명하지만... 레스토랑 보띤(Botín)은 꼭 한 번 볼만한, 아니 한 번 먹어볼만한 정말 멋진 곳이다. 그래서 관광객들에게 그토록 입소문을 타고 또 300년이나 지나도록 오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까나. 아, 마드리드에 정말 볼게 그렇게 없는지는 다음 글에서 더 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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