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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학회 때문에 스페인에 잠시 들른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한 번도 얼굴볼 기회가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바다건너 스페인에서 5년만에 얼굴을 보게 된 셈이다. 마드리드에선 도착해 내 방에서 딱 하룻밤을 자고 학회가 열리는 그라나다(Granada)와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로 가게 되는 짧은 여정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기도 하고, 마침 또 마드리드에서 4개월이라는 적지않은 시간을 보낸 내가 하룻동안 마드리드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주어진 시간이 겨우 하룻밤 뿐이라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일단 마드리드 관광의 중심인 솔(Sol) 광장에서 부터 출발해 구 시가지를 한 바퀴 함께 걸었다. 걷다보니 문득 마드리드에 처음 도착한 8월 말, 친구들과 함께 했던 '마드리드 프리 투어(Free tour)'가 생각이 났다. 마드리드 구시가지 자체가 워낙 작고 대부분 볼거리가 다닥다닥 붙어있긴 하지만, 어느새 그때 걸었던 투어 코스를 그대로 걷고 있었기 때문. 

마드리드 프리 투어 안내장!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말의 마드리드. 어느새 마드리드 프리 투어의 기억은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지만 조심스레 그 기억을 다시 떠올려 본다. 벌써 마드리드에 온 지도 4개월 가까이 되었지만 딱히 '관광'을 목적으로 마드리드 시내를 거닐어본건 이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마드리드에서 에라스무스(교환학생)으로 지내고 있는 다른 나라 친구들도 비슷하다. 다들 학기가 다 끝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마드리드 관광을 하겠다며 오히려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을 다니느라 더 바쁘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인 '쁘라도 미술관(Museo de Prado)' 역시 자전거 타고는 그 앞을 수 십번도 더 지나쳤지만 아직 들어가본 적은 없으니 이것참 아이러니다. 어쨌든!

그날 프리 투어는 Ben과 Paul도 함께했다


 아직 학기가 시작하기 전이었던 그 때, 독일 친구인 Paul의 제안으로 나와 우린이, Ben까지 함께 마드리드 프리 투어에 참가하게 되었다. 집을 구하면서 마드리드 시내 곳곳을 벌써 수 도 없이 걸어다니던 때였지만 막상 구시가지 관광을 아직 못해봤기에 흔쾌히 함께하기로 했다. 물론 어느새 2012년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이때의 시내 관광이 유일한 관광이 되어있을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호스텔을 출발해 솔(Sol)광장으로 가는 길


 마드리드 프리 투어는 말 그대로 공짜(Free) 투어다. 유스 호스텔들을 중심으로 관광객들을 모아 매주 토요일 아침에 출발한다. 우리가 찾아간 유스 호스텔은 빌바오(Bilbao)역 근처의 알베르게 후베닐(Albergue juvenil). 전에 친구가 한번 묵었던 곳이라 나름 친숙한 호스텔이다. 출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건만 호스텔에 모인 사람은 우리 셋이 전부. 그나마 우린이는 늦어서 나중에 합류했다. 이상하다 싶어하고 있는 찰나, 가이드가 따라오라며 무작정 시내 중심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른 관광객들도 만나고 북적일줄 알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이걸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광장에 모인 오늘의 투어 참가자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알고보니 프리 투어의 공식 시작점은 솔(Sol)광장이었다. 각 호스텔에서 사람들을 모아와 이곳에서 다 같이 출발하는 방식이었다. 대충 세어보니 20여명도 훨씬 넘는 인원. 유창한 영어와 나름 유머감각까지 갖춘 남미 출신 가이드와 함께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됐다.

짜잔! 제가 마드리드의 랜드마크...랍니다


 그때만 해도 오랜만에 듣는 영어에 신이나서 가이드의 설명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었는데. 어느덧 오래전 일이 되어버려 잘 기억은 나질 않아 아쉽다. 어쨌든 출발 지점엔 솔(Sol) 광장에 대한 설명 부터 투어가 시작됐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파리의 에펠탑 처럼 큰 도시들 마다 도시를 상징하는 유명한 랜드마크가 있는데 마드리드는 바로 사진속에 보이는 '나무에 기댄 곰' 조각상이다. 입담이 좋던 가이드가 '그럼 마드리드엔 뭘까요? 짜잔!'하면서 이 조각상을 소개하는데 막상 앞에 서보면 심지어 크기조차 작다. 기껏해야 높이 3m 정도? 왜 이 조각상이 마드리드의 상징이 되었는지도 들었는데 잘 기억은 안난다. 어쨌든 이 나무와 곰은 마드리드시 공식 문장에도 쓰일 정도로 의미 깊은 말 그대로 '마드리드의 상징물'이다.


외모는 수수하지만 실내는 화려하다던 국립극장


 솔(Sol) 광장에서 서쪽으로 작게 한 블럭만 걸으면 '국립 극장(Opera)'이 나온다. 의외로 겉모습이 그닥 화려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옆에 왕궁을 끼고 있어서란다. 왕궁이 가장 돋보여야 하기 때문에 주변으로 있는 건물들은 화려한 파사드를 가질 수 없도록 금지시켰다는 역사적 배경이 숨어있다.



새하얀 파사드가 인상깊었던 마드리드 왕궁


 국립 극장을 뒤로하고 조금 더 걸으면 왕궁이 나온다. 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 수도에 있는 단일 왕궁 규모로는 유럽에서 최대라고 들었던것 같다. 한국에서 온 친구와 함께 밤에도 한 번 찾아 왔었는데 야경도 상당히 예쁘다. 아직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반대쪽에서 바라본 대성당은 조금 더 화려한 모습이다


 왕궁 바로 맞은편으로 대 성당도 들어서 있다. 수수한 파사드의 국립극장처럼 성당의 정면 역시 유럽의 다른 성당들에 비하면 심심할 정도로 단순하다. 역시 마찬가지 이유, 왕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구시가지를 조금 벗어나 성당을 반대쪽에서 바라볼 기회가 있었는데 왕궁을 등지고 있는 반대쪽 파사드는 상대적으로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잠시 마드리드 구시가지의 역사에 대해 듣는 시간


 솔(Sol) 광장을 중심으로 하는 마드리드의 구 시가지는 정말 작다. 어느새 구 시가지 관광이 끝나고 좁은 언덕길을 이리저리 걸으며 투어가 계속 이어진다. 마드리드 구 시가지의 건물들 중에는 창문이 어지럽게 배치되어 있어 밖에서 얼핏 봐서는 몇 층짜리 건물인지 헛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과거에 건물에 대한 세금을 층수에 따라 매겼기 때문에 밖에서 정확한 층수를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언뜻 현관 계단 갯수에 따라 세금을 매겼었다는 네덜란드의 역사도 떠오른다.

마드리드에 있는 '마드리드 길'의 모습은 과연?


 더운 날씨에 슬슬 지쳐갈 무렵, 우리를 한바탕 웃게 만들어준 바로 이 길. 무려 이름이 '마드리드 길(Calle de Madrid)'이다. 마드리드에 단 하나뿐인 '마드리드 길'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허탈한 웃음만 허허허...


 짜잔! 코너를 돌자마자 나타난 '마드리드 길'. 사진속에 보이는 터널 하나가 이 길의 전부다. 마드리드의 번지수 체계는 '길 이름 + 번지수'인데 이 길에는 딱 1번지 대문 하나 뿐이다. 이럴거면 왜 길 이름을 따로 붙였을까 이것저것 상상해 보는데, 벙 쪄있는 우리를 바라보며 가이드는 웃겨 죽겠다는 표정이다. 실제로 'Calle de Madrid'는 마드리드 시내 전체에서 가장 짧은 길로 유명하다고 한다.





사진빨 제일 잘 받는 광장, 마요르 광장


 조금 더 걷자 다시 구 시가지로 들어온다. 솔(Sol)광장 만큼이나 유명한 마요르(Mayor) 광장에 도착했다. 마드리드의 다른 광장들과 달리 마치 중정에 들어온것 처럼 사방을 빙 둘러 건물이 들어서 있는 특이한 광장이다. 그래서 관광객들에게 더욱 유명한 이 곳. 네 번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재건을 거듭하며 과거 스페인 왕국의 재정을 바닥나게 만들었다는 씁슬한 역사가 깃들어 있는 광장이다.



그랑비아를 따라 걸어보는 일도 마드리드의 매력중 하나


 어느덧 슬슬 배고파질 시간, 마요르 광장을 나와 마드리드 구 시가지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길인 그랑비아(Granvía)를 따라 쁘라도 미술관으로 향한다. 스페인 은행(Banco de España) 이나 씨르꿀로 베쟈 데 아르떼스(Circulo bella de artes)같은 유명한 건물들이 이 길을 따라 들어서 있다. 마드리드에 온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걷게 되는 길이 바로 그랑비아다.



내 DELE 합격증은 언제 보내주실텐가요 쎄르반떼스씨?


 그랑비아 끄트머리에는 스페인어 능력시험인 델레(DELE)를 주관하는 쎄르반떼스(Cervantes) 건물도 있었다. 마드리드에 오기 전 열심히 공부하던 DELE 시험이 생각나 특별히 사진 한장 찍고 지나쳤다.
 

씨벨레스 광장을 마지막으로 투어는 끝이 났다


 마드리드 프리투어의 마지막은 씨벨레스(Cibeles) 광장. 마드리드를 남북으로 길게 관통하는 까스떼야나(Castellana) 대로 가운데 있는 수 많은 광장중에 한 곳이지만 그랑비아와 만나는 광장이라 사람들로 늘 붐빈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화문 광장, 혹은 시청앞 광장 처럼 국가적인 무슨 일(대부분 축구 경기나 월드컵이지만)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로 가득 메워지는 곳이라고 한다. 요즘은 불안한 경제 때문에 시위도 가끔 벌어지기도 하고, 신년 맞이 행사 역시 이곳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함께 한단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해 더욱 즐거웠던 마드리드 프리 투어!


 그렇게 3시간 동안의 프리 투어가 끝났다. 물론 공식적으로 요금은 공짜 지만 가이드에 대한 팁은 따로 챙겨주는게 관행이란다. 우린 각자 5유로씩 주기로 했다. 어느덧 점심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 솔(Sol) 광장 근처에 있는 식당가로 이동해 가이드가 추천해준 몇 군데 중에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땡볕 아래 쉬지않고 걸어다녀서 그런건지, 아니면 정말 괜찮은 레스토랑이라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너무 맛있는 점심 식사였다. 사실 스페인 여행에선 볼거리나 관광지도 중요하지만 음식이 반 이상이 아닐까.

 마드리드는 흔히 볼거리가 없는 도시로 악명이 높다. 세계 3대 미술관중 하나인 쁘라도 미술관이 있긴 하지만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 보다도 늘 매력이 떨어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스페인의 다른 도시로 가기 전, 환승도시 정도의 느낌으로 생각한달까. 물론 그 말이 틀린 말도 아니다. 이날 겨우 반나절 돌아본게 정말 마드리드 구 시가지의 거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마드리드가 볼거리 없기로 유명한 덕분에 교환학생으로 4개월 가까이 마드리드에 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관광객으로 마드리드에 왔다면 3시간 만에 여행을 마쳤다며 아쉬움 없이 떠났을 도시지만, 교환학생으로 와 이곳에 '살게' 되어보니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드리드엔 볼거리, 느낄거리, 생각할거리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혹시나 마드리드에 여행올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긴 시간동안 여유롭게 구석구석 돌아보며 매력을 찾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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