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들은 대체로 수업을 많이 듣지 않는다. 물론 개중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도 있겠지만 에라스무스(유럽 지역 안에서의 학생 교류)들의 교환학기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Gran vacaciones(긴 휴가)'다. 이런 인식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게, 언어가 다르긴 해도 어차피 한 나라같은 유럽 안에서 교환학생이라는게 학업적으로 이들에게 큰 자극이 되지는 않을것 같다. 오히려 스페인의 놀이 문화와 술문화, 거기에 에라스무스들의 끈끈한 커뮤니티가 더해져 많은 학생들이 '노느라 바쁘다'. 난 한국 학생이기때문에 '에라스무스(Erasmus)'가 아닌 '교환학생(Estudiante intercambio)'으로 분류된다. 제도적으로는 에라스무스와 같은 대우를 받지만,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나에겐 놀이 ..
종강까지 이제 두 주 남짓 남았다. 학기 초만 해도 '얼른 학기가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이었지만 막상 정말로 끝이 다가오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내일은 설계 수업이 있는 월요일이다. 내일 수업을 포함해 이제 마감까지 딱 두 번만 더 수업에 가면 바로 마감이다. 당장 내일 수업에 가져갈 도면을 그리기 위해 책상에 앉았지만 머리도 잘 안돌아가고 그래서 오토캐드 대신 블로그를 켰다. 이왕 이렇게 된거 마감도 가까워졌으니 한 학기동안의 내 작업을 되돌아볼 겸 수업 이야기를 좀 써보려 한다. 마드리드 대학교로 교환학생이 확정되고나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수업은 당연히 '건축 설계 스튜디오'다. 건축학과의 특성상 다른 어떤 수업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업인데다 또 스페인의 유명한 건축가들 앞에서 내 작업을..
사라고사에서의 마지막날 아침. 거리는 간밤에 내린 비로 촉촉히 젖어 있었다. 이날은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그냥 점심을 먹기 전까지 가볍게 못가본 여기저기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지난밤 따빠스 투어의 여파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 11시가 조금 넘어 호스텔을 나왔다. 18유로라는 거금(사실 여행자 숙소치고는 상당히 싼 편이다, 호스텔이니깐)을 줬지만 그만큼 푹 자고나오지 못한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아침식사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거리에 나오자 마자부터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일단은 바실리카가 있는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실리카에 아직 못가본 우린이를 따라 한바퀴 휙 둘러보고 나와서 곧바로 맞은편의 Foro로 들어갔다. 어젯밤 호세, 알베르또와 함께 광장을 걸으며 로마 유적인 원형광장을 보고나 F..
호스텔에서 나와 호세(José)를 만나러 가는 길. 둘 다 호세를 못 본지 한 달도 넘게 되어 한껏 들떠 있었다. 잠시 호세라는 친구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마드리드공과대학교(UPM)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친구인데 작년에 일 년간 한국의 우리학교로 교환학생을 와 있었던 아이다. 지금은 반대로 나랑 우린이가 마드리드 호세네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상황. 마드리드에서는 우리집이랑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어찌나 바쁜지 생각보다 자주 얼굴을 못보던 차에, 호세의 고향인 사라고사에서 함께 만날 기회가 온 셈이다. 호세랑 만나기로 한 장소는 구시가지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나와서 있는 '아라곤 광장(Plaza Aragon)'이다. 호스텔이 구시가지 북서쪽에 있는 까닭에 아까 걸었던 알폰소 1세 거리,..
사라고사 바이크폴로 대회에서 잠시 빠져나와 에스빠냐 광장(Plaza España)로 향했다. 어느덧 시간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무렵. 미리 사라고사에 도착해있던 우린이와 형윤이를 만나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도 한 장 없이 처음 와보는 도시에서 길을 찾아가려니 막상 조금 겁이 났다. 하지만 사라고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고 아담한 도시였다. 한 두어번 물어 방향을 잡자 금새 에스빠냐 광장에 도착했다. 에스빠냐 광장은 사라고사 구시가지 남쪽에서 가장 번화한 곳. 하지만 내가 찾아갔을땐 트램 공사때문에 거리가 상당히 복잡했다. Alberto와 Jose에게 나중에 들은 얘기를 종합해보면(정확히 어디까지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래 사라고사에 있던 트램을 확장, 보수 ..
스페인에 온 이후 처음으로 1박 이상 일정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정확히는 2박3일. 어느새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정이 들어버린 방을 떠나 여행을 떠나려니 정말 이제는 여기가 '내 집'이구나 하는게 새삼 느껴졌다. 원래 사라고사에 가게 된건 단순히 여행을 목적으로 한게 아니었다. 지난주 주말은 '사라고사 바이크 폴로팀' 주최로 열리는 '사라고사 바이크 폴로 대회'가 있는 날이었고, 우리 '마드리드 바이크 폴로팀'은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강도높은 트레이닝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에 날이 다가왔다. 키도 조그만 동양인 꼬마인 내가 멀리 스페인에서 '바이크 폴로'라는 인디씬에 몸을 담고 있는 지금의 모습도 아직 잘 실감이 안나지만, 팀원들과 함께 멀리 사라고사까지 가서 대회에 참가하..
매년 10월 3일은 '세계 주거의 날'이다. 아니, 그렇다고 한다. 사실 건축을 전공하고 있는 입장에서도 이런 날이 있었다는걸 잘 모르고 있었던게 사실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매년 이 맘때쯤 되면 '건축주간'이라는게 있었던 것도 같다. 특별한 뭔가가 있었던건 아니고 그저 설계수업이 한 주 쉬어가는 날 정도의 기억이랄까(어쩌면 뭔가가 있었는데 내가 무관심해서 몰랐던 것일수도 있다, 만약 그런거라면 반성해야 할 듯...). 어쨌거나 이 곳 스페인에서 만큼은 '세계 주거의 날'에 대한 존재감이 확실하다. 벌써 한달도 더 된 이야기지만 건축학도의 눈에는 상당히 인상깊었던 한 주 였기에 소개해볼까 한다. 건축주간(Semana de la Arquitectura) 한국에서의 어렴풋한 기억과 비슷하게 이 곳 마드리드에서..
각 나라, 혹은 도시 마다 한 번은 꼭 경험해봐야 할것같은 뭔가가 하나씩은 다 있다. 설령 별로 취미가 없는 분야라 할 지라도 일종의 통과 의례, 혹은 그 곳을 다녀왔다는 발도장 같은 거랄까. 예를 들면 런던 피카딜리의 오페라나 라스베가스의 카지노, 인도의 사막 투어, 아프리카의 사파리 같은 뭐 그런 것들. 그렇다면 스페인은? 바로 투우와 축구다. 투우는 이미 시즌을 놓쳐 버렸다. 5년전 유럽여행을 하면서도 바르셀로나 투우장이 공사중인 바람에 못보고 지나쳐야만 했는데 이번에도 또 못보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하지만 가격도 비쌀 뿐더러 보고온 사람들이 다들 별로라는 소리를 하길래 흥미도 뚝 떨어져 버렸다. 딱히 아쉬움은 없다. 나중에라도 혹시 스페인을 다시 오게 되면 그때 볼까나. 솔직히 말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