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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는 음식, 예쁜 선물,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욱 풍성했던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지나갔다. 원래 크리스마스 이후 우리의 계획은 베를린으로 올라가 그 곳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 하지만 막상 생각해보니 시간이 꽤 많이 남았더라. 어차피 멀리 가있는것 보다는 파울네 집에서 몇 일만 더 신세지는게 좋을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이제는 정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파울네 집 뒷마당에 있는 닭들이랑 인사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일기장에 끄적여 보기도 하지만 어쩐지 심심하다. 그래서 우린 스키장으로 향했다. 뒤셀도르프에서 가까운 곳에 '실내 스키장'이 하나 있다고 해서 전날 밤 잠깐 찾아봤었다. 나중에 들어서야 알았지만 우리나라에도(그것도 서울 근교에) 실내 스키장이 하나 있다고 하던데 이 때는 전혀 몰랐었다. 그래서인지 스키장에 오랜만에 가는것 자체도 신났지만 그보다는 '실내 스키장'을 구경한다는데에 더 들떠 있었던것 같다.

다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스키장으로 출발!


 파울이 운전을 하고 나랑 우린이, 그리고 동네 친구 라인하트까지 넷이서 차에 올랐다. 고속도로 진입 전부터 100km 넘게 확확 밟아주는 파울의 독일식(?) 운전스타일 덕분에 눈 깜짝할 사이에 스키장에 도착했다. 이 곳에선 실내 스키장을 '쉬 할레(Skihalle)'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하면 스키'장'이 아니라 스키'홀'이다.



이 거대한 구조물 안에 정녕 사람들이 스키를 타고있단 말입니까?!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실내 스키장, 쉬 할레(Skihalle)의 웅장한(!) 모습. 마치 우리나라의 골프 연습장처럼 뭔가 커다란 메스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 같은 생경한 풍경이다. 주변으로는 높은 나무 한 그루 없는 광활한 잔디밭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과연 저 커다란 철제 구조물 안에서 정말 사람들이 스키와 보드를 타고 있단 말인가?!


제법 그럴싸한 쉬 할레(Skihalle) 입구 홀 전경


 평범한 오피스 건물 입구처럼 생긴 문을 지나자마자 이렇게 생긴 메인 홀이 나온다. 집 가까이에 있는 곳임에도 오늘 처음와본다는 파울은 '너무 웃기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독일과 오스트리아 산악지대의 전형적인 스키장(산장)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아서란다. 그 말을 들으니 되려 파울이 말한 그런 '진짜' 스키장에 언젠가 한번 꼭 가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미 한국에도 도입되었을지 모르는 최신 장비


 파울과 라인하트는 스키를, 나와 우린이는 보드를 탄다. 사실 난 보드를 탄지 꽤 되었지만 장비를 가지고 다니며 탈 정도가 아니라 늘 대여소 신세를 졌었다. 게다가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와서 스키장에 오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었다. 장비를 빌리러 갔는데 나름 최신(?)장비가 있어서 놀랐다. 한국에서는 발치수를 숫자로 불러주면 직원이 부츠를 가져오고, 그러길 몇 번씩 반복했던것 같은데 여기선 조금 다르더라. 키재는 기계 같은데에 올라가면 신장, 몸무게, 발치수까지 한번에 딱 측정되어 프린트되어 나온다. 직원한테 이 티켓을 주고 레귤러인지 구피인지만 말해주면 간편하게 장비 대여 완료! 



안은 영락없는 진짜 스키장이다


 드디어 스키장 안으로 들어왔다. 실내 스키장이라 별로 안추울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와보니 진짜 산꼭대기 칼바람이 분다. 양쪽 벽과 천장만 안보면 진짜 슬로프 위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리얼하다. 설질(雪質) 관리가 힘든 야외에 비해서 오히려 슬로프 환경은 더욱 좋은 느낌이다. 눈도 상당히 쫀득쫀득(?)하고 보드도 잘 나가서 신났었다.





경사가 조금만 더 있었어도 완벽했을텐데!


 도심에서 겨우 20여분 거리에 이렇게 완벽하게 스키장을 재현해 놓을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다만 아쉬운건 슬로프가 단 한개 뿐이고 그마저도 초중급자 정도의 경사, 400m 정도 길이가 전부라 몇 번 타다보면 금새 질려버린다는 점이다. 그래도 나름 리프트도 있고 있을건 다 있다.

 여담 하나 하고 지나가자면, 어차피 내려올 길을 낑낑대고 리프트로 올라가 단 몇 분 만에 내려오고, 그걸 하루종일 반복하는 스포츠가 바로 스키와 보드다. 전에 한번 리프트위에서 '세상에 이보다 더 바보같은 스포츠가 어디 있을까'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선 무려 그 일을 엄청나게 커다란 철제 탱크 안에서 하고 있다! 그것도 수백여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슬로프 자체는 그리 짜릿한 수준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눈 위에서 보드를 타며 내내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거렸다. 어쨌든 나도 지금은 탱크안의 그 수많은 사람들중 한 명이니 말이다!



헬멧도 벗지 않은 채로 야거떼 한 잔! 캬~


 쉬 할레(Skihalle)가 재현해 놓은건 비단 슬로프 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한참 신나게 보드를 타다가 우린 슬로프 아랫쪽의 작은 찻집을 찾아 들어왔다. 파울이 말하기로는 이 역시 전형적인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타일이란다. 스키를 타다가 몸이 차가워지고 지치면 이런 산장같은 곳에서 따뜻한 음료를 마시고 그런다고 했다. 내부 인테리어마저 똑같이 해놨다는 이곳에서는 마치 영화 세트장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뜨거운 럼에 달달하게 설탕을 타서 마신다


 우리가 주문한 음료는 '야거떼(정확한 독일어 스펠링을 모르겠다, 기억나는 발음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로 쉽게 말해서 뜨겁게 뎁힌 럼(Rum)주다. 스키와 보드를 타는 중간에 알콜이 들어간 음료를 마신다는게 조금 아이러니 하지만 달달하니 몸이 녹는 느낌이 든다. 알프스 근처의 진짜 스키장에서야 이런 음료가 추위를 쫒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실내 스키장에서 야거떼를 마시는 것도 조금 웃기다. 뭐 어쨌거나 맛은 아주 좋았다.

오랜만에 스키장에 와서 아주 그냥 신났다 하하


 비록 그리 오래 타지는 않았지만 거의 3년여만에 다시 찾은 스키장이었다. 그것도 독일에서 외국 친구들과 함께. 학기 마치고 정신없이 크리스마스까지 휙 하고 지나갔는데 그제서야 비로소 방학을 맞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엔 비록 실내 스키장이었지만 다음엔 꼭 알프스에서 보드를 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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