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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밀렸던 포스팅을 조금씩이나마 다시 쓰고있다는 안도감도 잠시. 어째 죄다 먹는 얘기 뿐이냐는 클레임(?)이 있어서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뭐 앞으로도 먹는 얘기는 얼마든지 쓸 거리가 많으니...훗.
난 이곳 마드리드에 지금 교환학생으로 와있다. 교환학생이라는게 사실 타지에 나와있다는 사실만 빼면 여느 대학생과 다를바 없긴 하지만 나에겐 이번 학기가 조금 특별하다. 2년간 휴학후 복학하는 첫 학기이자 만 22년 인생 처음으로 혼자 밥해먹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시간들. 사실 한 달이 조금 지난 이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교환학생'에게 '학생'으로써의 할일 보다는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데에 더 큰 의의가 잇는것 같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안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교환학생을 다녀온 사람들은 무슨말인지 쉽게 이해가 갈듯 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학생회관 바로 앞에 위치한 지하철 역
마드리드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아직 학교가 개강 전인 8월이었지만 마르따를 따라서 구경삼아 학교에 가봤다. 어쨌거나 한국에서든 여기서든 난 이제 학생 신분이기에 앞으로 한 학기 내내 다니게 될 학교를 얼른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2년만에 복학하는 나에게 있어서 '학생 신분'이라는 말은 아직도 좀 어색하다.
집을 파는 이들, 구하는 이들의 간절한 눈길이 마주치는 이 곳!
지하철 6호선 ciudad universitaria역에서 마르따와 성호형을 만나기로 했다. 지하철역 이름부터 참 재미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동'정도 되려나. 우린 조금 일찍 도착해서 지하철역 주변을 둘러보면서 마르따를 기다렸다. 우리학교 근처 녹두 버스정거장에만 가도 방을 세놓는 전단지가 빼곡히 붙어있었던것 같은데 여기도 마찬가지. 이때만 해도 별 생각없이 넘겼지만 몇 일 뒤에 우리도 이 전단지를 꼼꼼히 살피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집구하는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하도록 하겠다.
왕복 6차선의 고속도로가 학교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세상에
우리나라 대학교들이 '캠퍼스'라는 울타리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과 달리 여긴 특별한 경계가 없이 도시 한켠에 공원과 뒤섞여 흩어져 있다. 심지어 마드리드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꽤 큰 고속도로인 A6가 학교 한가운데를 가로 지른다. 큰 육교가 있어서 캠퍼스 안을 돌아다니는덴 별 문제가 없지만 학교 안에서 차들이 쌩쌩 달리는걸 내려다보는건 조금 신기한 풍경이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건축과 건물에 입성
Ciudad Universitaria 역에서 육교를 건너면 곧바로 건축과 건물이 나온다. 여기가 바로 내가 앞으로 한학기동안 다니게 될(물론 벌써 10월이 된 지금시점에서는 이미 한달 넘게 다닌 셈이지만) 곳이다. 정식 명칭은 Escuela Técnica Superior de Arquitectura de Madrid(이하 ETSAM). 한국어로 번역하면 그냥 '건축대학'정도 되는 단과대다. 한국에도 대부분 학교들이 건축대학을 단과대로 따로 빼서 설립하는 추세인 반면, 우리학교는 유별나게 고집이 세서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곳 '공과대학 건축학과 건축학 전공'으로 살았다. 교환학기가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도 마찬가지겠지만. 어쨌거나 여기서는 이제 '건축대학'에 적을 두고 살게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조금 들떴었다.
잠시 관광온 기분으로 돌아가 기념사진 한 장
위에서 언급한건 단과대학의 이름이었고, 우리학교의 정식 명칭은 Universidad Politécnica de Madrid(이하 UPM). 한국어로 번역하면 '마드리드 공과대학교' 혹은 '마드리드 종합기술대학교'쯤 되겠다. 마드리드에는 크게 UPM, UCM(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교), UAM(마드리드 자치대학교), 그리고 CEU까지, 총 네 개의 대학교가 있다. 여기 오기 전부터 조금 궁금했던건 UPM과 UCM의 관계였다. 분명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캠퍼스가 한데 뒤섞여 있다. 건축과 건물에 오기위해 지하철을 내렸던 ciudad universitaria역 역시 엄밀히 말하면 꼼쁠루뗀세 대학교 안에 있는 셈이다.
UCM에는 인문, 사회, 상경 계열, 즉 문과계열 학과만 존재한다. UPM에는 반대로 공대, 자연대, 즉 이과계열 학과만 존재한다. 쉽게 말해서 종합대학교에서 이과계열만 따로 빠져서 우리나라의 카이스트나 포스텍 처럼 독자적인 대학교로 존재한다 생각하면 쉬울것 같다. 특별히 UCM과는 교류할 일이 없지만 어쨌거나 캠퍼스가 뒤섞여 있다보니 이 학교가 그 학교 같고... 아직도 조금은 헛갈린다.
아무리 방학이어도 그렇지...이렇게 사람이 없을 줄이야
UPM은 공대쪽에서는 단연 스페인 제일의 명문 대학교다. 특히 내가 다니게될 UPM의 건축학과(ETSAM)는 스페인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라고 한다. 좋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은 감사하지만... 스페인어 수업을 백 퍼센트 이해 못하는 상황에서 좋은건지 나쁜건지 잘 분간이 안간다는게 슬플 뿐이다.
9월 개강을 앞두고, 학교는 정말 사람 한명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덕분에 마음 편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지금이야 매일 같이 드나드는 곳이라 익숙하지만 이때만 해도 어찌나 낯설던지.
이번 학기 꼭 저걸 해보고 싶었는데...
중정으로 나가는 길에 지난학기 학생들이 만들어놓은 석조 수업 결과물도 보인다. taller de canteria라는 수업에서 하는 모양인데 당시만 해도 수강신청때 1순위로 점찍어 두고 있었던 매력적인 과목이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건축학과 에서 하는 석조 수업'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고 실습에다 조별 작업이다 보니 언어가 조금 부족해도 쉽게 따라갈 수 있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 과목은 수강할 수 없었다. 나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모든 교환학생이 다 같은 생각을 하고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학생이 많이 몰려 정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결국 학교 측에서는 본교 학생들에게만 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한다는 다분히 '치사한' 방침을 세워버렸다. 학교를 다니다 보면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교환학생(특히 유럽에서 온 ERASMUS들)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던건 당연지사! 그래도 안된다니... 아쉽지만 나 역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책 읽기 편하라고 가져다놓은 흔들의자의 센스!
여긴 본관 2층에 있는 도서관이다. 도서관 자체도 복층으로 되어있을 뿐더러 자료도 방대하다. 물론 아직까지 대출증만 만들어놓고 한권도 빌려보지는 못했지만. 도서관 한켠에는 그동안 학생들이 작업한 포트폴리오도 주욱 쌓여있다.
신관은 우리학교 302동을 조금 닮은것 같기도 하다
여긴 중정을 가운데 두고 본관과 붙어있는 신관이다. 본관 건물이 1920년대(!)에 지은 아주 오래된 건물인 반면 여긴 나름 신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모든 학부 수업은 본관에서 진행되지만 카페테리아, 서점, 화방 같은 편의시설들은 모두 신관에 들어와 있다.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교환학생 사무실(La oficina de intercambio)도 이곳 2층에 있다.
하루에 단 두시간... 무슨 이마트에서 세일 하는것도 아니고!
이날 교환학생 사무실에도 잠깐 들렀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개강하고 9월에 오라는 답변뿐. 그나저나 본관 과사무실과 교환학생 사무실에 붙어있는 시간표가 인상깊다. 과사무실은 오전10시~오후1시, 오후 5시~오후7시라는 우리나라 관점에서는 다소 기형적인 오픈 시간이 적혀있다. 물론 한달이 지난 지금보면 당연한 얘기다. 씨에스따(ciesta)시간에는 과사무실도 당연히 쉬어주는게 스페인 사람들이 사는 법! 그나저나 연두색 문에 붙어있는 교환학생 사무실의 오픈시간은 12시~2시, 단 두시간! 덕분에 매일 이 시간이면 사무실 앞이 사람들로 북적북적 난리도 아니다.
그렇게 학교와의 첫 만남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그렇게 짧은 학교 탐방이 모두 끝났다. 요새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니는 덕분에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는 거의 건널 일이 없다. 대신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자전거 도로를 매일같이 달리고 있다.
그나저나 요새 학교 풍경은 사진속 한산한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9월이 되자 어디선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매일같이 장사진을 이루더니 밤이 되도 사람들은 집에 갈 줄을 모른다. 게다가 이 모든 사람들이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경악스러울 정도! 참고로 한국에선 우리학교 기준으로 건축학전공 한 학번이 20~30명 정도 되었던 반면, UPM의 건축대학은 한 학년이 500명 정도... 이건 뭐 스케일 부터가 다르다. 특히나 이들의 모습을 잘 관찰할 수 있는 뷰포인트(?)는 본관과 신관 사이에 길쭉하게 나 있는 중정. 그게 어떤고 하니...
중정은 늘 이렇게 사교와 만남의 장으로 톡톡히 작동한다
점심 무렵에는 늘 이렇게 바닥에 자리잡고 앉아 간단한 샌드위치와 맥주(놀랍게도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생맥주를 판다! 캔이나 병이 아니라 기계에서 나오는 그 진짜 생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오늘 수업을 마치고 찍어온 채 두시간도 안된 따끈따끈한 사진!
밤 10시가 되어도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고...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들이다. 문화의 차이라는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그래도 밤새 이렇게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아침이면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의실에 와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동양인 얼굴을 한 내가 저들 사이에 껴서 함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한달이 지난 지금도 새삼 신기할 따름이다. 학교 소개는 여기서 마무리 하기로 하고. 다음 편에서는 길고 길었던 집구하기 여정에 대해 써볼 생각이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 만큼이나 교환학생에게 있어 먹고 자는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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