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여행지를 다시 찾는 것만큼 설레고, 두근거리는 일이 또 있을까.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달래던 추억이 서린 레스토랑, 폭우가 쏟아지던 날 비를 쫄딱 맞으며 종종 걸음으로 스쳐 지나갔던 거리, 에어컨이 고장난 방 안에서 밤새도록 폭염과 씨름했던 민박집. 여행을 마치고 우리에게 남는건, 꼭 사진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만은 아닌것 같다. 그렇게 가슴속 어딘가 차곡차곡 쌓여있던 기억들을 하나 둘 끄집어 내어 다시 음미하고 추억해볼 수 있는건, 두 번째 여행에서만이 누려볼 수 있는 마치 특권과도 같은것은 아닐까. 처음 소매물도를 찾았던건 2008년 여름. 대학생이 되고 첫 배낭여행지로 유럽을 다녀온 나는, 그당시 어딘가 모를 묘한 괴리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명색이 건축과 학생이 되어가지고는 아직 우리나라..
(전편에 이어) 그렇게 행주산성에서 광흥창역 까지 전철을 타고 돌아와, 한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겨우 펑크 수리를 받고나니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지쳐버렸다. 이제 자전거도 고쳐졌겠다 다시 타고 가야 할텐데, 오늘은 라이딩한 거리도 얼마 안되는데 왜 이렇게 힘든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다시 힘을 내서 페달을 밟아 보기로 했다. 이곳 서강대교 북단에서 부터 가양대교 북단 까지 달린 후에, 가양대교를 타고 한강을 넘어 집에갈 계획이었다. 북단 자전거도로는 평소에는 거의 달릴 일이 없기에 조금 설레는 마음은 있었지만 페달을 돌리는 발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한강 자전거 도로에 진입하니, 멀리 뉘엿뉘엿 지는 태양이 오렌지 빛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요 근래 몇일동안 하늘은 정말..
모처럼 아무 스케쥴 없는 주말이 돌아왔다. 평소 같았으면 리뷰 촬영이니 출사니 해서 정신없었을 테지만 추석 연휴가 바로 앞에 있어서 그런지 마음마저 홀가분한 그런 주말이었다. 지난주 까지만 해도 한 달 가까이 비가 내리던 서울의 하늘은 그야말로 우울 그 자체였다. 자전거를 타고 밖에 나간게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몸이 근질거리는건 당연지사! 모처럼 화창한 주말을 맞아 가벼운 마음으로 고등학교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얼마전에 과외를 잘려서 주말 스케쥴이 텅 비어버렸다는 한 녀석과, 야구 시즌이 거의 끝나 심심하다는 또 한 놈, 그리고 내가 만나니 그야말로 신선 놀음이 따로 없다. 간만에 여유로운 페달질 좀 해보자꾸나! 원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친구들이 사는 양화대교 북단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늦잠을..
울릉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건 지난 제주도 자전거 여행에서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마라도'에 갔었을 때였다. 마라도가 우리나라 국토 최남단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섬이어서였을까, 이때까지 우리나라 여행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해외부터 동경했던 내 자신을 다시 되돌아 보게 된 계기였달까. 그렇게 마라도에서 배를 타고 다시 나오며 문득 떠오른 곳이 바로 울릉도와 독도였다. 그저 동해에 떠 있는 작은 섬, 오징어와 호박엿이 유명한 곳... 막연히 알고 있었던 울릉도, 바로 그 섬에 가고 싶었다. 하늘이 도운걸까.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게 되었고, 마침내 지난 주말 그토록 꿈꾸던 국토의 동쪽 끝자락 울릉도에 다녀왔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고, 기상 사정때문에 독도는 볼 수 조차 없었..
JOBY사의 고릴라포드를 처음 보고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간단하면서도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우리가 어릴적에 한번쯤 가지고 놀아봤을법한 장난감처럼 생긴 이 물건은, 무려 3kg 까지 끄떡없이 버텨대는 미니 삼각대다. 본래 삼각대라는게 들고다니기 힘든데 반해 사용 빈도가 그리 많은 물건이 아니라 여러모로 부담되는게 사실이다. 그럴때가 바로 고릴라포드가 절실히 필요해지는 순간이다. 어디든 쉽게 가져갈 수 있고, 또 어디에든 쉽게 설치 할 수 있는 덕분에 사진에 구도에도 자연스럽게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준다. 제주에 가져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녀석이다. 일단 하나 사두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그런 삼각대랄까.
드디어 제주도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어제는 게스트하우스 중에서는 가장 인기가 좋은 편에 속하는 '소낭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었는데, 신나게 먹고 마시며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사진 한 장 남아있질 않더라. 결국 하는둥 마는둥 아침식사를 끝내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마지막 라이딩에 나섰다. 월정리에서 제주 공항 까지는 대략 30km 정도. 벌써 라이딩 5일차 마지막 날인 만큼 큰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어제 오르막에서 무리를 하는 바람에 오른쪽 무릎이 좀 아프긴 했지만, 오늘 역시 투명하리만치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니 금새 또 신이 난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1시 20분으로 예약해 놓았다. 10시 조금 넘어서 월정리를 출발했으니 어쩌면 시간이 촉박할 지도..
맨 처음 스트라이다를 끌고 제주를 오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에만 해도, 이 조그만 자전거를 타고 오름에 가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일주도로에서는 조금만 오르막이 나와도 이내 한숨부터 쉬던 우리가 별안간 오름에 가보겠노라 결심을 하게 된 건, 다 '생태숙소 퐁낭'의 마당비님 덕분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도 그 분께 너무나 감사드린다. 어쩌면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를 제주의 진짜 아름다움을 소개시켜 주셨기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 부류로 분류된다. 하나는 아무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그야말로 방랑을 즐기는 타입. 또 하나는 철저히 조사하고 공부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 까지도 여행의 시작으로 여기는 타입. 나는 그 중 두 번째에 가까운 사람이다. 떠나기 전에 미리 계획하고..
여행지의 천국, 게스트 하우스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늘 즐거운 이야기가 있고, 웃음이 넘치는 그 곳. 하지만 어디까지나 여행자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하룻(혹은 여러날) 동안의 즐거움'일 뿐 다음날이면 또 다른 즐거움에 취해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여행하는 내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야 하루 즐겁게 놀다 가면 그만인 사람들이니, 아무리 정을 붙이고, 살갑게 굴어보려 해도 어디까지나 '객'에 불과한건 아닐까. 어쩌면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고, 소심한 의심이었을지 모른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동안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늘 하면서 달렸다. 하지만 '생태숙소 퐁낭'은 그런 나의 의심을 깨끗하게 지워준 곳이었다. 시설이 좋고, 편안해서라기 보다는...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