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아직 학생인 나에게 라이카는 오래도록 꿈의 바디였다. 오르지 못할 나무였기에 애시당초 바라볼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그런 카메라들이었다. 가끔 사진 잡지에 관련 기사가 나오면 괜히 더 집중해서 읽어보고, 혹 인터넷에서 라이카로 찍은 사진을 보게되면 한번 더 눈길을 주던 그런 존재 정도. 그런데 d-lux라는 디지털 라인업이 생기면서 라이카는 조금더 친숙한 카메라가 되었다. 다만 그때부터 라이카 곁에는 논란과 논쟁이 항상 세트처럼 함께 다니더라. 좋건 싫건 간에 일단 아는게 없으면 할 말도 없는게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 라이카의 디지털 바디를 꼭 써보고 싶었다. 그리고 살짝 까치발을 디디면 손끝이 닿을랑 말랑한 즈음에 d-lux5가 있었다. 오늘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건 라이카 ..
질나쁜 홍차 찌꺼기를 달여 설탕과 우유를 넣어 마시는 짜이. 인도 사람들은 아침에 짜이 한잔을 마시지 않으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인도 사람들에게 짜이는 습관이자 생활이다. 게스트하우스 손님들에게 짜이 끓여주기를 참 좋아하는 템플 뷰 게스트하우스의 주인 아저씨 덕분에 오르차에 머무는 내내 셀 수 없이 많은 짜이를 마셨다. 그리고 오늘은 그 마지막 한 잔을 마시는 날. 오르차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이자 간즈 빌리지 아이들과도 마지막 수업이다. 짜이 한 잔에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모든 맛이 들어있다. 오르차에서의 시간들 역시 한 잔의 짜이처럼 기쁨, 슬픔, 흥 여유... 여행하며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한데 뒤섞인 기분이랄까. 그래서인지 마지막 수업을 하러 간즈 빌리지로 향..
오르차에서의 둘째날 아침은 조금 특별했다. 오늘 아침도 문을 열고 나가면 어김없이 '짜이?' 하고 외치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똑똑똑... 나가기도 전에 먼저 문을 먼저 두드리는 주인장. 무슨 일일까? 내가 짜이를 좋아하는걸 알고 일부러 가져다 준걸까?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하며 문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짜이 한잔을 들고 환하게 웃는 주인장이 떡하니 서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나를 찾아온 손님이 있다고 했다. 누굴까? 이역만리 인도땅 한가운데서 낯선 여행자를 찾아온 손님이라니... 그 손님의 이름은 '가네쉬'. 인도에서 가장 흔한 남자 이름을 가진 눈이 크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반갑게 한국어로 인사를 먼저 건네는 가네쉬. 인상은 ..
인도 우타르 프레타쉬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 오르차.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작은 기차역이 마을 어귀에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객은 근처 잔시에서 릭샤를 타고 들어와야 할 만큼 작고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심심치 않게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 하지만 아직까지도 일반적인 배낭여행 코스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매력이 있는 마을이다. 처음 오르차에 가기로 마음먹은건 델리나 우데뿌르, 아그라 같은 대도시에 질려서였다. 사람들은 득실거리고 릭샤 한번 타려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흥정을 해야하는 탓에 지칠대로 지쳐있었던것 같다. 반면 제썰메르나 푸쉬카르같은 작은 도시들의 여유로움은 같은 길을 몇 번씩 다시 걸어도 좋을만..
점점 떠나는 배시간이 가까워진다. 홍합밥으로 배를 두둑히 채우고 나와 간단하게 오징어나 이것저것 쇼핑을 좀 했다. 여행하면서 물건을 잘 사는 편은 아지만 울릉도에 온 이상 그래도 오징어 정도는 사주어야지! 남은 시간 동안 도동항에서 멀리 가기는 좀 그렇고... 다시 한번 해안 산책로를 걸어보기로 했다. 대신 첫날 걸었던 행남 산책로가 아닌 그 반대쪽 길이다. 계속 걸으면 저동항까지 이어지는 행남 산책로와 달리 반대편 길은 지도에도 제대로 나와있질 않았다. 어디로 이어지는 길일까...? 막 짐을 챙기고 출발하려는데 눈앞에 딱 들어온게 바로 이 '울릉도 더덕 요구르트'였다. 써있기로는 '배멀미'와 '숙취'에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는데 마침 목도 마르고 해서 한잔씩 마시고 출발하기로 했다. 요구르트에 더덕..
울릉도 여행의 마지막 날. 지난 이틀간 그토록 비가내리더니만 오늘 아침엔 도동항 뒷쪽으로 무지개가 걸렸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무지개를 보는건 처음이다. 이것도 울릉도의 유별난 날씨가 만들어낸 자연의 신비일까나.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기분이 좋다. 하늘도 유난히 더 파랗게 느껴진다. 예정대로라면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독도로 향하는 배에 탔어야 한다. 오래전부터 독도를 꼭 한번 두 발로 밟아보고싶은 소망이 있었기에 오늘이 더욱 기다려졌었다. 하지만... 결국 독도로 향하는 배는 뜨지 못했다. 먼 바다의 날씨라는게 육지에서 보는거랑은 많이 다른 모양이다. 여기서 보기엔 하늘도 개었고 비도 그친데다가 바람까지 잠잠하니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독도 경비대 쪽에서는 출항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삼대가 덕을 쌓..
지난밤 리조트에서는 밤새 즐거운 술자리가 이어졌다. 바다내음이 물씬 풍겨오는 울릉도의 밤바람을 안주삼아 술한잔에 이야기 한마디씩 목을타고 넘어가니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닌가 싶었다. 역시 섬 여행의 묘미는 선선한 바닷바람이 부는 새벽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느즈막히 잠을 청했다. 울릉도 대아리조트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뭐니뭐니해도 아침식사로 나온 미역국! 평소엔 잘 먹지도 않는 미역국이지만 어찌나 맛있던지 두 번을 더 리필해서 먹었다. 덕분에 숙취도 깔끔하게 사라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를 나설 수 있었다. 밤새 그토록 기도했건만 아침나절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파란 하늘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숙소 앞으로 찾아온 관광 버스를 타고 태하향목으로 출발했다. 울릉도 여행은 크게 렌트카를 타..
시간이 참 빠르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내가 게으른건지 벌써 울릉도 여행도 어언 일 년 전 일이 되어버렸다. 한창 정신없고 바쁘던 그 해 여름, 나는 울릉도 도동항으로 떠나는 배 위에서 마냥 들뜨고 신이 났었다. 마침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하며 '마라도'에 다녀온 감동이 채 가시기 전이었기도 하고, '나는 똑딱이 포토그래퍼다'라는 책의 저자로 이미 유명한 '정민러브'님과 다른 많은 분들이 '사진'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안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더욱 기대가 컸던것 같다. 어쨌거나 많이 늦은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여정을 정리해보려 한다. 올해 가을, 마드리드로 교환학생을 떠나기전에 그동안 밀린 여행기를 모두 쓰고 떠나는게 목표! 채 끝마치지 못한 유럽과 인도 여행기는 잠시 미뤄두고 가까운 울릉도부터 떠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