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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제주도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어제는 게스트하우스 중에서는 가장 인기가 좋은 편에 속하는 '소낭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었는데, 신나게 먹고 마시며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사진 한 장 남아있질 않더라. 결국 하는둥 마는둥 아침식사를 끝내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마지막 라이딩에 나섰다.

 월정리에서 제주 공항 까지는 대략 30km 정도. 벌써 라이딩 5일차 마지막 날인 만큼 큰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어제 오르막에서 무리를 하는 바람에 오른쪽 무릎이 좀 아프긴 했지만, 오늘 역시 투명하리만치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니 금새 또 신이 난다.

오늘은 계속 이 길을 따라 공항까지 내달리면 된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1시 20분으로 예약해 놓았다. 10시 조금 넘어서 월정리를 출발했으니 어쩌면 시간이 촉박할 지도 모르겠다. 쉬지 않고 1132번 일주 도로를 타고 공항까지 달리면 도착하는건 큰 문제 없겠지만, 오늘은 친구와 했던 작은 약속을 지켜야 하는 날이다. 그 약속은 바로 함덕 해수욕장에 들러서 물놀이를 하는 것!
 
 5일 내내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니, 아름다운 해변이나 해수욕장을 보고도 늘 그냥 지나쳐야만 했었다. 올 여름도 물놀이 한번 제대로 못한 터라 제주에서 해수욕을 꼭 한번 하고 싶었는데, 일정이 걱정되어 마지막날인 오늘로 해수욕을 미뤄두었던 것이다. 물 맑기로 유명한 김녕 해수욕장도 가보고는 싶지만, 오늘은 함덕 서우봉해변만 들리기로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제주의 하늘을 두고 떠나야 한다니...


 함덕 서우봉해변까지 달리는 내내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일주도로에는 사람도 차도 거의 없어서 많이 한산한 모습이었다. 몇 시간 뒤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풍경 하나 하나에 계속 눈길이 간다. 여행 내내 그렇게 날씨운이 좋았었는데, 오늘도 날씨 한번 참 좋다. 손에 잡힐 듯 낮게 떠있는 뭉게구름을 보고 있자니 점점 더 제주를 떠나기가 싫어진다. 언젠가 꼭 다시 자전거를 타고 와야지...


함덕 서우봉해변 입구에 도착!


 금새 함덕 서우봉해변에 도착했다. 일단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좀 식힌 후 곧바로 물에 뛰어들었다. 따로 수영복을 준비해오질 못했기에 옷은 입고 있던 자전거 바지 그대로다. 처음엔 조금 어색했는데 막상 물에 들어오니 꼭 전신 수영복을 입은 것 같아 보여서 조금 웃음이 났다. 이곳의 물은 바닥이 훤히 보일정도로 투명했다. 제주 해변에서 해수욕을 하다니... 소원 풀었다!


시원한 해수욕도 잠시,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다


 그렇게 한 20여분을 물에서 놀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더 오래 머물고 싶어도 슬슬 비행기 시간이 압박해온다. 옷은 다 젖었어도 어차피 자전거를 타는 동안 자연스레 마를테니 크게 문제될건 없었다. 그런데 물에서 나와보니 아침 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또 슬슬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뭐라도 먹을까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앗, 저것은!!


말도많고 탈도 많은 빅허브버거! 뭐 그럭저럭 먹을만 하다


 바로 그 유명한(?) 빅허브버거 가게가 보였다. 사진 속 커다란 햄버거 하나의 가격은 무려 만 오천원! 숙소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제주도에서 절대 먹어서는 안될 음식 1순위로 꼽는 빅허브버거지만, 인간의 호기심이라는게 원래 하지말라면 더 하고싶어지는 법이다. 게다가 자전거로 제주를 여행하는 내내 수 없이 많은 체인점을 본 기억이 난다. 대체 무슨 음식이길래 저렇게 파는곳이 많고, 또 어떤 맛이길래 먹지 말라는걸까.

 그래서 당당히 안에 들어가 햄버거 하나를 시켰다. 워낙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생각보다는 꽤 먹을만 했다. 고기 패티가 다소 인스턴트 느낌이 나기는 하지만, 빵이 맛있어서 그럭저럭 특색있는 맛이었다. 크기가 워낙 커서 둘이 나누어 먹으면 양도 딱 맞는다. 그렇게 만 오천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호기심을 해결!


 햄버거를 먹는데 시간을 너무 지체해서 였을까. 다시 1132번 일주도로로 나가는 길, 시계를 보니 어째 비행기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 과연 남은 시간동안 제주 공항까지 달릴 수 있을까. 슬슬 걱정이 되기는 하는데...

아아아, 제주 시내에 들어오기도 전에 비행기는 이미 서울로 떠나버렸다...어쩌나


 결국 시간은 비행기를 타기로 했던 1시 20분이 되었고, 우리는 아직 제주 시내도 들어가지 못한 채 길 위에서 비행기를 떠나 보내야만 했다. 설마 했었는데 정말 비행기를 놓쳐버렸다. 허탈했다. 공항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대기 좌석 예약은 직접 공항에 와서만 할 수 있단다. 이왕 이렇게 된거 그냥 느긋하게 용두암까지 달리기로 했다. 늦게라도 공항에 가면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날은 8월 첫주 주말. 그야말로 성수기중의 성수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용두암 하이킹에 도착했다, 주인을 기다리는 다른 자전거들과 함께 찰칵!


 그렇게 온통 놓쳐버린 비행기 생각을 하며 정신없이 제주 시내를 가로질러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제주 연안 부두 근처에 위치한 '용두함 하이킹'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이곳에서 자전거를 빌려 출발한건 아니었지만, 기내 수화물로 자전거를 부칠 때 사용했던 박스를 이곳에 맡겨둘 수가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시 포장을 마친 후에는 공항까지 차를 얻어 타고 편하게 갈 수 있다. 공항에서 출발해서 공항에서 끝나야 뭔가 깔끔한 마무리 같기는 해도, 어쨌든 이렇게 250km에 달하는 제주도 한바퀴 일주를 무사히 마쳤다. 뿌듯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돌아갈 비행기편을 알 수가 없는 상황인지라 왠지 떨떠름한 기분이다.

수고한 스트라이다를 쓰다듬어주며...


 어쨌거나 5일동안 펑크 한번 안나고 잘 달려준 내 스트라이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가지런히 접어 다시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비행기를 놓쳤다는 말에, 주인 아저씨께서는 걱정부터 먼저 하신다. 오늘이 주말인데다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8월 성수기라서 다시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거란다. 정 안되면 배편이라도 알아보고, 그래도 없으면 여기서 몇일 아르바이트 하면서 표가 구해지길 기다려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하셨다.
 

그렇게 여행을 마무리 하고 있는데, 새로 하이킹을 떠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또 찾아왔다


 그렇게 잠깐 한 숨 돌리며 가게 앞에 걸터 앉아있는데, 지금 막 제주에 도착한듯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빌리러 찾아왔다. 자전거 안전 수칙과 이용 방법을 듣는 모습을 얼핏 보니, 아직 하얀 피부와 다소 긴장한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5일동안 열심히 제주를 달렸던 것 처럼, 이네들도 그렇게 추억을 또 만들어 가겠지 하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자전거로 제주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시작과 끝이 만나는 이곳에서 내 여행이 정말로 끝이 났다는게 다시 한번 실감이 난다. 그렇게 막 하이킹을 떠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배웅해주고 우리도 공항으로 출발했다.

무려 6시간의 기다림 끝에, 김포공항에 다시 도착했다


 1시 20분에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던 우리는, 결국 오랜 기다림 끝에 저녁 9시 30분 마지막 비행기를 겨우 얻어 타고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주 공항에 앉아서 언제 날지 모르는 좌석을 기다리던 6시간이, 4박 5일보다 더 길게 느껴졌었다. 이제는 가지런히 접혀있는 자전거를 공항 버스에 태우고, 그렇게 12시가 다 되어서야 무사히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결코 부족하지는 않았던 그런 여행. 4박 5일 동안 참 많은 풍경을 마주치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오른쪽 무릎은 계속 욱신거리지만, 까맣게 타버린 발등을 볼 때 마다 웃으며 제주를 다시 떠올리곤 한다. 내 몸에 남아있는 여행의 흔적들이 오래 남는 만큼, 가슴 속에 남겨진 여운은 그보다 더 길고 아련하기만 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제주를 어떻게 여행하면 좋을까 물어본다면 꼭 자전거를 타라고 말해주고 싶다. 몸이 힘들고 다리가 아팠던 만큼, 남들보다 더 많은걸 보고 느낄 수 있는 자전거 여행. 그 느림의 미학을 아는 사람들이야 말로 제주의 진짜 멋과 운치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아닐까.(끝)

*그동안 제주도 자전거 여행기, [자전거로 제주를 달리다]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코스 리포트
(월정리-함덕서우봉해변-제주시-용두암하이킹-제주공항)

 자전거로 제주를 여행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마지막 날에 거치게 되는 코스다. 하지만 절대로 방심은 금물이다. 일주도로만 따라가면 되는 코스라 길이 어렵지는 않아도, 너무 여유를 부리다가는 우리처럼 비행기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제주시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도로도 넓어지고 교통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안전운전에 신경을 써야 하겠다.




오늘의 라이딩 리포트
2010년 8월 7일 / 5일차

주행거리 : 29.17 km
주행시간 : 1시간 39분
최고속력 : 39.7 km/h
평균속력 : 17.5 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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