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섬진강 종주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내 낡은 자전거 종주수첩의 마지막 페이지는 벌써 4년도 전에 배알도 수변공원에서 찍은 도장 이후 내내 덮혀 있었다. 돌아오는 현충일 날 자전거를 타자고 먼저 청해온 것 Y였다. 그는 내 오랜 친구이자 벌써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자전거로 함께 달린 여행 단짝이다. 서울 근교는 이제 질렸고, 차를 가지고 산악 코스를 찾아가기엔 살짝 부담이라 고민하던 찰나 잊고있던 오천 자전거길이 떠올랐다. 그날로 우린 고속버스 티켓을 예매했다. 출발 하기도 전부터 엉덩이가 들썩거려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오천 자전거길은 충청북도 괴산에서 출발하여 다섯 개의 작은 천을 따라 증평, 청주를 거쳐 세종시에서 끝이 나는 약 100여 km의 길이다. 정식 종주루트라기 보다는 국토종주나 4..
가평 연인산은 매년 5월에 열리는 MTB 대회로 유명한 곳이다. 올해 역시 열릴 줄로 굳게 믿고 연초부터 참가신청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돌연 개최가 취소되었다. 사유는 가평군의 예산 부족이라는데 참가를 기다리던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소식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지난 주말에 가평을 찾았다. 불과 한 시간 정도면 서울에서 경춘선 혹은 iTX 청춘을 타고 도착할 수 있다. 수도 서울의 대단한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산들을 대중교통만으로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원래 계획은 연인산 대회 본코스(43km)를 타는 것이었지만 나의 부족한 준비성과 정비실력의 부족으로 당일 오전시간을 상당히 까먹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어 변경이 불가피했다. 가평역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 5시가 가까운..
가민(Garmin)은 GPS 기반의 사이클링 컴퓨터 시장을 대표하는 미국계 다국적 기업이다. 자전거에 부착하여 속도, 거리, 심박수, 파워, 케이던스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기록할 수 있는 디바이스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외 GPS 기반의 제품들을 주력으로 한다. 물론 별도의 장치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가벼운 취미 수준에서는 스트라바(Strava)나 엔도몬도(Endomondo) 같은 스마트폰 앱으로도 대체가 가능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자전거 취미를 붙이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눈이 가는 제품이 바로 가민이다. 가히 자전거 덕후들에겐 필수품이라고 할 정도지만 가격은 결코 만만치 않은데, 아래로는 20만원 정도의 컴팩트형 제품부터 위로는 100만원에 육박하는 제품까지 다양하게 출시된다. 내가 가민 엣지(Ga..
따끈한 탕속에 누워 큰 기지개로 아침을 맞았다. 전날의 피로는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평소 같으면 느즈막히 일어나 출발했을 우리지만 오늘 만큼은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기로 마음이 통했다. 내가 지난 1년간 Y와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며 전수해준 몇 가지가 있는데 온천욕도 그중 한가지다. 발을 담가봤을때 몇 초 못견딜 정도로 뜨거운 온도여야만 근육이 풀리는 효과가 있다. 확실히 수안보 이후 Y는 온천욕 맹신자가 되었다. 친구는 이렇게 닮아가는 것 같다. 아침부터 열심히 씻었더니 배가 고프다. 숙소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기웃거려보는데 식당이 눈에 띄질 않는다. 분명 어젯밤만 해도 보였던것 같은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근처 시장까지 한바퀴 슥 둘러보았지만 김밥집 하나 보이질 않는다. 그냥 짐을 다 챙겨나와..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자락 옥녀봉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한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을 굽이치며 지나 지리산을 휘감아돌아 마침내 광양만에 이르러 남해바다와 한 몸이 된다. 한국에는 섬진강을 노래하는 시인들이 참 많다. 산이 많아 동서남북으로 흐르는 강줄기도 참 많은 우리나라지만 섬진강 만큼은 어딘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한 달 전부터 휴가를 미리 써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꼭 4월의 아름다운 어느날에 섬진강을 내달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주말, 하늘이 내려준 축복과도 같은 날씨 속에 꼭 꿈을 꾸는 듯한 이틀간의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 최고의 자전거길은 무조건 섬진강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섬진강을 달린다는건 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선물이다. 섬진..
금강의 둘째 날 하늘 역시 맑았다. 아침나절엔 바람도 제법 선선하게 불어오는 것이 자전거 타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우리가 하룻밤을 묵었던 부여에서 금강 하굿둑이 있는 군산까지는 아직도 70km 정도 남아있다. 하지만 바람도 없고 길도 좋아 큰 무리 없이 예정대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젯밤 늦게까지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운 터라 아침은 가볍게 먹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커피를 샀다. 학생 때는 커피를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부터 확실히 늘었다. 평소엔 아주 연하게 내린 원두커피를 여러 번 푸짐하게 먹는 걸 좋아하지만 길 위에서만큼은 달달하고 걸쭉한 게 끌린다. 부소산성 근처에 숙소에서부터 남쪽으로 부여 시내를 가로질러 곧바로 금강에 합류할 계획이었다. 차도 ..
퇴근길에 외투를 벗어 손에 들었다. 정말 봄이 오려나 보다. 일부러 몇 정거장 전에 버스를 내려 밤공기를 쐬며 걸었다. 간만에 여유가 생기니 차곡차곡 밀려있는 여행기들부터 떠올랐다. 하지만 아직도 교환학생 시절의 유럽 여행기는 리스본의 차디찬 겨울에 머물러 있다. 마침 그 무렵 아팠던 터라 즐거운 기억도 딱히 없었다. 써지지도 않는 글 때문에 스트레스받기엔 아까운 밤이다. 작년 추석, 그러니깐 9월 초 날씨가 딱 지금 같았다. 기분 좋을 만큼 시원한 바람과 적당한 햇빛. 자전거를 타기엔 더없이 완벽한 조건이다. 물론 그 좋은 계절을 그냥 흘려보낼 리 없는 우리였다. Y와 난 추석 명절을 지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반대로 경부선 하행 기차에 올랐다. 연휴를 이용해 1박 2일로 짧게 다녀오는 라..
전에 국토종주 여행기를 올리던 당시 학교 선배가 링크하며 붙여준 한 줄의 코멘트가 생각난다. '여행기도 여행기지만 가끔 등장하는 맛집투어가 일품'이라고 하셨던 것 같다. 정확히 보셨다. 어쩌면 우리가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목적은 전국의 산해진미를 맛보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면에서 1편의 제목 '담양 죽통밥에서 나주 곰탕까지'는 이 여행의 정체성을 참으로 잘 드러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질세라 둘째 날 여행의 제목은 '비는 쫄딱 맞았지만 목포에서 산낙지'다. 가방을 잃어버려 광주 터미널까지 다녀온 일이나, 나주를 코앞에 두고 펑크 때문에 고생한 일, 밥 먹을 데가 없어 펑크난 자전거로 나주 시내를 빙빙 돌았던 기억. 이 모든 고생스런 여정에도 쏟아지는 비를 맞아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