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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길에 외투를 벗어 손에 들었다. 정말 봄이 오려나 보다. 일부러 몇 정거장 전에 버스를 내려 밤공기를 쐬며 걸었다. 

 간만에 여유가 생기니 차곡차곡 밀려있는 여행기들부터 떠올랐다. 하지만 아직도 교환학생 시절의 유럽 여행기는 리스본의 차디찬 겨울에 머물러 있다. 마침 그 무렵 아팠던 터라 즐거운 기억도 딱히 없었다. 써지지도 않는 글 때문에 스트레스받기엔 아까운 밤이다.


하늘을 날 수 있을것만 같았던 날씨.


 작년 추석, 그러니깐 9월 초 날씨가 딱 지금 같았다. 기분 좋을 만큼 시원한 바람과 적당한 햇빛. 자전거를 타기엔 더없이 완벽한 조건이다. 물론 그 좋은 계절을 그냥 흘려보낼 리 없는 우리였다. Y와 난 추석 명절을 지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반대로 경부선 하행 기차에 올랐다. 연휴를 이용해 1박 2일로 짧게 다녀오는 라이딩은 그야말로 꿀맛 같은 일탈이다. 게다가 작년 추석엔 대체 휴일이라는 좋은 제도가 생겨서 한결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었다.



자전거 여행과 기차 여행은 저마다의 로망이 있다. 물론 함께라면 즐거움은 두 배!


 아침 여덟 시에 영등포역을 출발하는 신탄진행 기차에 올랐다. 설 연휴 마지막 날 하행선 기차는 제법 한산했다. 아침을 못 먹고 서둘러 집을 나온 지라 좌석 대신 카페열차를 찾았다. 무궁화호 카페 열차에는 사진처럼 한 쪽에 자전거 거치대가 마련되어 있다. 별도의 표를 판매하긴 하지만 이날은 자전거를 가지고 탄 승객이 우리뿐이었던 모양이다. 흔들리지 않게 꽉 조여 매고는 편안하게 앉아 창밖을 보며 아침의 만찬을 즐겼다. 다들 서울로 돌아올 생각에 머리가 아파질 즈음, 우린 유유히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앞이나 뒤로 보고 앉아야 하는 좌석보다는 옆으로 걸터앉아 편안하게 창밖을 감상할 수 있는 카페 열차가 좋았다. 식사는 금방 끝났지만 우린 계속해서 수다 삼매경에 빠져 신탄진까지 달렸다.


출발하기 전부터 이미 기분 좋은(배가 부른) 모습의 Y.


 플랫폼에 기차가 멈춰 섰다. 대전역 한 정거장 전인 이곳에서 부터 우리의 금강 종주 여정이 시작된다. 약 130km의 자전거길은 대청댐에서부터 공주, 부여를 거쳐 군산까지 이어진다. 금강 최상류인 대청댐 근처에는 마을이나 기차역이 없으므로 가장 가까운 신탄진 역에서부터 왕복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대청댐을 찍고 돌아와야 한다. 얼마 전에 포스팅했던 영산강 종주에서도 같은 이유로 담양댐을 따로 다녀왔었다.





금강 종주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와 그 위에 신나있는 나)


 역에서 한 두어 블록만 지나면 곧바로 금강 자전거길 진입이다. 지난 국토종주 때 충주댐 업힐에서 고생한 뒤로는 '댐'이라 이름 붙은 곳은 일단 의심부터 하고 넘어가는 우리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대청댐 가는 길은 길도 좋고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영산강 종주의 악몽 같은 기억에 비하면 금강은 비단길이다. 비단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페달을 밟으니 어느새 대청댐 인증센터에 도착해 있었다. 아, 마지막에 살짝 업힐이 있긴 했으나 종주 극 초반인 관계로 별 자극은 없었다. 탁 트인 대청호를 바라보며 심호흡 한 번 크게 가다듬고 다시 출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금강 종주 시작이다.




길이 좋으니 달리며 셀카 찍기도 좋고.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종주를 마치고 되돌아보니 금강은 전반적으로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을 정도로 노면 상태가 좋았다. 적절히 공도도 섞여 있고, 자전거 전용도로의 아스콘 포장도 밀도 있게 되어 있는 편이라 페달 밟는 맛이 난다. 사실 그 당시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으나, 이 모든 것은 영산강 종주 이후에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잠시 셀카놀이를 즐기다가 이후 합강공원에 이르기까지 쭉 즐겁게 달렸다.



잠시 휴식. Y의 자전거는 킥스탠드가 없어 매번 드러눕는게 어째 피곤해 보인다.


 종주 인증수첩에 의하면 아직 인증센터가 나오려면 멀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합강공원 인증센터라고 불쑥 나타났다. 금강 종주 자전거길 목록에는 없는 곳이다. 이상하다 싶어 수첩 페이지를 뒤져보니 이곳은 오천 자전거길의 종점이다. 충청북도 괴산에서부터 시작되는 오천 자전거길은 이곳 합강공원에서 끝이 나며 금강 자전거길로 합류한다. 그러고 보니 작년 국토종주를 하며 이미 오천 자전거길의 시점인 행촌교차로 인증센터를 지난 기억이 있다. 셋째 날 이화령 고갯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의 바로 그곳이다. 다시 국토종주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아무튼, 언젠가 달리게 될 오천 자전거길 페이지에 도장을 살포시 찍어두고, 다시 출발.




[COM] 플레이어1은(는) 미지의 도시 세종시를 발견했다.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Y/N)


 시골 길을 한참 달리던 중 갑자기 빨갛고 단단한 아스콘으로 포장이 바뀌었다. 심지어 선까지 선명하게 그어진 것이 누가 봐도 공사한 지 얼마 안 된 새 길이다. 알고 보니 세종시 경계에 진입했기 때문이었다. 아아, 세종특별자치시. 모든 사람에게 이제는 너무나 친숙한 이름이지만 정작 가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없는 그 곳. 바로 그 신비의(?) 땅 세종시에 드디어 발을, 아니 바퀴를 디디는 순간이다.

 본인은 건축을 전공한 탓에 학부 시절 도시 관련 수업시간에 종종 세종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물론 긍정적 담론보다는 비평과 질타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언젠가 한 번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저 멀리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질서정연한 신도시의 스카이라인에 전율을 느끼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반면 Y는 세종시에 과연 점심 먹을 식당이 있을까를 더 걱정하는 듯했다. 물론 그 걱정은 세종시의 건축적 담론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다. 적어도 그 당시 '배고픈' 우리에게 있어서는!



들어는 봤는가 세종시 먹거리 특산물 파스타와 피자!


 허허벌판에 새로 만들어진 신도시에는 맛있는 식당보다는 부동산과 편의점이 훨씬 많았다. 그나마 개중 주거인구가 제법 있다는 '첫마을'이었지만 추석 연휴 문 연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냥 식당 수가 절대적으로 적었던 게 문제였다. 

 오랜 고민과 탐색 끝에, 조금 생뚱맞지만 배달전문 피자집에 들어가 앉았다. 사실 피자나 파스타처럼 밀가루로 만든 음식들은 몸속에서 에너지로 전환되는 속도가 빨라 행동식으로 상당한 효과가 있다. 심지어 세계 최고의 자전거 대회라는 뚜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에도 경기중에 파스타나 피자를 요구하는 선수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기까지는 매번 맛집을 잘 찾아다니던 우리가 왜 세종시 프랜차이즈 피자집에 앉아있는가에 대한 소심한 항변이었다. 덧붙이자면 문 연 집이 이곳 밖에 없었다. 근처 세종시 주민들도 밥집을 찾는 게 힘들었던 모양인지 식사하는 내내 전화 주문이 정신없이 쏟아져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역시 우리가 세종시 맛집을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찡긋)



세종시는 신기루 였을까, 다시 고요해진 길 위.


 뱃속을 가득 채웠던 피자의 포만감이 사라지듯, 세종시는 어느새 신기루처럼 길 뒤로 사라져버렸다. 아주 잠깐 세종시와 스쳐 지나며 막 들었던 생각은 마치 사막 한가운데 홀로 빛나는 라스베이거스 처럼 세종시는 외로운 섬 같다는 느낌. 금세 주변 풍경은 다시 한산해지고 여느 종주 때와 마찬가지로 길 위에는 나와 Y  둘뿐이다. 사악- 사악- 하고 바퀴가 아스팔트를 헤치고 나가는 소리 외에는 귀가 멍해질 정도로 고요했다. 물론 그 적막이 싫지만은 않았다.





눈 앞에서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들.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공주보를 통과한 이후에도 이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풍경이 계속된다. 자전거길은 공주 시내를 잠시 통과하며 공산성 앞을 지난다. 난 전에 와본 적이 있지만, Y는 처음이라고 했다. 자전거 세우기도 마땅찮고 해서 입구에서 기념사진 한 장을 찍어주는 것으로 관광을 대신했다. 그러고 보면 자전거 여행을 하며 지방 소도시들을 구석구석 많이 다녀보게 된다. 공산성 앞을 마치 내 집 앞처럼 자전거 타고 달려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느 자전거 종주 길과 마찬가지로 시내를 빠져나오면 먹거리를 살 곳이 마땅찮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챙겨온 양갱과 초콜릿으로 허기를 달래가며 계속 풍경 속을 달렸다.



백제보 인증센터에서 조금 이르지만 오늘의 라이딩을 마쳤다.


 백제보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무슨 공룡처럼 뿔 여럿 달린 전망 탑도 하나 서 있다. 둘러보니 주위에 볼 거라곤 황량한 벌판뿐인데 뭣 하러 만들어 놨을까 싶다. 엠비의 '업적'을 따라 달리다 보면 저런 개연성 없는 건물들이 하도 많아서 오히려 의연해지게 된다.

 인증센터 근처에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걸 보니 부여 시내까지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아직 일몰까지는 시간도 있고 체력도 남아있지만, 오늘은 여기서 조금 일찍 라이딩을 마치기로 했다. 오늘 부여를 지나 더 달리면 잠잘 곳이 영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저녁 식사 하게 생겼다.



낡은 여관 혹은 모텔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나무 난간. 너무나 정겹다.


 시내에 들어오니 부소산성 근처였다. 마침 근처에 숙박업소가 제법 있어서 돌아보던 중에 '힐튼장'이라는 이름에 시선이 꽂혔다. 개인적으로 여행하며(꼭 자전거가 아니더라도) 이런 지방 소도시의 오래된 여관이나 모텔에서 자는 경험을 즐기는 편이다. 흔히 'OO장'이라고 이름 붙은 바로 그런 곳인데, 보통은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더 늙은 건물들인 경우가 많다. 물론 가격이 저렴한 것도 큰 장점이지만 그보다는 이렇게 오래된 건물에서 하룻밤을 잔다는 일 자체가 즐겁지 않은가! 시답잖은 일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외로 도시에서는 이 정도 오래된 건물에 직접 들어가거나, 가까이서 느껴보기 쉽지 않다. 가끔 보이는 오래된 건물들도 막상 들어가 보면 인테리어 때문에 건물의 연륜을 느끼기엔 역부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축, 인테리어, 가구 무엇 하나 재미없는 것이 없었다.


 값을 치르고 방에 들어가 보니 이건 그야말로 보물창고가 따로 없다. 삐걱대는 목창호와 돌출창에서부터 문손잡이, 등기구, 세면기기 무엇 하나 새 물건이 없다. 하지만 어찌나 깨끗하게 관리되었는지 말 그대로 근대 건축 문화재 안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받을 정도였다. 유명한 건축물을 답사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역사가 되어있는 생활 건축물을 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잠시 여행자 신분을 잊고 구석구석 사진을 찍으며 감탄하는 나를 보며 Y는 어리둥절했다.


눈 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돌출창 안쪽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고개를 들어 창을 살펴보던 중 저 멀리 범상치 않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싸한 기분이 들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김수근 선생의 국립부여박물관인 것만 같았다. 에이, 그래도 내가 책에서 보고 기억할 정도의 건축물이 설마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을까. 그래도 이상해서 지도 앱을 켜고 구 국립부여박물관을 검색하니 다름 아닌 눈앞에 바로 그곳을 정확히 가르키는 게 아닌가! 세상에.

 하필 이 멀리 부여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것도, 또 하필 '힐튼장'이라는 모텔에 짐을 푼 것도, 또또 하필 국립부여박물관이 한눈에 보이는 그 방을 배정받은 것도. 이 모든 것은 건축장이 일상에서 탈피하고자 자전거 여행을 하던 나에게 '본분을 잊지 말라'는 하늘의 뜻은 설마 아니겠지? 이건 말 그대로 내가 건축을 찾아온 게 아니라 건축이 나를 찾아 노크하는 셈이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나즈막한 언덕위에 자리잡은 구 국립부여박물관의 모습.


 건축장이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간단히 샤워만 마친 우리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아까 공산성에서도 관광을 못 해 못내 아쉬웠던 Y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나보다 더 신이 난 모양이다. 얼른 가보자며 재촉했다. 

 마침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 질 녘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모텔에서부터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아 우리는 박물관 앞에 도착했다.



왜색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바로 그 건물, 구 국립부여박물관이다.


 구 국립부여박물관은 한국 근대건축의 거장 김수근 선생이 1967년 설계했다. 말 그대로 이 건물은 등장과 함께 언론을 뜨겁게 달구며 소위 '왜색논란'의 불을 지폈다. 길게 바닥까지 타고 내려오는 처마의 모양새나 각도, 일본 신사의 도리이를 연상 시키는 박공의 형태 등 전반적으로 일본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이유였다. 본인은 부인했으나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김수근은 왜색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그 앞에 딱 서는 순간 제일 먼저 '아'하는 탄식이 나왔다. 사실 왜색논란에 대해서는 거의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 눈엔 그보다는 이 건물이 60년대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신선했다. 부소산 자락에 살포시 걸터앉은 이 독특한 모양이 건물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어떤 신선한 충격이었을까. 어쩌면 당시 일반 사람들은 언론이 떠들어대는 왜색논란 탓에 창작으로써의 순수한 건축을 향유하고 즐길 기회를 박탈당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물론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의 운명이라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외부와는 또 다른 느낌의 실내. 동그란 천창이 인상 깊다.


 국립박물관의 기능은 새 건물로 모두 이관되었지만, 현재까지도 이곳은 전통문화 체험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운영시간이 조금 남아 운 좋게 실내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체와 그 사이를 메우는 세장한 나무 서까래들의 독특한 조화가 먼저 눈에 띈다. 이 때문에 밖에서 상상하는 공간감과는 전혀 다른 반전이 있었다. 외관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지붕 구조 사이사이 볼록 솟아있던 천창이었다. 실내 공간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여러가지 상상을 했었는데 뜻밖에 정말 솔직한 천창이었다.

 

 건물을 돌아보는 내내 김수근과 한국 근대건축, 그리고 부여박물관과 왜색논란에 이르기까지 아는 대로 Y에게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Y는 건축과는 거리가 먼 전공을 하고 있는 친구지만 내 얘기를 제법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종종 여행하며 건축에 대해 미천한 지식을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다 보면 '난 비전공자야'하고 귀를 닫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건축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공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은 자연스레 건축과 도시 안에서 일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건축은 전공자들만의 담론이 아닌 모든 사람의 일상이어야 한다. 나의 일상에 대해 소소한 수다를 떨듯, 건축도 그렇게 이야기될 때 비로소 본질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여행의 동반자는 '건축가'라고.



회는 언제 먹어도 맛있기에, 너로 정했다.


 부여박물관 이야기하다 잠시 다른 길로 빠져버렸다. 다시 자연스럽게 여행기로 돌아와보자. 이제 라이딩을 마쳤으니 당연히 술과 고기가 있어야 할 순서. 추석 연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었으니 상큼하게 회와 소주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아직 바다를 보려면 하루 치 더 달려야 하지만 마음이 급해 회를 택했다. 부여에 와서 린 소주도 처음 마셔봤다. 자전거 이야기와 건축 이야기를 번갈아 해가며 슬슬 취기를 더해간다.



물론 양꼬치와 꿔바로우도 언제 먹어도 맛있다.


 아쉬울세라 2차로 다시 양꼬치 집을 찾아 들어갔다. 처음 가보는 도시에서 여기저기 우린 참 잘도 찾아서 먹는다. 앞서 먹은 회는 '저녁 식사'였으니 이제 술자리를 가질 차례다. 맛있는 안주를 앞에 두니 늦게까지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내일의 라이딩이 남아있기에 맥주 한 잔씩을 더 하고 숙소로 돌아가야만 했다. 역시 우리의 자전거 여행기에는 맛깔나는 음식이 등장해야 우리답다. 내일은 군산에서는 또 무엇을 먹을지 열띤 토론(?)을 벌이다가 둘 다 스르르 잠들어버렸다. 행복한 밤이다. (계속)



금강 종주 1일차 (대청댐→부여)

주행거리: 104.5km

주행시간: 5시간 31분

평균속력: 18.9km/h

최고속력: 47.2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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