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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를 마치고, 군산 앞바다를 배경으로 세레모니!


 금강의 둘째 날 하늘 역시 맑았다. 아침나절엔 바람도 제법 선선하게 불어오는 것이 자전거 타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우리가 하룻밤을 묵었던 부여에서 금강 하굿둑이 있는 군산까지는 아직도 70km 정도 남아있다. 하지만 바람도 없고 길도 좋아 큰 무리 없이 예정대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소한 아침식사, 대신 보급을 넉넉히 챙겼다.


 어젯밤 늦게까지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운 터라 아침은 가볍게 먹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커피를 샀다. 학생 때는 커피를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부터 확실히 늘었다. 평소엔 아주 연하게 내린 원두커피를 여러 번 푸짐하게 먹는 걸 좋아하지만 길 위에서만큼은 달달하고 걸쭉한 게 끌린다. 


한적한 부여 시내의 모습.


 부소산성 근처에 숙소에서부터 남쪽으로 부여 시내를 가로질러 곧바로 금강에 합류할 계획이었다. 차도 한쪽으로 달리고 있는데 오른편으로 '신동엽 문학관'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어쩐지 너무 낯이 익은 이름이라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 회사에서 설계한 건물이었다. 입사 전 완공작이지만 데이터베이스에서 폴더 이름을 여러 번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아쉽게도 내부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시간도 여유가 있으니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시인 신동엽의 생가와 연계하여 몇 년 전에 조성된 기념관이다. 제법 볼거리가 있다고 들었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아홉 시도 안된 이른 시각이었다. 한바퀴 주위를 휙 둘러보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자세한 건 회사에 돌아가서 도면으로 확인해야겠다. Y도 내심 아쉬운 모양이었다.





난 이런 풍경의 자전거길을 제일 좋아한다.


 부여 시내에서 금강으로 빠지자마자 이렇게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강을 따라 넓게 펼쳐진 무성한 꽃밭 사이로 좁고 긴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아직 새벽이슬을 잔뜩 머금은 공기에서는 풋풋한 풀잎 맛이 난다. 풀밭을 자세히 살펴보니 희끄무레한 솜사탕 같은 게 비슷한 간격으로 빼곡하게 놓여있다. 알고 보니 거미줄이 이슬을 머금어서 하얗게 보이는 것이었다. 어찌나 그 수가 많고, 또 간격이 일정한지 조금 소름 돋을 정도였다. 그것만 빼고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풍경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활주로를 달리는 기분이다.


 열 시가 가까워지자 금방 햇살이 강해지기 시작한다. 선크림을 꼼꼼하게 바르고 나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노면 상태가 아스콘과 시멘트를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확실히 자전거 여행은 날씨가 9할이다. 아스콘 보다 울퉁불퉁해서 싫어했던 시멘트 바닥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활주로를 이륙하는 비행기의 덜컹거림처럼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 좋다.



큼지막한 표지판 아래서 찍어두는 기념사진.


 간이 화장실이 보여 잠시 자전거를 멈췄는데 바로 앞에 '금강' 표지판이 크게 서 있다. 서비스 차원에서 만들어준 것 같으니 기분 좋게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다. 보통은 내가 현재 달리고 있는 강의 이름은 표지판으로 잘 못 봤던 것 같다. 대신 자전거길과 마주치게 되는 본 강의 지류(보통은 지방하천이라고 쓰여있다) 이름들을 자주 보게 된다. 




제법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익산 성당포구 인증센터.


 익산 성당포구 인증센터로 가는 길에는 코스모스가 줄지어 피어있었다. 슬슬 다른 여행자들도 마주치기 시작한다.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한 아저씨는 오늘 아침에 군산에서 출발해 당일치기로 금강을 종주하는 중이라고 했다. 나도 큰 바퀴 달린 자전거를 타면 하루 만에 갈 수 있을까? 아직까진 작은 바퀴로만 달려봤기에 잘 모르겠다. 길 위에서 우리 아버지뻘 되는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날때면 늘 존경스러운 마음이다. 나도 그 나이가 되었을 때 여전히 달리고 있을까. 역시 잘은 모르겠다. 어느덧 군산까지 도장 한 개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갑작스런 체력저하에는 양갱보다 더 달콤한 초코바를!


 성당포구를 지나자마자 짧은 깔딱고개를 만났다. 강둑을 따라 속도를 좀 내고 달려왔더니 언덕에서 금세 지쳐버렸다. 열도 식힐 겸 잠시 그늘에 앉아서 초코바로 보급했다.





어지간해선 사진찍을 때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지만... 이 꽃은 지나칠 수 없었다.


 하늘도, 강물도, 태양도, 구름도, 코스모스도... 모든 것이 다 아름다웠던 순간. 한 장에 사진 속에 모든 것을 담을 수가 없어 아쉬웠던 순간이다. 대신 이 길에서는 동영상을 찍으며 달렸다. 한강에서는 사람이 많아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이곳엔 길 위에 우리뿐이다. 여유롭게 영상으로 우리의 모습과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 간직했다.





도장 여섯 개, 완주했다.


 어쩌면 조금 싱거울 정도로 무사히 완주했다. 국토종주부터 금강, 영산강 종주까지 하면서 한가지 느낀 점이, 내가 도장 찍는데 소질이 좀 있다는 사실이다. 인증센터에서 우연히, 혹은 인터넷을 통해 보는 다른 여행자들의 수첩보다는 상대적으로 내 수첩이 깔끔한 편이긴 한다. Y도 인정했다. 한가지 팁을 적자면, 대부분 도장은 많이 닳아서 표면이 둥그렇기 때문에 손힘만으로는 고르게 찍기 어렵다. 대신 도장을 꼭 잡은 상태에서 체중을 살짝 실어 둥그럽게 돌리듯 찍으면 거의 완벽하게 찍힌다. 그래도 이왕 모으는 거 예쁘게 모아 간직하면 기분이 훨씬 좋다.



풀밭위에서 난데없는 힘자랑을...


 금강 하굿둑 인증센터에서 공식적인 금강 종주 길은 끝이 났다. 하지만 아직 군산 시내까지는 달릴 거리가 제법 남아있다. 인증센터에서 만난 한 부부 여행자와 동행하여 시내까지 길잡이 역할을 했었는데 어느새 뒤를 돌아보니 사라져 버렸다. 잠깐이긴 해도 동행이었으니 살짝 인사라도 하고 갔으면 좋았으련만. 못내 서운했다.


복성루도 닫혀있고...


군산세관도 못들어가고...


철길은 좀 시시하네...


 군산 시내에 도착해서도 버스 시간까지 꽤 여유가 있어 조금 돌아다녔다. 자전거가 있으니 전에 버스로 다닐 때 보다 한결 수월했다. 애초 계획은 군산의 명물 복성루에서 짬뽕으로 점심을 먹는 것이었지만 애써 찾아보니 문이 닫혀있었다. 명절 연휴 내내 쉬는 모양이었다. 유명한 식당답게 쉴 때는 확 쉬는 모양이다. 대신 군산세관과 철길마을을 찾아 가봤다. 군산여행이 처음인 Y를 위해 가이드를 자처했지만 사실 나 역시 지난 여행에서는 비응도를 다녀오느라 못 봤던 것들이 많았다. 음, 철길마을은 생각보다 많이 별로였다. 오히려 서울 구로구의 항동 철길이 더 운치 있고 좋다.


어느새 군산항까지 왔다.


 복성루 짬뽕 계획이 꼬여버린 우리는 계속해서 자전거를 타고 군산 시내를 헤맸다. 이왕 이렇게 된거 군산항까지 가서 전어를 먹어보자는 생각에 정말 항구까지 와버렸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가게들은 연휴라 문을 닫은 상황. 수산물 시장 같은 게 하나 있었지만,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어 포기. 이대로 군산여행의 식도락은 포기하는 것인가.




울며 겨자먹기로 들어온 횟집, 매운탕을 먹었다.


 결국,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아쉬운 대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무 횟집을 찾아 들어갔다. 음식도 너무 평범하고, 가격도 서울에 비해 별다른 메리트가 없었지만 문 연 곳이 이곳뿐이었다. 명절에 여행하면 다 좋은데 밥집을 선택하기가 어려운 게 참 단점이다. 



뭔가 아쉽지만 어쨌든 다시 서울로!


 식사를 마치고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복성루보다 더 유명하다는 이성당도 지났다. 이미 건물을 한바퀴 두를 정도로 줄을 서 있는 상태라 엄두도 안 냈지만, 지난 군산 여행의 기억으로는 맛도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았다. 참고로 얼마 전 잠실 롯데월드 매표소 옆에도 이성당이 있는 걸 봤다. 이미 서울에도 분점이 있는 마당에 군산에서 줄 서는데 시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 자전거를 싣는 것으로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났다. 이번 금강 종주는 확실히 라이딩의 본질에 더욱 충실했던 여행이었다. 도시에서보다는 길 위에서 더욱 즐겁고 상쾌한 기분이 많았다. 언젠가 다시 달려도 좋을 그런 길이었다.(끝)



금강 자전거 종주 2일차(부여→군산)

주행거리: 74.3km

주행시간: 3시간 50분

평균속력: 19.3km/h

최고속력: 40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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