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차에서의 둘째날 아침은 조금 특별했다. 오늘 아침도 문을 열고 나가면 어김없이 '짜이?' 하고 외치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똑똑똑... 나가기도 전에 먼저 문을 먼저 두드리는 주인장. 무슨 일일까? 내가 짜이를 좋아하는걸 알고 일부러 가져다 준걸까?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하며 문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짜이 한잔을 들고 환하게 웃는 주인장이 떡하니 서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나를 찾아온 손님이 있다고 했다. 누굴까? 이역만리 인도땅 한가운데서 낯선 여행자를 찾아온 손님이라니... 그 손님의 이름은 '가네쉬'. 인도에서 가장 흔한 남자 이름을 가진 눈이 크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반갑게 한국어로 인사를 먼저 건네는 가네쉬. 인상은 ..
영어공부좀 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아마도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아닐까. 어느덧 대학 졸업반이 가까워진 나역시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같이 집에서 듣는 말이니 말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한국에 있을때는 누구나 다 그러려니 하는통에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회화만 구사하는 나를 보고 영어가 혹시 한국의 공용어냐고 물어오는 인도인이 있을 정도였으니. 어느새 나역시도 한국의 주입식 영어교육에 물들어 그저 하라는대로만 했던건 아니었을지. 인도의 아이들은 어떨까. 한국의 아이들이 학창시절 내내, 혹은 평생동안 영어와 씨름하며 골머리를 앓지만 영어가 공용어인 인도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마치 한글깨우치듯 영어를 배우는 걸까. 카주라호에서 우연찮게..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자한이 애비인 뭄타즈 마할을 위해 1631년 착공을 시작하여 22년간의 길고 긴 공사 끝에 완공된 어마어마한 규모의 무덤이다. 타지마할 뒷편으로 유유히 흐르는 야무나 강의 풍경과 정원의 정방형 호수에 비친 타지마할의 반영은 웅장함을 넘어서 신비롭기까지 하다. 지금은 하얀색 대리석으로 만든 대칭형 건물이 하나뿐이지만, 처음 계획할 당시에는 타지마할 반대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만든 똑같은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 하지만 검은 타지마할은 결국 지어지지 못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반만 완성된 계획이지만 지금도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걸 보면, 만약 검은 타지마할까지 함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정도까지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타지마할에..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로컬버스나 디럭스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아 좋은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관광지가 아닌 조그만 마을들을 지나며 창밖으로 만나는 풍경이 참 좋았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거리가 500km를 넘어가는게 예사인 인도에서는 이정표에 100km만 남았다고 나와도 거의 다왔네 하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오곤 했다. 우데뿌르에서 푸쉬카르로 가는 길도 참 멀고 험하더라.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디럭스버스보다 한 등급 더 낮은 로컬버스에 몸을 실었다. 우리나라 시골 읍내풍경을 연상케 하는 작은 마을들을 수도없이 지났던 것 같다. 이런 작은 마을을 지날때면 어김없이 버스가 한번씩 쉬어간다. 길 한쪾에서 기사아저씨께서 피곤하셨는지 짜이로 목을 축이며 이리저..
찌는 듯한 더위에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만 간다. 물 한병 사먹을까 주위를 둘러봐도 변변한 가게조차 없는 시골길을 벌써 반나절이 넘게 달렸다. 의자시트 등받이 스펀지가 다 삮아서는 뒷자리 아저씨의 딱딱한 무릎이 내 등에 그대로 닿는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우데뿌르에 도착했다. 지나가는 릭샤 한대를 무작정 잡고 미리 알아두었던 게스트하우스로 가자고 말했다. 깨끗한 침대는 바라지도 않으니 그저 몸을 조금 누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주인아저씨가 방을 안내해주며 창문을 활짝 열어주시는데 창밖으로 반짝거리는 야경이 너무 예뻤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오케이를 외치고 침대해 벌러덩 드러누웠다. 잠시 누워서 생각해보니 방값을 조금 비싸게 낸 것 같기도 하다. 뭐 그래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