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동인천까지 지하철로는 1시간 남짓, 자동차를 타고는 빠르면 30분이 고작이다. 이제는 9호선이 생겨 서울 한복판에서도 질주하는 급행열차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지만, 어두컴컴한 지하가 아닌 땅 위로 달리는동인천 급행을 타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꼭 기차가 아니어도 덜컹거리는 리듬에 몸을 맡기고 차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꼭 기차여행이라도 하고 있는 마냥 신이나곤 했다. 서울에서는 접하기 힘든 제대로 된 중국 요리들이나 군것질을 맛보려는 목적으로 인천 차이나타운까지 먼 걸음을 하는 사람들도 많단다. 사실, 휴가를 나온 친한 동생녀석이 1박2일로 어디든 여행좀 다녀오자는 말에 서울서 제일 가까운 인천을 무작정 택했던 것 같다. 차이나타운은 그만큼 서울과는 뭔가 다른게 있을거라고 생각했던것 같기도 하고..
지독한 고독, 혼자만의 사색에 잠겨보는 시간들이야 말로 긴긴 배낭여행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은 서울땅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다보면 가만히 앉아 고민과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설령 시간이 지나 그때의 그 고민이 쓸데없는 잡생각이었다는 후회가 들더라도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 잠시 눈을 붙이고 나면 어느새 나는 지구 반대편에 와있는, 그런 세상이다. 두 발로 찬찬히 한발씩 내 딛으며 여행을 하다보면 이따금씩 내가 어디에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하는데, 그럴때면 난 허리를 숙여 내 발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지금 두 발로 밟고 서 있는 바로 그곳의 좌표를 기억하는 일종의 혼자만의 의식인 셈이다. 와장창! 치토..
옥인동, 통인동, 효자동, 필운동, 체부동.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듯한 익숙한 동네 이름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경복궁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산자락을 따라 걸으며 마주치는 '서촌'의 지명들이다. '북촌'은 들어봤어도 '서촌'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 하지만 어쩌면 북촌보다 더 생생한, '진짜 한옥'들이 이곳 서촌에는 가득하다. 얼마 전, 종로구에서는 걷기좋은 고샅길 20선을 발표했다. 그중 마지막 스무번째 고샅길이 이곳 서촌이다. 통의동 백송 및 창의궁터 → 효자로 → 효자·옥인동 한옥길 → 박노수 가옥 → 옥인 시민아파트 청계천 발원지 → 이중섭 가옥 → 필운동 골목길 → 배화학교 및 필운대 터로 이어지는 코스는 2010년까지 정비사업 및 기타 조성사업을 통해서 관광코스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평범..
2년전 유럽을 여행할때만 해도 그렇게 한국음식이 그립거나 먹고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에서는 비싼 돈을 주고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는 고급 요리들을 매일같이 먹을 수 있었으니 굳이 더 비싼 돈을 줘가면서 까지 한국음식을 찾아 헤멜 필요가 없었던게 아닐까. 하지만 인도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코 끝이 찡해질 정도의 강한 향신료와 어딜가도 하나같이 짜고, 느끼하고, 맵고... 너무 강렬한 인도음식들만으로 여행내내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무리가 아니었을까. 처음 인도에 도착했을때는 매일같이 서민들이 자주 찾는 진짜 인도식 식당에 들어가 이것저것 먹어보면서 마냥 신났었던것 같다. 하지만 나역시 영락없는 한국사람인 모양이다. 일주일정도 지나고 나니 어느샌가 한국음식, 김치, 라면 ..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할때면 퍽퍽해도 맛있는 삶은 달걀이 먹고싶어지고, 자동차 드라이브를 즐길 때면 심심한 입을 달래주는 사탕과 껌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여행자의 긴긴 외로움과 지루함을 달래주는 군것질! 혼자일땐 심심하지 않아 즐겁고 여럿이 함께면 나누어 먹는 재미가 있어서 더욱 좋다. 배낭여행을 처음 해보는 새내기 여행자 일지라도 인도에서 한달정도 다니고 나면 이동거리가 4000km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나라도 크고 볼것도 많아 인도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기차나 버스 위에서 보내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길거리에서 파는 군것질에 먼저 눈이가고 만다.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마냥 어느샌가 쪼르르 달려가서 지갑의 동전을 탈탈 털고있는 내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을정도니....
서울 성곽아래 성북동 골목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본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즈음하여 하얀 담장너머로 붉은 이파리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길상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길상사는 과거에 대원각이라는 유명한 요정이었던 곳으로 소위 있는자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라고 한다. 한 때 요정이었던 이곳은 백석 시인의 여자로 알려진 길상화라는 여인이 아무 조건없이 법정스님에게 기부하면서 지금의 길상사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찰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서린 곳이라 그런지 분위기도 사뭇 다른 듯하다. 산사나 다른 사찰들이 자연속에 어우러지는 꾸밈없는 여인의 얼굴이라면 길상사는 단정하게 잘 가꾸어진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자연을 축소하여 정원안으로 끌어들이는 일본식 정원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도 살짝 스치는데 색다른 ..
가끔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정처없이 거리를 걷고 싶어지는 날도 있었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며 타지에서의 여정에 몸이 지쳐갈때면, 하루정도는 빗소리를 즐기며 방에서 여유를 즐기고 싶어지기도 한다. 비가 억수로 오던 푸쉬카르에서의 어느날 이야기다.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릴 즈음,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푸쉬카르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짐을 내리려는 찰나, 기다렸다는 듯이 장대비가 쏟아진다. 우산을 꺼낼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온몸은 녹초가 되어있었고, 지도를 보니 이곳에서 숙소는 그리 멀지 않았다. 잠깐 비를 맞는것쯤은 괜찮겠지 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옆에서 릭샤꾼들이 나를 약올린다. 너희가 찾는 숙소는 여기서 2km는 더 가야해~ 내 릭샤를 타는게 어때. 지금 안타면 후회할거야..
대한민국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초등학교때부터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듯이 전 국토의 8할이 산지일 뿐 아니라, 멀리 찾아보지 않아도 서울 근교에 이름난 산들이 많다. 관악산, 도봉산, 북한산, 인왕산... 이름만 들어도 그 위용이 느껴지는 참으로 명산들이다. 이른 아침 두물머리에 들렀다가 양평해장국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바로 근처의 운길산에 올랐다. 중앙선을 타면 '운길산역'이 있어 서울에서도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지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아마도 내가 산을 그리 자주 찾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산 중턱에 걸쳐있는 수종사까지만 다녀온다는 생각으로 가볍에 발걸음을 옮겨본다. 산을 오르며 장난도 치고 사진도 찍어가며 너무 여유를 부렸나. 아무리 걸어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