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모름지기 준비할 때가 훨씬 설레이고 즐겁다. 비행기 표를 알아보고, 서점을 들락거리며 여러가지 정보를 모으고, 눈이 빨개지도록 밤새 인터넷 카페를 전전하기도 하고... 여행지에 도착한 후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의 그 짜릿한 설렘. 나는 오히려 공항 밖으로 나와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면서 부터는 그렇게 특별하다고 생각해본적이 그리 많았던것 같지 않다. 그곳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일테고 나는 그 새로운 일상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손님이기에.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 가만히 앉아있기 힘들정도로 떨리고 설렌다. 그렇다. 나는 또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배낭여행을 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겐 정보가 생명이다. 물론 대중적인 나라들의 경우엔 잘 나온 가이드북이 꽤 많긴 하지만..
인도 버스들은 유달리 클락션 소리가 우렁차다. 아니, 우렁차다는 단어로는 그 소리의 반도 채 표현하지 못한다. 필요 이상으로 시끄럽고,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는 야간버스의 클락션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는건 기본이요, 다음날 아침 새 여행지에 도착했을때 반쯤 나가버린 정신은 옵션이다. 앞에서 차가 오거나 사람이 나타날때만 울려주면 될것이지 불빛하나 없는 시골길을 밤새 달리며 왜그렇게 클락션을 울려대는 걸까 처음에는 짜증도 났었다. 하지만 여행을 계속하다보니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걸 알았다. 특히 카주라호에서 직접 릭샤를 하룻동안 몰아본 이후에는 더더욱. 인도에서 여행하며 쉽게 접할 수 있는 장거리 여행용 버스는 이렇게 생겼다. 운전하는 사람 말고도 한명 또는 두명이 함께 타게 되는데 이 사람들의 역할이 ..
그림을 그릴줄만 알았지 받을줄은 몰랐다. 인도를 스케치북 가득 담아 그리고 오겠다며 큰소리 뻥뻥 쳤지만, 애초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페이지가 텅텅 빈 스케치북을 들고 여행을 마쳐야 했다. 비록 스케치북은 다 채우지 못했지만 그림을 그리며 만든 추억들이 나머지 빈 페이지를 가득 채워주는 것 같아서 그래도 허전하진 않다. 그림이라는게 한장만 그린다 해도 30분이 넘게 꼼짝않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에피소드도 많이 생기고 현지인들과 오랜 대화를 나누는 일도 많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그렇게 대화로 마음이 통했던 친구들에게 작은 그림이라도 한장씩 그려서 선물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이 안들었는지, 어휴. 어쩌면 난 욕심만 가득한 이기적인 여행자는 ..
영어공부좀 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아마도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아닐까. 어느덧 대학 졸업반이 가까워진 나역시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같이 집에서 듣는 말이니 말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한국에 있을때는 누구나 다 그러려니 하는통에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회화만 구사하는 나를 보고 영어가 혹시 한국의 공용어냐고 물어오는 인도인이 있을 정도였으니. 어느새 나역시도 한국의 주입식 영어교육에 물들어 그저 하라는대로만 했던건 아니었을지. 인도의 아이들은 어떨까. 한국의 아이들이 학창시절 내내, 혹은 평생동안 영어와 씨름하며 골머리를 앓지만 영어가 공용어인 인도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마치 한글깨우치듯 영어를 배우는 걸까. 카주라호에서 우연찮게..
서울에서 동인천까지 지하철로는 1시간 남짓, 자동차를 타고는 빠르면 30분이 고작이다. 이제는 9호선이 생겨 서울 한복판에서도 질주하는 급행열차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지만, 어두컴컴한 지하가 아닌 땅 위로 달리는동인천 급행을 타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꼭 기차가 아니어도 덜컹거리는 리듬에 몸을 맡기고 차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꼭 기차여행이라도 하고 있는 마냥 신이나곤 했다. 서울에서는 접하기 힘든 제대로 된 중국 요리들이나 군것질을 맛보려는 목적으로 인천 차이나타운까지 먼 걸음을 하는 사람들도 많단다. 사실, 휴가를 나온 친한 동생녀석이 1박2일로 어디든 여행좀 다녀오자는 말에 서울서 제일 가까운 인천을 무작정 택했던 것 같다. 차이나타운은 그만큼 서울과는 뭔가 다른게 있을거라고 생각했던것 같기도 하고..
지독한 고독, 혼자만의 사색에 잠겨보는 시간들이야 말로 긴긴 배낭여행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은 서울땅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다보면 가만히 앉아 고민과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설령 시간이 지나 그때의 그 고민이 쓸데없는 잡생각이었다는 후회가 들더라도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 잠시 눈을 붙이고 나면 어느새 나는 지구 반대편에 와있는, 그런 세상이다. 두 발로 찬찬히 한발씩 내 딛으며 여행을 하다보면 이따금씩 내가 어디에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하는데, 그럴때면 난 허리를 숙여 내 발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지금 두 발로 밟고 서 있는 바로 그곳의 좌표를 기억하는 일종의 혼자만의 의식인 셈이다. 와장창! 치토..
옥인동, 통인동, 효자동, 필운동, 체부동.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듯한 익숙한 동네 이름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경복궁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산자락을 따라 걸으며 마주치는 '서촌'의 지명들이다. '북촌'은 들어봤어도 '서촌'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 하지만 어쩌면 북촌보다 더 생생한, '진짜 한옥'들이 이곳 서촌에는 가득하다. 얼마 전, 종로구에서는 걷기좋은 고샅길 20선을 발표했다. 그중 마지막 스무번째 고샅길이 이곳 서촌이다. 통의동 백송 및 창의궁터 → 효자로 → 효자·옥인동 한옥길 → 박노수 가옥 → 옥인 시민아파트 청계천 발원지 → 이중섭 가옥 → 필운동 골목길 → 배화학교 및 필운대 터로 이어지는 코스는 2010년까지 정비사업 및 기타 조성사업을 통해서 관광코스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평범..
내일 (11일)부터 광화문 광장에서는 국제 스노보드 월드컵이 열린다. 평창도 아니고, 무주도 아니고 뜬금없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스노보드 대회가 열린다고 하니 내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말이 필요없다. 이미 대회는 내일로 다가왔고 복원공사중인 광화문 위로는 스노보드 점프대가 올라타버렸다. 사진을 보고 대개 사람들의 반응은 이게뭐냐, 믿지못하겠다, 왜그랬을까 등등 다양하다. 세종로의 차들이 양옆으로 비켜나고 세종대왕님께서 그 가운데 떡하니 자리를 잡으셨을 무렵, 광화문 광장에 대한 포스팅을 올리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올리질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내일로 다가온 스노보드 월드컵 소식을 듣고 얼른 포스팅을 마무리 지어야 겠다는 생각에서 짧은 생각들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