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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스텔에서 나와 호세(José)를 만나러 가는 길. 둘 다 호세를 못 본지 한 달도 넘게 되어 한껏 들떠 있었다. 잠시 호세라는 친구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마드리드공과대학교(UPM)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친구인데 작년에 일 년간 한국의 우리학교로 교환학생을 와 있었던 아이다. 지금은 반대로 나랑 우린이가 마드리드 호세네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상황. 마드리드에서는 우리집이랑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어찌나 바쁜지 생각보다 자주 얼굴을 못보던 차에, 호세의 고향인 사라고사에서 함께 만날 기회가 온 셈이다.



사라고사의 밤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호세랑 만나기로 한 장소는 구시가지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나와서 있는 '아라곤 광장(Plaza Aragon)'이다. 호스텔이 구시가지 북서쪽에 있는 까닭에 아까 걸었던 알폰소 1세 거리, 에스빠냐 광장을 다시 지나게 되었다. 마드리드도 늘 그렇지만 스페인의 길거리엔 확실히 낮보다 밤에 훨씬 더 사람이 많다. 영상 7도를 왔다갔다 할 정도로 기온이 많이 떨어진 쌀쌀한 밤이었지만 스페인 사람들의 발걸음엔 늘 활기가 넘친다.

호세를 기다리며... 아라곤 광장 파노라마 한 장!


 약속장소인 아라곤 광장에 도착했다. 여담이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시간 약속을 잘 안지키기로 유명하다. 스페인 사람들도 스스로 그렇게 얘기할 정도. 예를들어 '9시에 만나자'라고 얘기하면 일단 9시 반은 되어야 하나둘 오기 시작하고 다 모이려면 한 시간도 넘게 기다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학교 수업조차 교수님이 한 시간씩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을 정도니 뭐...

 하지만 우리의 호세(!)는 거의 제시간에 도착해서 우리와 인사를 나눴다. 동네 친구인 알베르또(Alberto)도 함께 나와 우린 총 다섯명이 됐다.

호세와 알베르또를 따라 따빠스 투어 시작!


 사라고사에서 나고자란 죽마고우인 호세와 알베르또. 오늘은 이 둘을 졸졸 따라다니며 사라고사 구석구석을 다녀볼 생각이었다. 호세는 자기 고향에 놀러온 우리들 덕분에 한껏 신이난 모양이다. 우리도 덩달아 한껏 들떴다. 

  자, 그럼 이제부터 이날 밤새도록 즐기던 '따빠스(Tapas) 투어'를 다시 따라가 볼까나.

 






집에서도 쉽게 만들어먹을수 있는 따빠스, Huevos Rotos con Chorizo


1차 - 우에보스 로또스 꼰 초리쏘(Huevos Rotos con Chorizo)

 따빠스(Tapas)는 스페인어로 '덮개, 뚜껑'이라는 뜻인데 중세 스페인 사람들이 먼 거리를 말을 타고 이동하면서 간단한 음식으로 와인병이나 술병의 뚜껑을 덮은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유래야 어찌되었든 간에 지금은 간단한 맥주나 와인 한잔을 마시며 함께 곁들여 먹는 안주와 요리를 뜻한다. 

 첫번째로 찾아간 집에선 '우에보스 로또스 꼰 초리쏘(Huevos Rotos con Chorizo)'와 맥주 한 잔씩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우에보스 로또스'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스크램블드 에그'다. 스페인에서 꽤 흔하게 즐기는 따빠스 메뉴로, 사실은 계란보다 감자가 더 많이 들어가고 하몬(jamón)이나 초리쏘(Chorizo, 돼지 내장을 채워 만든 일종의 소세지)를 곁들여 먹는다.



이날 밤에 먹은 안주중에 제일 맛있었던 양송이 요리


2차 - 참삐뇬(Champiñón)

 맥주 한 잔씩을 비우고 첫번째 가게를 나와 두번째 따빠스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곳은 구운 양송이(Champiñón, 양송이)를 올린 따빠스로 꽤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 취급하는 메뉴도 양송이 요리 단일 품목! 뭔가 맛집의 기운이 느껴진다. 맥주도 조금 특별하다. 우리가 마신건 밀(trigo)을 이용해 만든 맥주였는데 호가든 처럼 조금은 달달한 풍미가 있었다.

 양송이 구이가 하도 맛있어서 조금 더 먹고 싶었지만... 한 접시를 비우기가 무섭게 다시 가게를 나와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




따빠스 투어를 빙자한 사라고사 도심 관광?!


 정신없이 호세랑 알베르또 뒤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다시 바실리카가 있는 광장에 도착 했다. 아까는 그냥 혼자 사진찍고 둘러본게 끝이었지만 두 친구들이 나름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기 시작한다. 그러고보니 호세는 건축학 전공이고, 알베르또는 역사 전공이란다. 꽤 괜찮은 가이드인걸?!



잠시 소화도 시킬겸, 로마시대 유적지에 들렀다


 낮에는 미처 못봤던 유적지에도 들렀다. 사라고사는 예전 로마시대의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그중 지금도 원형에 꽤 가깝게 보존되고 있는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이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거대한 트러스 지붕을 씌운것도 인상깊었지만, 그보다는 도심 한 가운데 이런 거대한 유적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는게 참 멋지더라. 그냥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갑자기 짠 하고 눈앞에 이런 유적이 나타나는걸 상상해보시라!




이번엔 조금 고급스러운 바에서 와인 한잔과 함께


3차 - 따빠스 꼰 비노(Tapas con Vino)

 살짜쿵 사라고사 유적지 관광을 마치고 다시 다른 가게에 들어왔다. 여긴 전에 들어간 두 가게보다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 알베르또가 주문한 대로 여러가지 간단한 음식들이 함께 나왔다. 우린이의 제안으로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먼저 하나씩 골라가기로 했는데, 내가 고른건 닭고기와 사과, 프룬을 볶아 만든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지만 맛있는 음식이었다. 한 사람이 하나씩 골라가기는 했지만 마지막엔 결국 한 입씩 서로 다 나누어 먹었다.



잠시 공원에서 쉬어가는 시간...


 세번째로 들어간 가게에서 가볍게 레드와인 한 잔씩을 마시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직 세 군데 밖에 가지 않았지만 어느새 시간은 많이 늦어서 날짜가 넘어가 있었다. 이제 돈도 다 떨어지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고 있는 찰나... 호세가 별안간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자기 동네 친구가 사라고사에서 디스꼬떼까(Discoteca)를 하는데 거기에 가자고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사라고사의 밤은 멈추지 않는다!


4차 - 맥주(Cerveza)

 호세가 말한 친구네 디스꼬떼까가 아직 오픈시간 전이라 다른 바에 잠시 들어왔다. 벌써 네 번째 가게. 여기선 각자 병맥주 하나씩만 가볍게 마셨다. 사실 이때쯤 부터는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전날 잠을 거의 못잔데다 하루종일 바이크 폴로 대회에서 사진찍으러 뛰어다니고, 자전거로 강가를 달리고... 오늘 만큼은 일찍 자려고 했는데 시계를 보니 이미 일찍 자긴 틀렸다. 어느새 말수가 싹 줄어든 나를 보며 호세는 이렇게 말했다. '규빈! 스페인의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라틴아메리카 음악이 크게 울려퍼지던 디스꼬떼까


5차 - 디스꼬떼까(Discoteca)

 드디어 호세네 친구 가게에 들어왔다. 춤을 출 수 있는 스테이지가 있는 곳이지만 우린 그냥 테이블에 앉아 럼과 위스키를 마셨다. 얼마후 호세 친구와 여자친구까지 합세해서 꽤 오랜 시간을 여기서 보냈다. 사실 이때 난 거의 유체이탈(?) 상태여서 말도 거의 못하고 쇼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 평상시 같았으면 신나게 놀았을텐데 자꾸만 전날에 잠을 설친게 후회된다.



그만 자야겠다는 우리를 설득하는 호세와 알베르또. 이런 강철체력 같으니라구!


6차 ...?

 친구네 가게를 나와 다시 한번 알폰소 1세 거리를 걸었다. 이날 밤만 해도 여기를 몇 번이나 걸었는지 모른다! 몸은 좀 많이 피곤했지만 호세와 알베르또 덕분에 관광객들은 잘 모를 맛집들을 골라다니며 즐거운 따빠스 투어도 하고...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고 외치고 작별인사를 하려는데...

 호세가 딱 한군데만 더 가자고 우리를 잡아끈다. 호세는 우리에게 사라고사의 밤문화를 남김없이 다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따라 들어갔는데 여긴 정말 춤을 춰야하는 클럽이다! 새벽 네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클럽 안에는 사람들로 발디딜틈 없이 가득했다. 역시 스페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호세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신이 났다. 하지만 난 더이상 춤을 출 힘이 없었다... 결국 우린 호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호스텔 부엌에 있는 재료들로 급조한 크림 파스타


7차 ...?

 이렇게 해서 호세와 알베르또와 함께했던 하룻밤의 사라고사 따빠스 투어는 모두 끝이 났다. 전날 잠도 잘 자고 컨디션이 좋았더라면 더 잘 놀아줬을텐데... 좀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만 하도 가게를 옮겨다니고 걸어다니다 보니 호스텔에 돌아왔을땐 또 배가고파져 버렸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 6시. 아침 먹는 셈 치고 우린이가 만들어준 파스타를 맛보고는 이내 침대에 누워 골아떨어져버렸다. 음냐음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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