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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교환학생 생활을 정리하는 글도 올렸으니 이제 여행기는 다시 1월 초 이탈리아로 돌아간다. 세계일주를 하던 현재를 이탈리아 베르가모에서 만나고 함께하는 여행의 첫 목적지로 정한 곳은 '베네치아'였다. 사실 베르가모에서 하룻밤을 굳이 머물지 않았어도 기차로 세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베네치아지만(그땐 막연히 멀다고 생각했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루 더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2007년 베네치아에서, 그 당시 찍힌 여행 사진중에서 최고로 좋아하는 사진이다


사실 베네치아는 2007년 유럽 배낭여행 당시 갔었던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대학생인 내가 유럽에서 한 번 갔던 도시를 다시 찾을 만큼 여유로운 여행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만에 다시 이곳을 찾게 만든 건 다름아닌 바로 이 한장의 사진이다.

 때는 2007년 내가 스무살이던 그 해 여름, 난생 처음 해외 배낭여행에 모든게 다 설레이던 그 즈음이다. 한 달동안 꽤 많은 나라와 도시들을 여행하고 돌아왔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베네치아'였다. 건축을 막 공부하기 시작한 새내기 건축학도에게 있어서 도시의 모든 골목길들이 '물'로 치환된 생경한 풍경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겠는가. 게다가 7월의 이탈리아 하늘은 또 어찌나 푸르던지. 몇 년이 지나서도 누가 '유럽에서 제일 좋은 도시가 어디였어?',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는 어디야?'라고 물어오면 언제나 내 대답은 '베네치아!'였다.

2007년 베네치아에서, 함께 여행하던 친구와 함께 나름 '연출'해서 찍었던 사진이다


 그때 당시 여행하며 적어둔 일기를 보면 '아마도 내 생애 유럽에 다시 오는 일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것 같다. 유럽 여행이라는게 돈도 시간도 만만찮게 들어가고 게다가 당시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1년간 적금을 부어 겨우 여행경비의 절반(1년이나 적금을 했는데 겨우 절반!)을 모았을 정도니... 쉽게 다시 올 수 없다고 생각한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확히 5년 만에 나는 베네치아에 다시 오게 되었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다시 찾고 싶었던 도시 베네치아. 그 곳에 진짜 다시 오게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2007년엔 기차로, 2012년에는 버스로 베네치아 본 섬에 들어간다


 베네치아에는 기차역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베네치아 본섬(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그 수상도시 베네치아)에 있는 '산타 루치아 역', 또 하나는 본섬 바깥쪽 시가지에 있는 '메스뜨레 역'이다. 5년전 베네치아를 찾았을때는 스위스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한 번에 산타 루치아 역으로 들어왔던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메스뜨레 역에서 내려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본 섬에 들어가기로 했다.
 
 유럽의 도시들, 아니 한국을 제외한 모든 도시들 중에서 처음으로 '두 번째' 찾는 도시였다. 늘 살면서 '첫 번째'에만 의미를 두었던 것 같은데 '두 번째', 다시'라는 단어가 이토록 설레이는 단어인줄 미처 몰랐다. 베네치아 본섬으로 들어가기 전날 내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2007년 기억의 한걸음 직전에와 있는 지금. 떨린다.





나만 떨렸나. 베네치아는 그냥 베네치아일 뿐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설레던 전날밤 일기장과는 달리 베네치아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표정이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본 섬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옛 기억, 함께했던 친구들, 설레던 감정 같은 것들이 마구 뒤섞여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막상 다리위에 서서 운하를 바라보니 그냥 너무나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도시 풍경이라는게 몇 개월 주기로 휙휙 갈아 엎어지고 뒤짚어지는데에 반해 베네치아는 5년이 지나도 그모습 그대로였다. 7월의 새파란 하늘이 1월의 희뿌연 하늘로 바뀌어 있는걸 빼고는 말이다.





날씨가 흐려도 여전히 매력있는 베네치아의 골목길들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골목을 누비는 것. 어차피 아무리 좋은 지도를 들고 다닌다 한들 베네치아에서 길을 잃는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5년 전 보다는 세상이 조금 좋아져 아이폰에서 클릭 한번이면 GPS로 내 위치까지 볼 수 있다지만 그마저도 여기선 소용이 없다. 그저 방향감각도 시간개념도 잊고 무작정 발 가는 대로 골목을 따라 헤메다 보면 비로소 진정한 베네치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생긴 다리들이 베네치아에는 너무나 많다.


 그렇다고 5년만에 다시 찾은 베네치아에서 평범하게 골목을 걸으며 매력을 즐기고 말기엔 뭔가 아쉽지 않은가! 사실 내 마음속에는 '꼭 다시 찾고 싶은 도시 베네치아'에 다시 가게 되면 해보고 싶었던 작은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다. 이름하여 '옛날에 찍은 사진 똑같이 따라 찍기'. 아이디어는 아주 간단하다. 이 글 맨 위에 나와있는 두 장의 사진을 똑같은 배경에서 다시 똑같은 포즈로 따라 찍어보자는 생각이다. 2007년의 베네치아와 스무살의 나, 그리고 2012년의 베네치아와 스물 다섯살의 나. 같은 장소에서 5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찍히는 두 장의 사진. 생각만해도 너무 신나는 일이지 않은가!




하루 종일 사진 속 배경을 찾아 헤메고, 또 헤멨다.


 거리를 헤메면서 우리는 아이폰에 넣어둔 2007년 당시 사진을 보고 사진 속 배경을 찾아 보기로 했다. 사실 사진에 나와있는 단서는 사진 속 배경이 흰 몰딩의 벽돌 난간으로 된 작은 다리 위라는 것 뿐. 헌데 베네치아라는 도시 자체가 워낙 길도 복잡할 뿐 아니라 사진속의 다리처럼 생긴 비슷한 다리들이 셀 수 없이 많은 곳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걸어다니며 찾는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중간엔 너무 힘들어서 잠시 술의 힘을 빌리기도...:D


 대충 비슷하게 생긴 다리만 보이면 일단 달려가 사진 속 배경과 비교해보기를 수 십번. 결국 지친 우리들은 리알토 다리 위에서 맥주 한 병씩을 마시며 전열을 재정비했다. 도대체 5년전의 내가 서 있던 사진 속 그 다리는 어디에 있는걸까. 분명 같은 도시, 같은 베네치아에 들어와 있지만 사진 속의 기억은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있었다.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을까... 그래서 결국 택한 바로 이 장소.


그렇게 한 시간여를 더 헤맸을까.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빗줄기는 더 굵어져 있었고 우리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 큰 베네치아에서 사진 하나만으로 장소를 찾는다는게 힘들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결국 우리는 고민끝에 두 장의 사진을 찍었던 정확한 장소는 아니지만 가장 비슷한 장소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좌)2007년 7월/(우) 2012년 1월


 먼저 첫번째 사진. 사진 촬영은 길가다 우연히 산 마르코 광장 앞에서 만난 현재의 여행메이트 지중이가 수고해줬다. 5년 전과는 카메라 화각도 다르고 계절도 다르기에 썩 비슷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해 찾은 장소가 여기다. 사진 속의 내 여행 메이트는 바뀌었지만 나름 가방의 위치까지 신경써주는 센스를 보시라!

(위)2007년 7월/(아래) 2012년 1월


 이번엔 두 번째 사진이다. 5년 전 유럽여행하며 찍은 사진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었는데 이걸 나이먹고 다시 따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포즈라 똑같이 찍히려고 몇 번을 난간 위로 뛰었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지나가던 외국인 관광객들도 뭐하나 하고 신기해하며 구경했을 정도. 못내 아쉽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나의 작은 프로젝트는 끝이 났다.




똑같은 사진은 못찍었지만 대신 멋진 야경을 만났다.


 비록 처음 생각했던 것 처럼 정말 장소까지 똑같은 사진을 찍는데는 실패했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옛날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야경을 만났다. 그 때는 낮에만 돌아다녀서 야경은 생각도 못했었는데 이렇게 다시보니 오히려 야경이 더 아름다운 도시더라. 운하가 많은 덕분에 물 위로 아른아른 비치는 베네치아의 풍경은 정말 장관이다.









환하게 불을 밝힌 운하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꿈꿔왔던 베네치아와의 짧은 재회는 끝이 났다. 막상 돌아가는 길에 버스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금이 아니라 조금 더 나중에 다시 찾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고 있었더라면 더 감격적인 재회이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랄까.

 여행도 그렇지 않은가. 비행기표를 사고, 짐을 챙기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는 그 순간까지가 정말 설레이는 것이지 막상 꿈꾸던 여행지에 도착하면 그 설렘이 조금 덜해지는 것 처럼. 베네치아를 다시 찾고 말겠다는 그 오랜 설렘은 이제 두 장의 사진이 되어 내 손에 들려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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