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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애 가장 짜릿했던 6개월. 마드리드에서 한 판 잘 놀다왔습니다. 
 
 6개월 간의스페인 생활은 모두 끝이 났다. 짧았지만 너무나 즐거웠던 마드리드의 일상, 학교, 요리, 친구들. 익숙해져있었던 그 곳에서의 생활들은 이제 모두 추억이 되어버렸다. 딱히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거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건 아니었다. 6개월이 결코 스페인 문화에 젖어들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나름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공부도, 운동도, 노는 것도 원없이 즐기다 왔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다만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날 밤, 술집을 나와 어두운 가로등 아래 친구들과 작별하며 펑펑 울었던건 조금 부끄럽지만.


 한국에 도착한게 지난 달 23일이니 벌써 귀국한지도 오늘로 18일째다. 어느새 보름도 더 되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오늘에서야 비로소 '내 집에 돌아왔다'는 기분이 처음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일주일 정도는 어딘가 시름시름 아프고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무기력한 상태였다. 시차적응에도 '완벽하게' 실패했었던건 물론. 심지어 코감기까지 단단히 걸려서 처음 사나흘간은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 먹고 싶었던 한국음식들을 한 상 가득 차려놓아도 아무 맛도, 향도 느낄수 없는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다.

시계
 서울의 시계는 확실히 마드리드보다 빨리 간다. 귀국하고 일주일이 지나 이제 시차에 좀 적응하나 싶더니 3월이 되어 순식간에 개강을 맞아버렸다. 오랜만에 가본 학교에서 나는 어느새 5년제 건축학과의 최고참인 5학년이 되어있었고, 숨돌릴 새도 없이 건축학도로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졸업설계'가 곧바로 엄습해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학교, 마드리드보다 체감기온 10도는 더 낮은 한국의 날씨... 이 모든 것들에 휩쓸려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오늘이 되어있었다.

일기
 마드리드에서 6개월 내내 거의 밀리지 않고 쓰던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는 2월 6일. 2월달 후반부는 정신없이 여행하느라 일기장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조차 마지막 마무리를 하지 못한건 못내 아쉽다. 

6월간의 여행 루트를 그려봤다(빨강: 육로/파랑: 항로/ 초록: 해로)


여행
 유럽의 교환학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진다(개인적인 기준으로). 하나는 유럽에 간 김에 여행에 더 집중하는 '방랑형'. 또 하나는 여행보다는 그 도시에서의 삶 자체에 집중하는 '생활형'. 짧은 시간동안 이것저것 욕심을 많이 부리다보니 내 생활패턴은 작년 8월~12월까지는 '생활형'이었고 올해 1월~2월은 '방랑형'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 세고비아, 아랑후에스, 똘레도, 꾸엔까, 발렌시아, 아빌라, 살라망까, 세비야, 꼬르도바, 말라가, 그라나다, 론다, 알헤시라스, 따리파, 바르셀로나, 마요르까
포르투갈 리스본, 로까곶, 신트라, 까스까이스, 포르투
모로코 탕헤르, 셰프샤우엔, 페스, 까사블랑까, 마라케쉬
이탈리아 베르가모, 밀라노, 베로나, 베네치아, 친퀘테레
독일 뒤셀도르프, 쾰른, 베를린
프랑스 파리

 마드리드에 있으면서 여행했던 나라와 도시들 목록이다. 초반엔 생활형 교환학생이었으니 대부분 1, 2월에 다녀온 곳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꽤 많은데 신기한건 2007년에 배낭여행으로 유럽에 왔을때랑 거의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그 때 여행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한다는 느낌으로 가볍지만 알차게 다녔던것 같다. 여담이지만 지도를 그리며 세어보니 6개월동안 저가항공만 무려 열 번을 탔다. 확실히 세상 참 좋아졌다.


 일기는 2월 6일에서 멈췄지만 가계부는 마드리드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꼼꼼하게 마무리 지었다. 다만 정산을 아직 못했을 뿐. 대략 6개월간 교환학생 생활에 든 총액이 1200만원 정도 된다. 왕복 비행기값부터 준비하며 한국에서 산 이민가방 같은 물품비, 여행하는데 쓴 돈까지 모두 포함해서다. 자세한건 조만간 정산을 다시 한번 할 생각이다.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날 밤, Maudes 16번지 식구들과 함께


 바라하스 국제공항을 떠나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안에서만 해도 하고싶은 말, 적고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막상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찬찬히 돌이켜보니 그야말로 '일장춘몽'이 따로 없다. 쉴새없이 돌아가는 영사기가 쏘아주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것만 같다. 처음 생각했던것 만큼 멋드러진 마무리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써놓고 보니 큰 짐을 하나 내려놓은 기분이다. 물론 아직도 두 달치나 여행기가 남아있으니 계속해서 내려놓아야 할 짐들이 산더미겠지만.

 조금은 두서없지만 어쨌든 무사히 잘 다녀왔다는 인사를 이 글로 대신할까 한다. Grac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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