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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고사에서의 마지막날 아침. 거리는 간밤에 내린 비로 촉촉히 젖어 있었다. 이날은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그냥 점심을 먹기 전까지 가볍게 못가본 여기저기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지난밤 따빠스 투어의 여파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 11시가 조금 넘어 호스텔을 나왔다. 18유로라는 거금(사실 여행자 숙소치고는 상당히 싼 편이다, 호스텔이니깐)을 줬지만 그만큼 푹 자고나오지 못한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아침식사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거리에 나오자 마자부터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촉촉히 젖은 바실리카 앞 광장의 아침 풍경


 일단은 바실리카가 있는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실리카에 아직 못가본 우린이를 따라 한바퀴 휙 둘러보고 나와서 곧바로 맞은편의 Foro로 들어갔다. 어젯밤 호세, 알베르또와 함께 광장을 걸으며 로마 유적인 원형광장을 보고나 Foro 얘기를 들었다. 바실리카가 있는 중앙 광장 아래로 로마시대의 Foro(포럼) 유적이 있다고 한다. 나름 대리석 판으로 멋지게 꾸며진 입구를 지나 지하로 내려갔다. 


커다란 포럼 유적 전체가 하나의 지하공간 안에 들어와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꽤 거대한 지하공간 안에 로마 시대의 포럼이 펼쳐져 있었다. 생각보다 층고가 그리 높지 않은 공간이라 사진엔 좀 못나왔지만 나름 잘 정돈된 유적이었다. 포럼이라고 하면 로마시대에도 나름 광장같은 역할을 하던 곳인데, 바로 그 위로 지금의 사라고사 광장이 있는 이 상황 자체가 참 멋지다. 서로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역사가, 단 수십 센티미터 되는 콘크리트 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하고 있다니...

'SUELO MERCADO'는 '시장 바닥면'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유적지와 비슷하게 이 곳역시 기둥은 대부분 소실되고 기초, 주춧돌만 남아있다. 기초라는게 원래는 흙속에 파묻혀 있는 부분이지만 지금은 발굴을 위해 전부 땅 위로 솟아와있는 형상이다. 때문에 위 사진처럼 전시실 내부 기둥 일부에는 예전 이 유적지의 바닥이 어디까지였는지 표시해주는 선들이 그려져 있다. 

아니 누가 이렇게 강력한 생각을?!


 전시실에서 한참이나 내 눈길을 끌었던 기둥이다. 아래 보이는 울퉁불퉁한 바위는 실제 전시실 내부에 있는 로마시대 주춧돌 중 하나다. 헌데 그 주춧돌 위로 진짜 기둥을 세워 놓았다! 심지어 이 기둥은 지하 전시실 천장을 뚫고 나가 입장료를 내는 지상까지 연결되어 있다. 당시 이 주춧돌 위로 기둥이 어떻게 세워졌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아이디어 같은데, 실제 유적위로 이런 짓(?)을 했다는게 놀랍다. 진짜 이 기둥이 지상부 천장을 받치는 구조물이었다면 더욱 멋졌을텐데... 어딘가 2% 부족한 아이디어 같다. 

이제는 츄러스가 슬슬 익숙해진다


 Foro를 나와 츄러스를 먹기위해 여러 식당을 헤멘 끝에 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어제에 이어 오늘의 아침 메뉴 역시 '츄로스 꼰 초꼴라떼(Churros con Chocolate)'! 날이 좀 추워서 그런지 뜨끈한 초콜릿과 츄러스가 참 맛있더라. 


다소 괴기한(그렇지만 그리 예쁘지 않은) 모습의 박물관 전경


 츄러스를 한참 먹고 있는데, Sebastian에게 연락이 왔다. 바이크 폴로 경기가 오후 세 시쯤이면 끝날 것 같은데 마드리드로 같이 차타고 돌아갈지 알려달라고 했다. 원래는 사라고사를 좀 더 여유롭게 보다가 느즈막히 버스를 타고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첫날밤 합숙소에서 잠을 설치고, 어젯밤은 따빠스 투어 덕에 아침이 다 되어 잠에 드는 바람에 이미 내 몸상태는 방전... 결국 사라고사 여행은 점심 식사까지만 하고 다시 바이크 폴로 친구들에게 얹혀 돌아가기로 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찾아온 이곳은 '빠블로 세라노 박물관(Museo Pablo Serrano)'이다. 전날 따빠스 투어를 함께했던 알베르또가 6개월정도 일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딱히 전시는 볼게 없지만 높은 건물이라 옥상에서 사라고사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고 해서 와봤다. 


사라고사 전경을 보기위해 옥상 테라스에 올랐다


 막상 건물에 가까이 가보니 생각보다 높지는 않았다. 마침 시에스따(Siesta) 시간이 가까워진 때라 박물관이 문을 닫으려던 찰나, 경비에게 말하고 얼른 올라갔다 오기로 했다.


평범하고도 소박한 사라고사의 파노라마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사라고사의 전경. 5층 밖에 안되는(물론 전시시설이라 층고가 조금 높다) 건물이지만 막상 올라와보니 정말 시야가 탁 트인다. 쭉 둘러보는데 사라고사에는 정말 높은 건물이 별로 없더라.

뽕짝이 울려퍼질것만 같던 '상록회관'에서의 점심!


 박물관에서 나와 다시 구시가지 쪽으로 슬슬 걸어오며 '투우 경기장'도 보고... 다시 배가 고파졌다. 사실 아침으로 먹은 츄러스는 그냥 군것질 하듯이 허기만 달랜거였기에. 이렇게 다시 사진으로 보니 어째 계속 먹기만 한 것 같지만 어쨌거나 우린 사라고사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가격이 착해서 들어간 식당. 겉에서 보기엔 그저 평범한 스페인의 한 레스토랑이었는데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니 마치 회갑연(?)을 벌여야 할 것 같은 큰 홀이 나온다. 식당이라기 보다는 그냥 커다란 방에 임시로 테이블을 가져다 놓은 느낌? 마치 무슨 시골의 마을회관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라 난 여길 '상록회관'이라고 부르며 킥킥댔다.

Primero Plato, 문어 샐러드


Primero Plato, 콩으로 만든 슾


Segundo Plato, 대구 요리


Segundo Plato, 오늘 메뉴의 하이라이트, 토끼구이!


 분위기는 요상했지만 음식은 아주 맛있었다. 첫번째 접시로 시킨 문어 샐러드도 맛있었지만 두번째 접시로 나온 '토끼고기(Conejo de Honor)'가 아주 별미였다. 마드리드에 오기 전, 한국에서 다니던 스페인어 학원 선생님이 스페인 사람들은 토끼고기를 자주 먹는다고 얘기해준 적이 있었다. 실제로 자주 가는 집근처 재래시장에도 가죽을 완전히 벗겨 놓은 식용 토끼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먹어본건 이번이 처음! 이래저래 사라고사 여행은 특별한 일이 많다.

 맛은? 닭고기와 거의 비슷하지만 양고기나 말고기처럼 토끼고기만의 특유한 향이 좀 있다. 난 고기냄새에 별로 민감한 편이 아니기에 게눈 감추듯 한 접시를 뚝딱 해치워버렸다.



무사히 대회가 끝나고, 서로를 축하해주는 선수들의 모습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린이, 형윤이랑은 헤어져 다시 바이크 폴로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그 때가 세시 반 쯤이었는데 딱 도착하자 마자 결승전 경기가 끝나고 맥주를 막 뿌리고 있더라. 아... 한 20분만 일찍 왔어도 결승전 경기를 볼 수 있었는데. 다들 입을 모아 정말 대단한 경기였다며 감탄사를 연발하는데... 토끼고기에 홀려서 결승전을 놓쳐버렸다. 하아.

정말 보는 내내 입이 떡 벌어지던... 이번 대회의 우승자, 세계랭킹 2위의 프랑스 팀


 사라고사 대회의 우승팀은 전날 봤었던 세계랭킹 2위의 프랑스 팀. 한 눈에 봐도 플레이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 했었는데 역시나 우승을 했더라. 물어보니 마지막 결승전 스코어는 5:4. 프랑스 팀이 처음엔 1:4로 뒤지다가 마지막에 뒷심을 발휘하며 내리 네 골을 넣고 우승했다고 한다. 얘기만 들어도 얼마나 흥미진진한 경기였을지 짐작이 간다. 아우 아쉬워라!

바이크 폴로 사라고사 대회 공식(?) 포스터


마지막으로 단체사진, 잘 찾아보면 내 얼굴도 어딘가에 있다


 비록 경기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기념사진까지 함께 찍고, 그렇게 대회는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 마드리드팀은 준결승 까지 진출했었지만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고 한다.

사라고사를 떠나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길...


 2박 3일(정확히는 2박 2일) 동안의 사라고사 여행은 정말이지 '버라이어티' 그 자체였다. 바이크 폴로 선수들과 함께 침낭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합숙소, 박진감 넘치던 경기들과 대회의 열기, 호세와 알베르또를 만나 함께 했던 따빠스 투어, 사라고사의 아름다운 야경, 오랜만에 호스텔에서 보낸 하룻밤, 그리고 맛있는 음식들 까지! 비록 이틀밤 모두 잠을 제대로 못자는 바람에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너무나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그렇게 스페인에서의 좋은 추억 하나를 또 마음에 담으며... 우리가 탄 차는 140km의 속도로 마드리드를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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